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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의 말씀 (요한17:14-19 )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6 조회수2,488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진리의 말씀

(요한17:14-19 )

14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 16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17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자의 존재론입니다. 신자의 존재론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제자들을 이 세상에 남기고 떠나시기 전에 그들의 거룩에 대해서 하느님께 반복하여 간절히 기도를 하고 계시죠? 제자들에게 '너희는 거룩해야 돼' 가 아니라 '하느님 이들을 거룩하게 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기도를 하고 계시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신자의 거룩이란 것은 신자의 몫이 아닌 하느님의 몫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예요. 신자의 몫이라면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그런 거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씀 안하시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계세요. '하느님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세요. 그 진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계시단 말이에요.

(요한 17:17,19) 17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19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이라는 건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아 내어서 우리 스스로를 성취해 내는 것이기에 앞서서(물론 그런면이 없다 라는 거 아닙니다.) 그에 앞서 하느님 쪽에서 행하는 어떠한 일이고 하느님 쪽에 소속된 책임인 거예요 '거룩'이 뭐예요? 거룩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선하고 착한 삶을 거룩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룩은 separate' 이예요. '구별된 삶' 이 세상의 힘의 원리와 다른 원리로 사는 어떤 무리 그들을 거룩한 무리라고 하는 거예요. '聖徒' 그러니까 거룩이라는 건 성도 안에서 생산되고 성숙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뚫고 들어 온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 시작이 되고 성숙이 되고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권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버지께 성도의 거룩에 대한 기도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성경의 저자와 기록 연대

먼저 성도의 거룩에 유일한 수단으로 제시가 된 '眞理' 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버지의 말씀' 이 곧 '진리' 라는 그 예수님의 말씀부터 이해를 해야 되겠죠? 예수님은 오래 전에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도 진리라 그랬어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 래요. 그런데 요한복음 1장으로 가면 당신이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래요. 삼단논법에 의하면 '진리= 말씀= 예수' 인거예요. 도대체 진리와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하나로 통하게 되는 것인지 잘 한번 들어보세요.

말씀이 진리고? 진리가 예수고? 예수가 진리다. 이 무슨 말이냔 말이에요. 먼저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사야서로 가서 보겠습니다. 오늘 이게 KEY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사야 558-11절을 보세요.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9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10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느님의 생각과 길 즉 하느님의 계획은 인간들의 생각과 계획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세요. 그래서 11절에 보시면 그 하느님의 생각과 계획은 하느님의 말로 이어지죠?

 

하느님의 생각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에요. 하느님의 길, 계획이 곧 말씀이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건 하느님의 생각이고 계획이고 뜻인거예요. 그것은 인간의 것과는 달라서 반드시 성취된대요. 형통한대요. 완성된대요. 이루어 진대요.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 생각 뜻 계획은 반드시 변치않고 이루어진다 라는 의미에서 '진리' 인거예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진리일 수가 없어요.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 하느님의 생각과 뜻과 계획만이 진리예요.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성취가 되요.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을 향한 뜻과 목적을 갖고 계셨죠. 그걸 창조의 목적이라 그러잖아요. 그건 하느님의 생각과 계획이므로 반드시 성취되고야 말아요. 그런데 그 하느님의 마음속에 생각과 뜻으로 들어있던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형상을 가진 신적 존재들로 계획이 되어 있어요. 죽은 흙이 하느님의 형상을 가진 신적 존재가 되는 거예요.

 

하느님은 그 하느님의 형상으로 완성될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죽은 흙에서 어떻게 하느님과 방불한 신적 존재로 완성이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셨어야 됐어요. 거기에 이제 '' 라는 소품이 등장을 하는 거예요. 죄라는 건 하느님만으로 행복해야 하고 존재해야 하는 하느님의 피조물이 다른 것에 마음을 붙이고 거기에서 행복과 만족을 얻어 내고자 하는 모든 사고와 시도와 행위를 '' 라 그러죠.

그래서 죄라는 걸 소품으로 써서 '너희들이 이 죄인이 되었을 때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애?' 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건 곧 자아숭배와 연결이 되죠. 자신이 어떤 상태에서 그런 고급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망각하고 자기자신 안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 그 능력으로 행복과 만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스스로의 힘으로 거기에 도달하려 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가 바로 자아숭배잖아요. '하느님 숭배와 자아숭배' 하느님 숭배를 '' 라고 하고 자아숭배를 '' 라고 하는 거예요. 이 자아숭배를 하는 자들은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 라는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 죄 라는 것이 소품으로 등장을 하는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왜 괜히 선악과를 따먹어 갖고 우리를 이 고생을 시켜 이런 말씀 하시지 말란 말이예요. 그건 다 하느님의 계획이었단 말입니다.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러니 아담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그게 바로 '' 라니깐요? 아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간' 이라는 뜻이잖아요. '' 예요 ''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살아있는 성경! 지구 창조, 그 순간으로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시간과 공간 즉 태초에 레쉬트 시간과 공간을 창조해 주심으로 그 역사 속에서 당신의 백성들이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그러한 하느님의 백성들의 교육 훈련장이요. 양육장인 역사와 인생이 출애굽기에서는 무엇으로 그려지죠? 이 역사와 인생을 출애굽기에서는? '광야 사십 년' 으로 그리고 있잖아요. 그럼 그 출애굽기의 광야 사십년이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주어진 것인지 알면 우리 역사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죠.

(신명 8:1-6 ) 1 너희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계명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행복하게 살며 번성할 것이고 야훼께서 너희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 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2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 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3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찌기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4 지난 사십 년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떨어진 일이 없었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다. 5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잘되라고 고생시키듯이 그렇게 너희를 잘 되라고 고생시키신 것이니, 이를 마음에 새겨 두어라. 6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가 보여 주신 길만을 따라 가도록 하여라.

 

여기에 '말씀'이 나와요. 우리를 거룩케하는 그 말씀이라는 고 단어가 여기 나온단 말이예요.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신명기 8장에는 우리 성도의 목적 즉 성도의 삶의 본질 성도의 존재론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선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고 그들 인생 속에서 그들의 인생 속에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는 이유는 낮추시고 주리게 하신다 라는 말도 인생 속에서의 모든 인간들의 불만족 불행 고난 등을 겪게 하시는 그 모든 것을 낮추시고 주리게 하신다 라는 거예요. 굶긴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려 함이래요.

여기서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라는 그 말씀이 등장하는데요 여기서 빵은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들이 스스로 행복에 도달해 보겠다고 내어놓는 찬란한 업적과 힘과 노력과 열심을 전부 아우르는 말이예요. 그리고 세상이 내어놓는 재화나 가치나 힘 이게 전부 빵이예요. 여러분의 지혜 지식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종류의 힘' '' 이예요 그게. '빵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사람은 그러한 것에 의해서 절대 행복과 만족에 즉 구원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 역사와 인생을 허락하셨다 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를 진짜 행복하고 만족한 존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뭐라고요? 하느님의 말씀. 제가 조금 전에 하느님의 말씀은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우리의 뜻을 관철시켜 하느님을 우리의 조력자로 만들려고 하고 있단 말이예요 자꾸만. 안된단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이 자꾸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하느님의 뜻이 내 삶속에서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 그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느님 나라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우린 자꾸 빵을 달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에서도 '내가 이 세상에 빵을 주러온 거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빵 달라구 그래?' 그리고 도망갔어요. '이 세상 빵' 달라는 사람들 피해서 도망갔다니깐요? 요한복음6장과 여기가 연결돼 있는거예요 신명기는. 빵으로 사는 게 아닌데 자꾸 세상에 빵을 달라 그래요. 하늘의 말씀으로 살아야 돼요. '하늘의 만나 하늘의 빵' 으로 살아야 되는데 이 세상의 빵을 자꾸 달라 그런단 말이예요. 유사 이래로 모든 인간들이 다. 하느님의 은혜를 떠났기 때문에..거기서 자기들 스스로 스스로의 스스로가 정해 놓은 행복을 좇아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

  성경

성도는 이 땅을 살면서 왜 인간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좇아 살게 되었을 때, 그토록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가를 처절하게 경험하고 가야 돼요. 그리고 아울러 하느님의 생각과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뜻이 그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 질 때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가 되는지도 아울러 경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빵 문명과 가치와 재화들은 그런 의도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그것으로 너희들 진짜 행복할 수 있어? 한 일억원 줘 볼께 행복해 봐' 왜 삼성전자 부사장이 투신자살해서 떨어져 죽었을까요? 주식만 한 팔십억 된다는데? 그 사람들 연봉이 한 이십억 됩니다. 뭐가 아쉬워서 그 좋은 집에 큰 재산 그리고 큰 명예 삼성전자 부사장이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예요. 박사입니다 거기다가. 왜 투신자살해서 죽었을까요? 그걸로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 라는 걸 성도에게 보여주시는 거예요 하느님이요. . 빵으로 사는 거 아니예요 우리는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출애굽기16장으로 가면요 인간들에게 빵이 주어지는 이유가 아주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어요. 출애굽기 16장은 이스라엘의 불평으로 만나와 메추라기가 주어지게 되는 신기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장이예요. 재밌는건 그 바로 앞 장인 15장에는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시가 가득 채워져 있죠. 한 장 뒤에 또 원망이 가득 채워져 있어요. 사흘이 지나면서 물이 떨어졌고 두달 반이 지나자 음식이 떨어졌어요. 그 때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리로 데리고 왔냐?' 하느님이 말씀하세요. '그건 나에게 한 말이야. 모세 너한테 한 말이 아니야. 나한테 한 말이야. 나를 모독한거야..' 라고 이야기를 하죠? 배가 고파서 인생이 고달파서... 도저히 하느님 말씀을 좇아 살 수 없다 라는 거예요. 배부를 때는 하느님 찬양했어요. 그런데 배고프니까 금방 원망이 나와.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아침에는 만나를 주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주셨어요.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골고루 ㅎㅎ 어떤분이 메추라기가 매일 저녁 추락한 고기라서 메추라기라고 그러든데 ㅎㅎ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그들의 음식을 마련해 주시면서 하느님이 이런 말씀을 첨언하세요.

 

(출애 16:1-4) 1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은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산 사이에 있는 씬 광야에 이르렀다. 에집트를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보름날이였다. 2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3 '차라리 에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4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 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

하느님께서 세상에 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정말 환경이 좋아지고 배가 부르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생각 하느님의 뜻을 좇아서 하느님이 주시는 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빵을 주셨다는 거예요. 만나와 메추라기를.

 

말이 시험이지 하느님은 절대로 인간은 환경이 좋아지고 배가 불러져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없다 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계셨어요. 하느님이니까. 그럼 그게 무슨 시험이예요. 그 시험은 인간들에게 그들의 실존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그들의 실존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시험이었던 거예요. 그러한 시험 속에 이스라엘의 삶이 실제로 어땠죠? 하느님은 사십년 동안 단 하루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빼먹은 날이 없었어요 단 하루도. 사십년동안 계속 주셨어요 .

 

그런데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만들고 하느님 원망하고 뱀에 물려서 그냥 몰살당하고 하여튼 추악한 것은 다 내놨죠? 배부르게 먹게 해줬는데 어땠어요? 하느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의지대로 못살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깨달아 알았어야 했어요. 하느님의 백성은 이 세상 그 어떤 빵으로도 하느님 나라에 도달할 수 없으며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집념과 뜻과 의지 즉 하느님의 말씀에 이끌려 살 때 하느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음을 배워야 했던 거예요. 그들이 빵을 먹고 힘을 내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고 수련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는 그저 요원할 뿐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은 거기서 배워야 했던 거예요.

빵이라는 건 이런 의미도 있어요. 내가 빵을 먹는다는 건 내가 빵을 먹고 힘을 내어 성경도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연구하고 해서 내가 진리를 한번 깨달아 봐야지 라는 이런 거 이런 것도 빵 먹는 거예요.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요. 이렇게 진리는 빵을 먹고 힘을 내서 깨우치고 습득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부터 침투해 들어오는 거예요. 진리란 내가 습득하고 깨닫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시점에서 나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셨는가에 관한 문제인 거예요. 내가 습득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게 진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성경 연대기 및 교회사

우리 측의 열심과 노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념과 결정과 의지가 곧 진리란 말입니다. 그게 말씀이란 말이에요.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다른 말로 하느님 자신의 당신의 아들은 하느님이니까 하느님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창조하고 완성하시기로 하셨어요. 작정하셨단 말입니다. 그게 하느님의 생각이고 하느님의 말씀이예요. 그걸 은혜라고 그러죠. 그런 하느님의 생각과 뜻과 계획을 말씀이라 그러잖아요? 그래서 그 하느님의 뜻대로 그 뜻을 시행하기 위해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진짜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백성들이 창조되는 그런 어떤 상징적인 것들을 시행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시행하기 위해 오신 '그 분' '하느님의 말씀' 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가 가세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러분이 요한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을 모르고는 전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요? 하느님의 뜻 계획 생각을 성취하러 이 세상에 오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죽으러 오신 그 분이기 때문에 그 뜻을 성취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이 '말씀' 인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그 분이 '진리'인거란 말입니다. 자 말씀 진리 예수가 어떻게 등식으로 연결이 되는지 아시겠죠?

 

(요한 1:1,14)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자 말씀이 육신이 됐다 또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님이다. 이 개념들이 인제 이해가 가시죠? 확실히? . 그 하느님의 말씀 진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느님의 계획대로 성취가 되었어요. 하느님의 의지와 집념과 판단과 생각과 뜻에 의해서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고 거룩하게 되어가고 있고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거고 자유를 얻고 있어요. 그래서 주님은 '진리가 말씀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이야기 하신 거예요.

 

(요한 8:28-32) 28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31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32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을 믿고 좇으면 하느님의 말씀대로 그 뜻대로 살게 되면 그는 자유케된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뜻대로 우리가 자꾸 안 살기 때문에 이렇게 구속이 되어 있는 거예요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하느님의 생명력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서 하늘의 삶을 문득문득 맛보며 사는게 우리여야 되는데 우리 뜻대로 살기로 하고 하느님의 그 생명력을 차단당한 채 이 땅에 갇혀있는 상태 그걸 '땅 지 감옥 옥' 해서 '지옥' 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간혹 지옥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대로 내 의견을 관철시키고 살고 싶어서 그렇게 불행한 거예요. 마치 거기 가면 무슨 대단한 행복이라도 있는 것처럼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의 오랜 소원 진짜 그것만 이루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았던 그 소원 이루어졌을 때 어땠어요? 너무 허탈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 지옥에 갇혀서 자기들의 뜻을 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옥을 살고 있는 거예요.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꾸 침노해 들어와서 우리를 거룩하게 자유하게 만들어 내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뽑아내는 게 자유잖아요. 죄의 세상에 갇혀있는 게 속박이고 구속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뽑혀 나오는 걸 거룩이라고 하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자유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계속해서 말씀이 떨어져야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을 행복하고 어떡하면 이 세상에서 인기있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 것인가에 관한 정보가 떨어져서는 안돼요. 강대상에서는 '하느님의 말씀만' 떨어져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대로만 사셨죠. 그래서 예수님이 그래요.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말만 했고 아버지가 시키는 일만 했다' 바보도 아니고 왜 그래요? 그게 하느님 나라 백성의 삶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그게 바로 말씀을 좇아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바로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가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삶 자체가 진리예요. 우리에게 그 삶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성화는 그 지점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마구 들어지고 이 세상에서 무슨 대단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업적을 섭취하는게 '성화' 가 아니란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부인' 되는 거예요.

 

이 우주의 역사는 하느님의 손바닥 안에 갇혀 있어요. 이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서 우발적으로 우연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사건이나 사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하느님의 掌中 안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어떤 분은 더 열받죠? '아니 하느님 손 안에서 어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야?' 예 맞아요. 하느님의 장중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천지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구요. 천지속에서 교훈되고 가르쳐 지는 하느님 나라도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이 세상의 빵으로 행복과 만족에 구원에 도달하려 하는 시도들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멸망의 자식' 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은 이 세상의 빵에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있는 당신의 택한 백성들의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셔서 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하시고 섬세하게 인도를 하세요. 그게 말씀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의 삶이에요.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하세요. 침 삼킬 동안도 놔두지 않고 직접적으로 간섭을 하세요. 때때로 우리가 '하느님이 내 삶을 뭘 간섭을 해? 내가 아무리 죄를 져도 하느님 나 징계 안하던데?' 하느님이 놔둬 보시는 거예요. 그 죄가 너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경험해 보라구... 간섭하지 않는게 아니라 그게 '하느님의 간섭' 이에요. 그러다가 한번 크게 혼나죠? 그런 간섭 간섭이 우리의 삶에 침 삼킬 동안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쫓아다닌단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너무 잘 응답이 되면 우린 지금 우리 뜻대로 사는 것이지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끌려가는 사람 아니예요. 오만번 기도해서 한 2번 응답받으면 그걸로 족한 거예요.

(시편 105:5-19) 5 얼마나 묘한 일들 하셨는지 생각들 하여라. 그의 기적들, 그 입으로 내리신 판단을 명심하여라. 6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가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7 그분이 바로 야훼 우리 하느님, 온 세상을 바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8 계약을 맺으시며 만대에 내리신 말씀 영원히 잊지 아니하신다. 9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 이사악과 맹세하셨다. 10 이것은 야곱에게 지키라고 세워 주신 법령, 이스라엘이 언제까지나 어길 수 없는 계약이다. 11 '이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준다. 대대로 물려줄 너희 유산이다.' 12 적은 수효, 하찮은 사람들이 이국땅에 나그네 되어 13 이 민족 저 민족을 떠돌아다니면서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민족에게로 방랑하고 있을 때, 14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이 민족을 누르지 못하도록 세상 임금들에게 경고하셨다. 15 '내가 기름부은 자들을 건드리지 말고 나의 예언자들을 해치지 말아라.' 16 그는 또 그 땅에 기근을 불러 들이시고 그들의 식량 지팡이를 부러뜨리셨다. 17 그러나 사람 하나를 먼저 보내셨으니 곧,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이다. 18 요셉은 거기에서 발에 차꼬를 차고 목에는 쇠칼을 쓰고 고생을 하였으나 19 마침내 해몽한 것이 들어맞아 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신분이 밝혀지자

 

야훼의 '말씀'이 뭐다? 하느님의 생각과 계획과 뜻이에요. '말씀'이 요셉을 강하게 간섭하여 그를 애굽으로 먼저 보내고 감옥으로 까지 보내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에 그렇게 간섭을 하세요. ? 단련하기 위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라는 뜻이에요.

5절이나 7절에 나오는 그 '판단' 이라는 단어 '미쉬파트' 라는 단어가 '결정' '언도' 등을 가진 단어예요 법정용어죠. 하느님이 결정하면 그걸로 성취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자꾸 우리의 생각을 내어놓고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면 그 만큼 돌아가는 것이고 그만큼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복하라고 하는 거예요 계속해서.

 

자 그런 하느님의 주권은 이미 창세기 1장에서부터 힌트되고 있었던 것인데요. 제가 먼저 히브리서11장으로 가서 한 절을 읽고 창세기로 가볼게요

(히브113) 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조금 선명하죠? 하느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창조됐다.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는 '빛이 있으라' 이렇게 말하면은 창조되고 '땅아 솟아라' 그러면 그렇게 된거로 알았지만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그대로 생겼다라는 뜻이예요. 그게 말씀으로 창조했다란 뜻이예요. 한번 볼까요 창세기로 가서

(창세 1:1-2)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2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4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5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자 흑암 혼돈과 공허 그것을 흑암으로 지금 요약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운행하고 있어요. 하느님이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하느님이 생각하시고 계약하시고 명하시자 일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거예요. 곧 진리에 의해서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고 있는 모습인 거예요. 그런데 그 천지창조의 맨 처음에 '' 이라는 매개체가 처음으로 창조가 돼죠? 그 빛은 발광체가 없는 상태에서(발광체는 네째날 창조가 되니까... 태양과 달과 별은 네째날 창조가 되니까 첫째날에 그건 발광체가 없는 빛이잖아요) 그 빛은 누구다?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또 그건 요한복음에도 나오죠?

(요한1:1-5)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 은 바로 '예수님' 이예요. 그런데 창세기의 빛이 생기고 그 빛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가 됐어요. 첫째날 둘째날 세째날 그리고 네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 공허가 채워지잖아요. 그 빛에 의해서 그 빛의 매개로 그 창조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요한복음으로 돌아오면 어때요. 어두움이 빛이 왔는데 못알아 보더라는 거예요. 그럼 요한복음 안에는 뭐가 어떤 것이 지금 숨어 있는 걸까요? 어두움이 지금 이 빛을 못 알아보는 것 같이 그러나 이 빛은 반드시 이 어두움을 몰아낸다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창세기하고 요한복음을 같이 연결하여 읽지 못하면 둘다 어설퍼지는 거예요 해석이요.

요한복음은 빛이 하느님이 말씀 하시고 계획과 생각을 가지시고 빛이 그 분의 말씀의 역할을 하시는 빛이 오셔서 천지가 완벽하게 창조가 되고 보시기에 아주 심히 좋았더라 라는 상태로 끝나는 것처럼 우리 어두움뿐인 우리 죄인들의 새창조 또한 그렇게 반드시 완성되고 말것이다 를 보여주는 거예요. 요한복음 1장의 이야기속에 그것이 담겨 있는것입니다. 이해가 가세요? 성경들은 좀 읽으십니까?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읽으시죠? 많이 읽으세요. 한 한장 읽고 맨날 다 읽었다고 그러지 마시고..

 

(골로1:15-17)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16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예수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창세기에는 예수님 안 나오잖아요.'아마르' 라는 단어 하나 밖에 안 나오는데 바오로는 에수님이 창조하셨다고 그러는 거예요. '진리이신 말씀이신 그 분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 모든건 전부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와 은혜로 귀결이 되어야 돼요. 이제 영적으로 주님은 그 빛의 임무. 말씀의 임무를 다 마치시고. 십자가가 끝났으니까 이제 모두 완성하시고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세요. 지금 돌아가시기 직전에 기도를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말씀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해 달라고 반복하여 기도를 하고 계세요. 당신이 벌써 거룩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들을 아버지의 뜻대로 거룩하게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이제 조금 있으면 십자가를 지시고 거룩하게 완전히 완성시켜 놓을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서 저희들을 보호하사 거룩하게 해 달래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그 거룩의 완성은 진행형이 되어야 된다 라는 거죠?

  성경을 해석하면 이단?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루신 예수님의 말씀으로서의 사역을 우리는 이제 그대로 실제화하여 살아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수난의 삶을 살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가 나를 거룩하게 했다 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하느님이 거룩하게 하실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수난의 삶과 십자가의 삶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 삶 그런 수난과 십자가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거룩하게 지어져 가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중대한 표지인 거예요. 유일한 표지인 거예요

'나는 착한 일을 이렇게 많이 했어요 성품이 이렇게 변했어요' 가 아니예요. 그게 거룩하게 되어진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만큼 십자가의 삶을 통과하고 있는가가 지금 거룩하게 되어져 가고 있는가 아닌가를 판단한다니깐요. 예수님이 그 삶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거룩하게 해주세요 하고 갔단 말이예요 우리한텐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야 돼요 지금. 아들이 기도했기 때문에. 아들도 하느님이에요. 하느님의 기도 하느님의 뜻은 완전히 성취가 되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자기부인과 수난과 십자가의 삶을 반드시 살게 되어 있어요. 그게 거룩하게 되어져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고전 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 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31 그러므로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완료예요. 거룩함이 거룩하게 된거죠? 그 거룩함은 우리가 거룩해진게 아니라 거룩한 예수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거룩함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게 된 거예요.

(히브1010.14)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 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4 그분은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거룩하게 만드신 사람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거룩하게 된 자들' 전부 완료시제예요. 어떻게 거룩하게 됐어요? 그 말씀 예수님의 그 말씀 사역에 의해서 말씀으로 오신 말씀사역에 의해서. 그런데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말씀으로 우리를 진리로 말씀으로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보호 해달라고 보전해 달라고 기도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의 삶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바오로가 그러죠? '우리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의 죽음을 우리의 삶에 짊어짐은' 그 말이 뭐라 그랬어요. '예수가 십자가 지고 죽은 그 삶 전체가 우리의 이 삶 속에 우리 어깨 위에 얹혀짐은' 이란 뜻이예요. 모든 성도의 삶이 다 똑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부인당해요. 그런데 그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하느님의 보호하심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고 가신 것입니다.

오해하시면 안되는게 하느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하니까 그냥 하느님이 순식간에 말씀만으로 모든것을 이루셨다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의지가 그러했으며 그것이 결과로 나타났다는 말씀이지 하느님이 말만 하시고 아무 일도 안하셨다 라는 그런 말씀이 아닌 거예요. 그러면 칠일째 왜 쉬어요 말만 했으면 칠일째 왜 쉬냐구. 그런 말이 거기에 왜 나오겠어요? 그런 말도 어패가 있는 거예요. 하느님은 쉴 필요가 없는 분이에요.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쉬어요?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새 창조에 개입하셔서 끊임없이 이 일을 하신다 라는 걸 교회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하느님이 마치 무슨 대단한 일을 6일동안 한 것처럼 그렇게 칠일째 쉬셨다 라는 말을 거기다 넣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아버지가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무슨 일을 하세요 아버지가?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세상에서 건져내는 일을 하신단 말이에요.

 

그래서 창세기 1장에 하느님이 칠일째 쉬셨다 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안식의 날이 되면 그 때 비로서 쉬세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전히 완성될 때 하느님이 그 때 쉬세요. 그 전까지는? 침 삼킬 동안도 우리를 놓지 않고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일을 하신다니깐요. 우리의 삶은 그 하느님의 일하심의 결과란 말입니다. 한 번 확인하죠.

(요한5:17)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이 땅 위에 오셔서 말씀에 좇아 말씀의 역할을 하셨어요. 말씀의 사역을 하셨는데 그 말씀의 사역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이 일을 하시니 내가 일을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하느님의 일이 지금 나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하느님이 그렇게 일을 하신단 말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하느님의 보호하심' 이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본문15절로 가 볼게요.

15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말씀에 의해 거룩하게 된 자들을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 속에서 보호하시는 데요 시편기자는 그 하느님의 보호하심의 역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편121:3-5) 3 네 발이 헛디딜까 야훼, 너를 지키시며 졸지 아니하시리라.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 졸지 않고 잠들지도 아니하신다. 5 야훼는 너의 그늘, 너를 지키시는 이, 야훼께서 네 오른편에 서 계신다.

하느님이 항상 내 그늘이 된다 라는 것은 나에게서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는다는 뜻이예요. 그리고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킨대요 보호하신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잘 때도 우리는 거룩한 자로 만들어져 가고 있어요. 누구에 의해서? 하느님의 뜻. 말씀에 의해서. 하느님은 안 주무세요 우리가 잘 때도~ 자 그런데 어디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거예요?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세요.

  성경은 누가 썼을까???

자 하느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당신들의 백성이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는데 그게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거룩한 나라로 완성해 내시는 하느님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세상나라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지키는 거에요. 이 나라가 세상나라에 흡수되지 않게 하느님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건데 그 '' 이 무언지가 예레미야서로 가면 나와요.

(예레미야 2:17-19) 17 왜 이 꼴이 되었는지 알고 있느냐? 너희를 이끌어 주던 야훼 너희 하느님을 저버리고서야 어찌 이 꼴이 되지 않겠느냐? 18 그런데 이제 너희가 나일강 물을 마시러 에집트로 가다니 웬 말이며, 유프라테스강 물을 마시러 아시리아로 가다니 웬 말이냐 19 너희가 너무나 못되게 굴었기에 이 벌을 내리는 것이다. 나를 배신하다가 너희는 이 죄를 받는 것이다. 야훼 너희 하느님을 저버리고 공경하지 않다가 이 처참한 재난을 겪는 것인 줄 똑똑히 알아라. 만군의 야훼가 하는 말이다.

 

하느님을 버리고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고 지가 지를 우상 삼아서 지 뜻대로 사는 걸 '' 이라 그래요. 그러면 거기에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달라고 예수님이 지금 기도하시는데 그럼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달라는 건 어떻게 해 달라는 거예요? '지 뜻과 야망 비전은 다 부숴 버리시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아주 자근자근 밟아 주세요' 라는 뜻이에요. 하느님은 거기서 성도를 건지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 살게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금방 위서는 '세상에서 이들은 핍박을 받게 될거예요' 라고 이야기 해 놓고 바로 밑에서 '하느님 이들을 단지 악에 빠지지 않게만 보호하세요. 세상이 그들을 강력한 힘으로 공격을 할 터인데 그 때 대다수의 인간은 전부 세상에게 항복하여 그 세상의 힘의 원리를 쫓아 자기를 우상삼아 살게 될 거예요.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은 내게 주신 당신의 백성은 절대 그 세상 속에서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세요' 예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국가에도 들어가있죠? 그 말이.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ㅎㅎ 무궁하게 우리나라 보전해 달라는 거죠. 그래서 국화도 무궁화잖아요 사실이에요. 그래서 무궁화로 만든 거예요. 국화로 지정한 거예요. 그게 하느님의 보호하심 아니라니깐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욥기로 가면요 그러한 하느님의 일하심 아래에 있는 자들의 삶이 어떠한 지가 잘 나타나 있어요.

(욥기 7:17-19) 17 사람이 무엇인데,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십니까? 어찌하여 그에게 신경을 쓰십니까? 18 어찌하여 아침마다 그를 찾으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에게 시련을 주십니까? 19 끝내 나에게서 눈을 떼시지 않으시렵니까? 침 삼킬 동안도 버려두시지 않으시렵니까?

하느님이 욥만 쫓아다닌 게 아니에요. 이게 우리 모든 성도의 현실입니다. '하느님 나 좀 가만 놔 두세요. 그런데 침 삼킬 동안도 안놓고 쫓아 다닌데요. 하느님의 보전하심이 이렇게 권징과 시험과 회초리로 오게 되는 거예요. 그것도 아침마다 아니 분초마다 우리에게 떨어진대요.

 

(예레 15:16-18) 16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는 받아 삼켰습니다. 만군의 야훼 하느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 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에 흐뭇하기만 하였습니다. 17 저는 웃으며 깔깔대는 자들과 한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의해서. 예레미야에게 고통이 계속 되었고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목적지로 끌려가는 이들은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다른 이들에게 그 말씀.. 즉 하느님의 뜻과 의중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되어 있어요.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러 온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어요? '자기부인' '수난' '십자가' 였죠?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서 말씀을 전하는 삶으로 살아서 다른 이들에게 증인으로 보여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의 삶이 반드시 나와야 돼요.

 

(요한 17:8,20) 8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 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깨달았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20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그렇죠? 예수가 말씀을 줬더니 그들이 말을 전하여. 예수를 다른 이들을 예수를 믿게 만드는 그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거 거룩하게 되는거 악에 빠지지 않는거 다 같은 말인 거예요. 그리고 그 삶을 통하여 말씀에 의해 끌려가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자기가 부인되고 십자가를 지는 그 말씀에 의해 진리에 의해 끌려가는 삶을 통하여 다른 이들이 살아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의해서 끌려가던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한 번 볼까요?

(예레 20:7-10) 7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8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 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9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 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10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거립니다. '저자야말로 사면초가다. 고발하자, 고발하자.' 저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제가 망하기를 바라 모의합니다. '걸어 넘어뜨리고 잡아 족치자. 앙갚음을 하자'

 

여기 7절의 '억지' 라는 단어가 '파타' 라는 단어인데 '유혹하다 속이다 설득하다' 라는 단어예요. 오죽하면 예레미야가 '나 하느님께 속았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 이럴 거면 나 하느님 말씀 안 전했어요. 나 하느님한테 속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말씀을 받고 나니까 나는 다시는 하느님 말씀 안 전해야지 그럴 때마다 내 속이 뒤집어 져서 답답하여 안전하고는 못 견딜 정도로 하느님이 또 그렇게 만들어 버리셔요. 그런데 그 삶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조롱과 멸시가 계속 나에게 닥쳐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너는 혹시 실수 안하나 보자 그러고 고소를 할라고 요게 무슨 실수를 하나 찾고 있다' 라는 거예요 환장하는 거예요 이게.....ㅎㅎ 제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을 했는지... 나는 예레미야가 너무 좋아 ㅎㅎ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점차 세상에서 뽑아내는 거고 세상에서 미움과 조롱을 당하도록 우리의 관심을 위엣 것으로 돌리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게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져 가는 사람의 삶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귀를 즐겁게 하고 세상적인 위로를 해주는 말씀을 찾아서 이리저리 말씀쇼핑을 다녀요. 말씀은 그를 완전히 난도질해서 너덜너덜 걸레짝으로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위로를 받으려고 그래요. 세상적 위로. 그냥 말씀은 응용심리학의 하나가 되어 버렸어요. 그냥 착하게 잘살자 라는 도덕 윤리강연이 되어 버렸어요. 이렇게 삽시다 저렇게 삽시다~ 양심에 맞게 '양심' 대로 사는 걸 '' 이라고 합니까? '양심'은 뭐라고 해요 로마서에서? '우리 안에 심은 율법' 이라 그러죠. 그 양심대로 율법대로 사는 걸 예수님이 '독사의 새끼' 라 그랬습니다.

양심을 좇아 사는 게 아니라..나는 왜 이렇게 양심도 없는 인간일까..를 폭로당하는 게 성숙이라고 하는 거예요 오히려. 그 때에 진짜 하느님의 법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진짜 하느님의 법이 내 안에서 실행이 되는 것이지 우리가 양심대로 살아 양심냉장고 주고 뭐 이러면서 세상을 계몽하고 계도하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 이건 성경적 관점이 아닌 거예요.

 

자 그렇게 사람들은 그냥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적 위로를 주는 그리고 나의 가치를 좀 더 높여주는 그냥 그러한 것 위로의 말 정도로만 여겨요. 그래서 진짜 내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말씀이 떨어지면 오래 못 견딥니다. 계속 후벼 파거든요 찔른 데 또 찔르구 찔른 데 또 찔르구 그러니까 너무 아파요. 듣기 좋은 소리도 삼세번이라는데 듣기 싫은 소리를 삼백번을 하냐 못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 계속 부인되어져야 해요.

하느님은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경솔히 여기는 자들을 가리켜 연예인을 찾듯 말씀을 찾는 자라고 일갈을 하세요 연예인을 찾듯. 그리고 그런 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냥 연예인들이 부르는 노래 정도로 그렇게 여긴다 그래요. 제 말이 아니에요 성경에 나와 있어요. 에제키엘서로 가보세요.

(에제 33:30-33) 30 너 사람아, 네 겨레가 담 곁에서 또 집 문 앞에서 네 말을 하며 서로 끼리끼리 '야훼께서 무슨 말씀을 내리셨는지 가서 들어나 보자' 하며 31 구경거리나 난 듯 너에게 모여 올 것이다. 나의 백성은 네 앞에 앉아서 말을 듣기는 하겠지만 그대로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로는 좋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제 좋을 대로만 하리라. 32 너는 수금을 뜯으며 고운 소리로 사랑의 노래나 읊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네 말을 듣기는 하겠지만, 그대로 실행하지 아니하리라. 33 그러다가 네 말이 들어맞는 것을 보고서야 저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죠? 가수같이 연예인같이 신부.교사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니깐요. 아주 걱정이에요 저는ㅎㅎ 그런 인간들이 전혀 안 변해요 대화를 나눠보면은 똑같애 옛날하고. 저를 그냥 연예인으로 보는 거예요? ㅎㅎ 여기 나오잖아요.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이게.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거예요. 좋은 음악듣는 것처럼. 그들이 어떻게 십자가의 삶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읽기

 

정리를 하죠.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계획이며 하느님의 능력이며 하느님의 계약이에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계획입니다. 의지예요. 그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안 이루어진다? 이루어져요. 지금 우리 안에 아직 어두움이 남아 있을지 몰라요. 아니 많은 부분 어두움이에요 저도 그러니까...

그러나 그건 요한복음을 보면 그렇지만 창세기로 옮겨가면 그 어둠은 반드시 쫓겨납니다. 진리이고 말씀이니까. 반드시 형통하고 완성된단 말입니다. '말씀' 은 우리 신자들을 이 세상 속에서도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어요. '말씀' 이 지금 하늘로 올라가시고 자기의 자취를 남겨 주셨는데 그게 '성경'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해야 돼요. 성경공부하세요.

왜 재미난 얘기 안해주냐고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재미난 얘기는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어요. 성경말씀 가지고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라고 그래요. 성경을 알아야 돼요. 성경을 배워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신령한 젖, 애기 엄마들 애기들이 그 젖먹을 때 얼마나 열광적으로 빱니까? 부르트도록 빨아요. 그렇게 우리가 말씀에 대한 갈증과 열망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116절에서 23절까지를 결론으로 읽고 마치겠습니다.

(베전 1:16-25/2:1-3) 16 성서에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게 되어라' 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17 그리고 여러분은 각자의 업적에 따라서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은 늘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18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그것은 은이나 금 따위의 없어질 물건으로 값을 치르고 된 일이 아니라 19 흠도 티도 없는 어린 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얻은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그분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21 여러분은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져서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심으로 열렬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새로 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 곧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났습니다. 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다'.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을 버리십시오. 2 그리고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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