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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된 믿음은 때로는 불신에서 /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3 조회수1,516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쌍둥이라고도 불렸다(요한 20,24 참조). 그가 형인지 동생인지는 모른다.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였던 그는 매우 강직한 제자인 것 같다. 예수님을 해치려고 했던 베타니아로 가시려 하자, 이를 만류하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토마스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하고 큰 용기를 보였던 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못한 그는 강한 불신도 보였다. “나는 그분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런 토마스 사도는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디에나 쉬는 교우들이 좀 있다. 한때는 물불가리지 않고 매달렸지만, 무슨 연유인지 식었단다. 원인이 참 많다.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해, 힘겹고 바빠서, 가까운 교우와의 상처, 심심찮게는 성직자들의 차가움에 성당 발길을 잠시 돌렸다는 거다. 그것들을 인정하자. 믿지 않는 것, 믿지 못하는 건 어쩜 다르니까. 단지 믿지 못할 뿐, 계기가 되면 본당 찾아 다시 나올 이들일 게다. 믿음은 의심과 절망을 넘어선 것이기에 그렇다.

 

가끔은 크게 무너져 보아야 큰 깨달음을 얻는단다. 물론 살면서 순간순간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할 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큰 변화 없는 일상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기가 힘들 수도. 의심 또한 이와 비슷하리라.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는단다. 큰 의심을 거치지 않은 믿음은 비바람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의심은 믿음의 길목인 다리라나.


토마스가 이처럼 돌아선 것은 예수님 애정 때문일 게다. 그를 위한 스승님의 반짝 출현에 크게 감동했기에. 신앙생활은 이렇게 어떤 은총을 깊이 깨달을 때에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해서 예전과는 달리 더 알찬 신앙으로 나아간다. 살다 보면 냉담은 가끔은 현실일 수도. 그러기에 주위에서 누군가가 쉬겠다며 본당에 얼굴 내밀지 않아도 참된 믿음의 과정이라며 좀 참자. 또 가족 중에 쉬는 이가 있어도 토마스를 생각하자.

 

그래서 믿음은 보고 난 뒤 감탄하고 놀라는 것에서, 듣고 난 뒤 느끼고 깨닫는 것에서.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은, 그들 말이 자기의 생각과 판단 기준으로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토마스에게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못과 창에 찔리신 당신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러니 그를 꼭 나무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도 우리처럼 내 눈으로 보아야 믿는 믿음의 기초 과정을 따르는 것 뿐이니까.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이는 행복하다.” 비록 보이지 않는 주님, 만질 수도 없는 주님이지만, 그럴수록 그분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가득 간직해야만 하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쌍둥이,토마스,열두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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