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4주일/웃기지마! 하는님/박 재구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7 조회수2,513 추천수1 반대(0) 신고
2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 6,1-6)

 

웃기지마 ! 하느님 ?
                                                           박 재구 신부-


어려서 가난한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돕다가 결혼도 하지 않고 홀연히 가출(?)한 예수님. 별로 배운 것도 없으면서 방랑 설교자가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나타난 나자렛 예수님. 예수님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권위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엉뚱하고 별 볼일 없는 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 능력이 있다고? 웃기지마! 내가 아는데, 그는 별 볼일 없는 목수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약함’이다. “저 사람은 별 볼일 없는 고장 나자렛에서 일하던 목수가 아닌가?” 이 한 마디는 그분이 ‘참으로 약하고, 별 볼일 없고,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자수성가하여 삐까 뻔쩍한 차림으로 직한 제자들과 함께 찾아 왔다면 또 모를까...

예수님의 약함은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약육강식의 삶의 현장에서 선입견을 가지고 그릇된 판단을 정의라고 외치며, 진실을 왜곡시키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갖기는커녕 ‘웃기고 있다’고 비아냥대는 현실 속에서 또 다시 예수님은 외면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도 모르게 2000년 전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약한 예수님을 바라보며 ‘웃기지마! 하느님’하면서 제멋대로 판단하고 세상의 강함에 굴복하고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발목을 잡고 있지 않는가?

선입견을 한번 갖게 되면 그것을 벗어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항상 그 선입견 때문에 형평성을 잃은 판단을 하게 마련인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재정립해 보아야 한다. 첫째, 편견과 전이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만이 우리를 한 단계 더 성숙 시킬 것이요, 신앙에서도 진일보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방관자적인 지식은 결코 참된 신앙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 했다는 사실은 굉장한 은총의 선물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은총의 선물이 신앙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왜일까?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섣부른 앎,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리에만 머무른 방관자적인 지식이 결국 나자렛 사람들의 축복을 신앙의 장애물로 변모 시킨 것이다.

스스로 낮추시며 별 볼일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을 드러내시는 약하신 주님, 이 약함을 통하여 인간의 교만으로 빚어진 죄스런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당신의 약함으로 인간의 무모하고도 죄스러운 강함을 부숴 버리는 참으로 위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웃기지마! 하느님’이 아니라, ‘예, 주님, 나의 하느님’을 고백하며 주님의 약함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노력하자.


편집 - 원 근 식 요아킴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