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도가 해야 할 선한 일 (요한5:17-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7 조회수2,910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도가 해야 할 선한 일

 

(요한5:17-30)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께서 안식일법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19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일도 보여 주실 것이다. 21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22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23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24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25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26 아버지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27 아버지께서는 또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28 내 말에 놀라지 말라.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올 때가 올 것이다. 29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 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30 '나는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저 하느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

 

지난 시간에는 삼십팔년된 병자의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은 인간 측에서의 어떠한 행위나 노력도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 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은혜의 집인 베찌타에서 구원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조차도 주님 나 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주님께 연못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죄인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아니 잊은 정도가 아니라 그 은혜를 거부하며 삽니다. 그게 하느님의 자리를 빼앗은 인간의 오만함입니다. 그래서 자꾸 자신의 힘을 하느님의 구원에 보태고 싶어 하는 것이 죄인들의 속성입니다. 나도 힘이 있는데 왜 거저 받아야 하냐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죄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만 주어집니다. 인간의 힘으로 지은 성전 벽의 마지막 심판의 문으로 끝나는 것은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 사역에 아무 것도 보탤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좋은 상징인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하느님의 약속과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해 38년간 광야를 헤맨 이스라엘이었으 며, 자신이 하느님의 요구인 율법과 제사를 잘 지켜내고 있다고 착각을 한 바리사이들이었으며, 여전히 이 세상의 힘과 방법으로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여념이 없는 오늘날의 죄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그렇게 소경이며 절뚝발이며 중풍병자들에게 하느님이 먼저 찾아가셔서 그 저주의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하느님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느님의 일에 보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하느님의 일이라고 표현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5:17) 17 그러나 예수깨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일은 성도들을 이 저주의 땅에서 건져내시는 하느님의 새 창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해야 하는 하느님의 일도 헌금이나 봉사나 선교가 아니라 하느님과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19절에서 주님께서 하신 그 일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하신 일이지 자신이 스스로 하신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요한5:19) 19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하고계신 일을 자기도 하고 있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시는이라는 단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데 자신도 바로 그 아버지가 하고계신 그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고대 사회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가업의 비밀을 전승하는 그림에 빗대어 설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업을 계승할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따라하도록 했습니다. 가령 목수는 대패질을 어떻게 하는지, 다림줄을 어떻게 쓰는지, 나무를 어떻게 짜는지, 못 질은 어떻게 하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아들에게 보여주고 똑같이 따라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씨는 몇 개씩 어떠한 방법으로 뿌려야 하며, 언제 잡초를 뽑아야 하며, 추수는 어느 시점에 하는지, 탈곡은 어떻게 하는지를 세심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가업의 전수는 꼭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업을 전수해 주면서 그 가업의 비법이 전수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업 계승에는 비밀이 생기게 되고 아주 배타적이고 은밀한 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이러한 고대 사회의 가업 계승의 그림을 사용해서 예수께서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지요.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런데 그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지고 있는 하느님과 당신의 일은 비밀이라서 너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이 한 구절에 모두 담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그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20절과 21절 그리고 22절에서 밝히고 계십니다.

 

(요한5:20-22)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일도 보여 주실 것이다. 21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22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이신 당신께 지금 베찌타에서 보이신 일과는 비교도 안되는 더 큰일을 보이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더큰일이라는 것은 21절과 22절의 말씀처럼 죽은 이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일심판을 하시는 일입니 다. 구원과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이 베찌타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은 하느님의 구원과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더 큰 일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1장에서도 보았습니다.

(요한1:50-51) 50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51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장에서는 그 더 큰 일을 어떠한 일로 묘사를 합니까? 인자 위로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연합이 되는 일을 더 큰 일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더 큰 일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땅의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풍성한 생명력을 다시 회복하여 하늘의 사람들로 구원을 받게 되는 모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을 포함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키신 기적들은 모두 그 더 큰 일을 가리키는 것들이었고 그 더 큰 일을 이루고 계신 일이었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더 큰 일은 우리 성도들에게서도 나타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14:10-12)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10절을 보시면 오늘 본문 19절의 해설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오늘 본문 19절에서 당신이 하시는 일은 하느님 아버지가 하신 일 을 보고 아들로서 지금 일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의 진의는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가 하신 일을 그대로 보고 모방을 하고 계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와 주님은 한 뜻으로 함께 일을 하고 계신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게 왜 그리 중요한가 하면 그 더 큰 일이 우리 성도들에게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읽으신 1412절을 보시면 주님께 서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더 큰 일을 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 더 큰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지요? 구원과 심판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이 주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다 가신 구원과 심판의 삶 을 살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복음의 증거로 인해 구원 얻을 자들이 돌아오게 되고 심판 받을 자들에게 심판 이 선포가 되게 된다는 말입니다.

 

(고후2:15-16) 15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구원받을 사람에게나 멸망당할 사람에게나 다 같이 풍겨 나가지만 16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역겨운 죽음의 악취가 되고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감미로운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향기의 구실을 아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땅을 향기로 살아가야 하는데 구원을 얻을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향기로, 심판을 받을 자들에게는 사망의 향기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구원과 심판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게 바로 더 큰 일입니다. 그런데 그 더 큰 일은 주님께서 더 큰 일을 하실 때 하느님께서 주님 속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신 것처럼 우리 속에서도 성령 하느님께서 그 일을 필연적으로 만들어 내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일관성 있게 기술하고 있는 것은 구원은 성화나 영화까지 모두 다 은혜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계속해서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라고 반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5:19,30) 19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30 '나는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저 하느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아들 안에서 행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하느님의 뜻이 주님의 인생 안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큰일에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견조차도 개입 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느님은 완전한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의견이나 노력이나 행위가 그 하느님의 큰일에 개입될 수가 없습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9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은혜로 선물로 공짜로 주셨답니다. 9절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그 이유가 우리가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자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드실까요?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을 자랑하는 자들에서 하느님을 자랑하는 자로의 회귀이기 때문입니다. 카인이 왜 하느님께 화를 냈지요?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서 제사를 드렸는데 하느님께서 안 받아 주시니까 화를 낸 것입니다.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12)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바리사이들이 왜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자기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자신들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예수님이 독사의 새끼라고 자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 앞에서, 혹은 다른 이들에게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랑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게 창조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이라는 것은 죄의 본질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랑이라는 것을 손톱만큼도 용납하시지 않기 위해 온전히 홀로 성도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논리를 가지고 오늘 본문 29절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요한5:29) 29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선한 일을 행한 자만이 생명의 부활로 나올 수 있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마치 착한 일을 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처럼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구원은 은혜가 아니지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선한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호수아23:14) 14 보시오. 이제 나는 누구나 가야 하는 마지막 길을 가게 되었소. 아무쪼록 마음 속 깊이 뼛속에 새겨 두시오. 여러분의 하느님 야훼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약속을 해 주셨는데, 그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이행되지 않은 것이 있었소? 그대로 안 된 것 하나 없이 모두 이루어졌소.

 

여기에 나오는 히브리어 선한 일’ ‘토브는 창세기의 창조 후에 나오는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입니다. 토브라 는 단어가 70인 역에서 아가또스라는 헬라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선한 일과 이 곳 여호수아서의 선한일은 같은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호수아서의 선한 일이 어떠한 일인지를 알면 오늘 본문의 선한 일이 이해가 되겠지요?

 

지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유언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선한일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당신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까지 데리고 들어가시는 출애굽의 모든 여정선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 선한 일이 이스라엘에게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선한 일‘’토브도 하느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가리키는 새 창조를 힌트 하는 단어라고 했지요?

 

(히브13:21) 21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당신께서 기뻐하실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히브리서 저자는 선한 일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지요.’온전케 하시고‘’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이루시기를모두 일의동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신 것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필립비서 1장에 나오지요?

 

(필립1:6) 6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계속하실 것이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여기서 훌륭한 일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정확하게 선한 일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 선한 일은 하느님께서 시작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 분명해 졌지요?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이 뭡니까? 우리 안에서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새 창조가 점차로 진행되어져 가면서 우리에게서 나오게 되는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열매는 누가 맺는 것입니까? 하느님이 맺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선한 일이, 거룩하게 지어져가고 있는 모양이 그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을 성령의 열매라고도 부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29절에 선한 일을 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기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선한 일이지만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선한 일인 것입니다. 역시 은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의 救贖史뿐 아니라 우주의 역사까지도 모두 하느님의 계획 아래에서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느님의 일하심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 하느님의 자녀로 잘 자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라남 역시 하느님에 의해 반드시 완성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우리를 바꿔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오직 은혜만으로 우리를 완성시켜 가신다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이해하는 만큼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되고 그 터져 나오는 감사가 우리의 손발을 움직이 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우리에게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선한 일인 것입니다.

 

(요한17:17) 17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데살전1:5) 5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이 그저 말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굳은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살전2:13) 13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 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변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걸 우리가 행하는 선한 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에서 종말까지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 앞에서 분노가 치미세요? 아니면 안도가 되십니까?

 

아직까지도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들을 때 분노를 하게 되지요. 이렇게 위대한 인간이 어떠한 절대자에 의해 정해진 역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의 자리를 차고앉은 아담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 지를 알고 그 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옳고 선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그러한 분의 손에 의해 나의 운명이 이끌려 간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모든 것이 완성되고 있다는 복음 앞에 감사의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그렇게 은혜로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며 그 분의 계획과 의도에 나를 맞추어 가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몰몬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아직도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배려가 달갑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 가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살겠다는 순종의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항복하고 자신이 탈취했던 하느님의 왕위를 하느님께 돌려드린 성도들은 하느님의 크심과 그 분의 선하심을 알기에 그 분의 뜻과 계획에 자신의 삶을 기쁘게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일어날지라도 혹시 나에게 고쳐야 할 부분이 없는가 하고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일들이 내 안에서 행하시는 하느님의 선한 일의 한 부분이라는 믿음 속에서 잘 견뎌 내는 것입니다. 성도에 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선한 일입니다. 동의하세요?

 

하늘에 희망을 둔 성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선한 일인 것입니다. ? 그 모든 사건들이 우리의 거룩을 합력하여 완성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풍랑이 닥쳐도 그 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며 너끈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남들에게 억지스러운 모함을 당해도 그 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알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이 역사를 운행하시는 것이지 괴롭히기 위해 이 역사를 경륜해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배려라는 것을 잊지 말고 잘 이겨내십시오.

하느님은 지금 은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잘 참아내십시오.

 

오늘 본문 29절의 내용을 잘 기억하세요. 선한 일을 행한 자만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서 일어나는 선한 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이긴자들의 웃음

 

빠진거 보충으로 넣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