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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7.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1 조회수2,00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7월 1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제1독서 지혜 1,13-15; 2,23-24

1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4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15 정의는 죽지 않는다.
2,23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제2독서 2코린 8,7.9.13-15

형제 여러분,

 7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13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편안하게 하면서 여러분은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14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15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복음 마르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언젠가 이른 아침에 택시를

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단 둘만 있는 공간이라서

많이 신경 쓰여서

 “아침부터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라고 했지요.

그러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글쎄 첫 손님이 여자인 것입니다.

거기다가 안경까지 썼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시절에나 있었던 말을 아직까지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오늘 기사님

대박 나시겠는데요?

옛날에는 그랬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시대가 거꾸로 되어서

히려 안경 낀 여자 손님을 태우면

재수가 아주 좋다고 하잖아요.

모르셨어요?”
그제야 표정이 좋아지십니다.

그러면서 확인을 하려는 듯이

“정말로 그렇게 바뀌었어요?”

라고 묻더군요.

 저는 “정말이라니까요.

 오늘 하루 보십시오.

분명히 좋은 일만 생길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기사님께서는

 계속 싱글벙글 웃으면서

 목적지까지 태워주셨습니다.

 내리는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정말로 맞나봅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신호 잘 받으면서

 온 것은 처음입니다.”
만약 제가 기사님의 말에

“어이구, 어떻게 합니까?

오늘 정말로 재수 없겠는데요?”

라고 맞장구쳤다면 어떠했을까요?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안 좋은 일만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긍정적인 생각을

간직한다면 실제로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생각하는 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마음을

품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께서 내게

 안 좋은 것을 주실 리가

없다는 믿음,

내가 꼭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실제로 좋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는

 청을 간곡히 합니다.

(마르 5,22-23 참조)

그런데 딸에게 가던 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그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
믿는 사람은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을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희망의 마음을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열 두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지요.

그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믿음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것을 맛보게 된다.”

(지혜 1,24)고

 제1독서는 말합니다.

악마의 시기로 죽음이 들어왔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생명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제2독서는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2코린 8,9)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낮아지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낮아지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영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희망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탈리타 쿰!”

(마르 5,4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소녀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을 살면서 좌절과

절망으로 쓰러져 있는

 우리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금 용기를 내어 일어나십시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무하마드 알리)


어제 하루 피정 강의를 들으신

인천교구 영종도 성당 꾸리아 단원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사과를 먹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즉, 사과를 맛있게 먹는 사람과

 맛없게 먹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사과 한 상자씩을 샀습니다.

한 명은 상자에서 사과를 집어

 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크고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지.”
그러면서 사과를 고를 때마다

‘이 중에서 가장 크고 맛있는

사과를 먹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한 상자를 다 먹는 동안

내내 행복한 마음으로 맛있는

사과만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상자를

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고 좋은 것은 다음에 먹어야지.

이 중에서 가장 작고 맛없는

것부터 골라 먹어야지.”
그는 사과를 고를 때마다

남아 있는 것 중에서 작고

 못 생긴 사과를 먼저 집었지요.

 그래서 한 상자를 다 먹을 동안에

작고 맛없는 사과만을

 먹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행복을 잡으려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며,?

그 느낌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현재에 대하여 좋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 반대로 나쁘다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언제나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바로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는 대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으로만 꾸며져있는 갑곶성지 책장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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