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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를 죽인 율법 (요한 18 :28-4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8 조회수2,052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예수를 죽인 율법

 

(요한 18 :28-40)

28 사람들이 예수를 가야파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그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그들은 부정을 타서 과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까봐 총독 관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9 결국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너희는 이 사람을 무슨 죄로 고발하느냐?' 하고 물었다. 30 그들은 빌라도에게 '이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여기까지 끌고 왔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31 그러자 빌라도는 '너희는 데리고 가서 너희의 법대로 처리하라'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2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실 것인가를 암시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33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34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5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38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유다인들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 39 과월절이 되면 나는 너희의 관례에 따라 죄인 하나를 놓아 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 유다인의 왕을 놓아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물었다. 40 그러자 그들은 악을 쓰며 '그자는 안 됩니다. 바라빠를 놓아 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바라빠는 강도였다.

  사순 묵상] 수난 16_후세를 위해 남기는 본시오 빌라도의 일기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너에게 해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라고 되물으세요  

주님은 지금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서 예수님의 왕되심을 알게 된 자들과 하느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세상 왕들에게 속해있는 자들이 세상 왕에게 속해있는 자들이 분리되어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거예요. 니가 지금 니 안의 어떤 분에 의해 내가 왕임을 내가 왕임을 알려주는 어떤 분에 의해 니 안에 내가 왕이라는 자각이 있어 나한테 왕이냐 라고 물어보는 거냐? 아니면 그냥 누구에게 듣고 물어보는 거냐? 이렇게 지금 예수님이 되물으시는 거예요.

물론 빌라도는 예수님의 왕되심에 의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의 표본이요 상징입니다.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예수님은 빌라도와의 대화 속에서 그가 세상권세에 속한 자임을 완전히 드러내 버리세요.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인 사도신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예요.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그 빌라도는 바로 우리 모든 이들 하느님을 때려죽인 모든 이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거라고 그랬죠?

빌라도는 스스로가 하느님의 은혜의 백성이 아님을 자인한 거예요. 물론 상징적 암시입니다.

유대인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때려죽인 장본인이지만 이중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의 선택을 받은 백성을 상징하기도 한단 말이죠? 그런데 '네가 유대인이냐?' 라고 이야기한 건 '난 아니야~ 니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데 나는 선택받은 유대인일 필요도 없고 나는 아니야' 라고 자기 스스로 고백을 하는 거죠.

 

 그렇게 빌라도가 예수님의 왕되심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하자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답을 주세요. 본문 36, 37절 다시 한번 볼게요.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왕되심을 확실하게 밝히세요. 그러나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러니까 지금 빌라도라는 이 세상 권세잡은 자와 예수라는 하느님 나라의 왕이 대척점에서 마주 서 있는 거죠? 지금.

 

빌라도는 당시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로마황제의 대리인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상권세 잡은 자와 하느님 나라의 왕이 대척점에서 지금 마주 서 있는거예요. 그런 이 세상권세 잡은 자의 상징인 빌라도는 엄청난 힘과 권세로 하늘 왕을 심판하고 있어요. 반면에 하늘 왕이라는 분은 이 세상 왕에게 무력하게 당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종들이 있다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해서 자신이 힘이 없어서 당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명확히 밝히시죠. 여기서 종들이란 누구겠어요? 제자들일까요? 아니죠? 600명 이상의 로마병사들을 포함한 그런 체포조가 왔는데 제자들 몇 명이 그걸 어떻게 이겨요. 종들이라는 건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종들이 있는데 왜 하늘 왕이 그냥 당하고 있냔 말이에요.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하느님 나라는 먼 훗날 완성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실제화하여 존재하는 나라예요.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에서 그 '' 이 복수라고 그랬죠?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늘들'이 그 안에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사실 하느님 나라가 들어가 있는 거란 말입니다.

아니 하느님 나라는 원래 있지 않았나요? 아니오 없었어요.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존재할 공간이 필요가 없어요. 하느님 나라라는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육신을 입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느님 나라라는 걸 만드셔야 돼요. 그 하느님 나라를 원형으로 모형으로 하여 모형으로 창조된 게 이 세상이에요. 그래서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고 그 하늘들과 땅을 모형으로 땅을 창조하시고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는 영원 속에서 지금 실하고 있는 거죠.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시점이 하나로 통합이 된 개념이 영원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영원 속에서는 시간차가 없고 기다림이 없어요. 그러니까 영원 속에서 하느님이 계획한 건 이루어진 거예요. 그래서이미 지금 이루어져 있단 말입니다. 실제하는 거예요.

''이라는 그 단어는 'now' 지금 내 나라는 존재하고 있는데 그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지금이에요 지금! 그러니까 예수님도 지금 내 나라가 실제하고 있다 현존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감추어 있다 감추어져 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은닉성이라는 것입니다.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하느님 나라가 실재! 하는데 사람들 눈에 안 보이게 감추어져 있다라는 거예요. 숨기어져 있다라는 거예요  위력은 그대로 다 발휘를 하고 있는데 단지 감추어져 있어요. 누구 눈에만 보이냐. 믿음이 허락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만 보이도록 하느님 나라는 '은닉성과 부재성'을 갖고 이 땅에 오는 거예요.

세상나라가 하느님 나라를 아무리 공격할려고 해도 하느님 나라가 세상나라에 대하여 응전하지 않아요. 어차피 세상나라는 하느님 나라에 의해 점령당하게 돼있어요. 먹히게 돼있어요.

(묵시 225) 5 이제 그 도성에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왕이라는 뜻이에요. 하느님 나라의 왕. 어떤 의미의 왕이냔 말이에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처럼 왕노릇을 하며 살게 된다 그래요

(묵시5:9-10) 9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 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10 당신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왕국을 이루게 하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땅 위에서 왕노릇할 것입니다.'

(묵시 20:4-6) 4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을 잘리운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5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거룩합니다. 그들에게는 둘째 죽음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제가 되고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

 

여기서 천 년이라는 건 교회가 이 땅에서 살게 될 영생이라 그랬어요. 그걸 기간으로 보지 말고 상태로 보자 그랬죠? 물론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에서 그 천년은 전부 기간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때 이제 하느님의 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한다라고 이야길 하는데 그러면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이 전에는 없었나요 하느님의 백성은 다 교회에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왕노릇 못하는 거예요? 예수님 초림 전에 태어났으니까.

왜 창세기에서 므두셀라가 969살인가요? 왜 가장 오래 산 인간의 수명이 천 년을 못 넘을까요. 천이라는 건 십이라는 완전수의 세제곱이에요. 완전한 완전한 완전. 그걸 영생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상징이죠 물론.

요한18; 28-40 "정치재판"-빌라도와의 대면 

그러니까 그 천년을 영생이라는 상태로 본다면 교회가 사는 삶 ,왕노릇의 삶, 그 상태로 본다면 예수님 초림 이전에 태어난 모든 교회도 바로 그 천 년을 사는 거고 그 천 년동안 , 세상에 대하여 왕노릇을 하는 사람들 왕노릇을 하는 기간.이란 말예요 그때가. 그러니까 그 천 년이 바로 성도가 사는 영생이에요. 그러면 지금 영생을 살고 계시죠. 영생이 뭐라 그랬어요. 영원한 생명 영원 속에서의 삶. 영원은 뭐다? 과거 미래 현재가 통합된 개념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 세상 속에서 과거의 십자가로도 달려가서 거기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도 받고 미래의 그 예수님의 재림 부활의 시점으로 가서 거기에서 부활의 영광을 맛보기도 하는 거죠. 그렇게  영생을 살고 있잖아요. 그게 여러분에게 적용이 된다라는 것 자체가 영생인 거예요. 성도는 다 영생을 살고 있어요. 그러면 그 영생을 살고 있는 천 년의 기간 동안에 성도들은 전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을 한다고 하는데 뭔 놈의 왕노릇이 이러냔 말이에요. 무슨 왕이 이래요..

 

자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늘 왕이 내려 오셔서 내가 왕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지금 now -'

지금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그 나라 왕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분의 삶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보냐 보이냐는 말이에요. 어떻게 드러나요? 결박당함으로 드러난단 말입니다. 뚜드려 맞음으로 드러나요. 심지어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드러나요. 죽음으로 결판이 난다 말입니다. 그게 하늘 왕이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인 거예요.

(사도42628) 26 주님을 거슬러, 그의 그리스도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이 들고 일어나고 군주들이 함께 작당하였다.' 27 과연 헤로데와 본티오 빌라도는 이 도성에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작당하여 주께서 기름부어 그리스도로 삼으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렀습니다. 28 이리하여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해 두신 일들을 모두 이루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빌라도는 누구의 뜻에 의해 예수님을 두들겨 패고 있는 거예요 지금. 하느님의 뜻에 의해. 그런데 아들이 그 뜻을 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해주는 거예요. 그게 순종입니다. 그게 하늘 왕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이 하늘 왕들이라니깐요? 그러니까 개미가 패면 맞으라는 거예요 밟지말구. ㅎㅎ ? 그게 수긍이 가시냐구요. 여러분 집에 개미가 들어와서 너 나가! 그러면 나가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당하신 일은 그거보다 더한 것 아닙니까 지금.

하느님의 뜻이 그거라니까 예수님이 그냥 당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늘 왕이에요. 그게 바로 하느님 나라의 은닉성인 거예요. 하느님 나라는 가시적 완결 이전에는 믿음으로만 보는 나라고 믿음으로만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돼요. ? 그들은 하느님 나라 들어오면 안 되거든요. 그게 이사야서예요. 야 그들 눈 가려라 절대 못 들어오게 해~ 그러잖아요 이사야를 보내면서. 하느님이 택한 백성 이외에 다른 이들이 어? 저기 괜찮네? 하고 들어오면 안돼요. 그토록 하느님은 여러분을 편애하신단 말입니다. '나는 너희를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어' 를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다른 이들의 눈에 감춰져 있어야 돼요. 그렇게 은닉된 하느님 나라 왕들이 당연히 이 땅에서 감춰져 있는 게 당연한 거죠. 나라는 감춰져 있는데 왕들만 나와 가지구~ 돌아다니구 있으면은 안되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으로부터 권세를 받고 이 땅에 온 세례요한과 같은 그러한 자들 그런 권세를 받은 자들 하느님의 왕노릇하라고 권세를 받은 그들만 예수를 알아보는 거예요. 진리를 알아보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요한이 '내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을 못하겠다'라고 이야기한 거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다'라고 예수를 알아 본 것입니다. 그 세례요한 속에 우리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분을 알아봐야 돼요.

그렇게 연약하게 결박되어있고 세상에게 연약하게 당하고 맞아 죽는 그 일을 하늘 왕이 그 이가 하늘 왕이라는 걸 우리는 알아볼 수 있어야 된단 말입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늘 왕들인 이 시대의 교회가 이 땅에서 연약하게 부인을 당하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종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그게. 그게 예수를 알아보는 거잖아요. 하늘 왕을 알아보는 거잖아요.

 

거지꼴로 온 하늘 왕을 알아본다라는 건 이 세상에 왕들로 살아가는 그 예수와 같은 하늘의 왕들로 살아가는 모든 교회가 그 상황을 반드시 답습하게 되어있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내 삶 속에 예수의 삶이 재연이 될 때 당황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아본 자들만 사는 거예요. 그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한다라는 말인 거예요

벨라도는 '진리가 뭐냐? 개뿔이나 그게 밥 먹여주냐?' 이러고 말잖아요? 세례요한은 '이가 그 이다!' 라고 했단 말입니다. 똑같은 모습이었는데~~빌라도처럼 예수님의 그 연약한 모습을 왕으로 시인하지 않을 때 예수님도 그를 하느님 앞에서 그를 부인한다라는 것입니다.

(마태 10:32-33)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

 

~ 나의 뜻과 부인이 되고 나의 소원이 무효화 될 때 우리가 정말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 분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수 있냔 말이에요. 그거 한번 돌아보잔 말입니다. 그게 하느님을 시인하는 거잖아요. 예수님을 시인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예수의 삶을 좇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수긍하는 거잖아요.

그 하느님 원망 안하세요? 원망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지금 견지해 나가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나를 하느님이 좀 더 성숙시켜 주셔서 그러한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게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이 원망스럽지 않게~ 그렇게 날 자라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하고 계셔야죠. 그게 신앙생활이잖아요.

우리는 하느님이 나를 부인시키고 나를 해체시키고 연약한 자로 몰고 가실 때에도 절대로 그 분을 부인하거나 그 분께 원망하거나 불평을 내놓아서는 안되는 자로 지어져 가야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길은 너~무 요원하잖아요. 너무 멀죠? 그래서 열심히 가 보는 거예요 .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면서 하늘나라의 그 삶의 원리와 하느님에 대해서 인격과 이성을 갖고 배우다 가는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진리에게 점령당한 자로서 그 진리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이렇게 구별된 그게 거룩이잖아요. 진리는 여러분에게 해석당하거나 여러분에게 포로로 잡힐 수가 없는 거예요.

구원의 확신도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묵시가 인간에게 해석을 당합니까? 묵시가 인간을 해석하고 들어오는 거예요. 여러분의 삶을 하느님의 뜻과 계획과 그 묵시가 해석을 하고 충돌을 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여러분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내는 거예요 물과 기름처럼. 그걸 거룩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유명해지고, 가치있는자가 되고 인기있는 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성도는 진리를 소유했다라는 그 사실만으로 이 세상과 하나로 연합되어 살 수가 없어요. 진리는 세상과 우리를 물과 기름처럼 떠낸단 말입니다. 아주 포를 떠서 갈라 내버려요.

 

(요한1714-49) 14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 16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17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진리는 여러분을 거룩하게 포 떠내는 거예요 세상으로부터. 진리이신 예수가 그 일을 하는 거예요.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 이 세상 왕의 모형으로 선 빌라도는 어때요.

제93장-(2). 본디오 빌라도

(요한 18:37) 37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진리에 우리가 속하는 거예요. 진리에 속한 자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말을 들어요. 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빌라도는 뭐라 그래요? '리가 뭐냐? 근데~ 그 진리를 아는 너는 내 앞에서 포로로 잡혀 있잖아. 내가 진리야' 라고 반문하는 거예요. '내가 진리야' ?

빌라도는 이 세상 왕의 모형이기 때문에 세상권세 잡은 자에게 있어서 진리는 세상의 힘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진리가 뭐예요?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개뿔이나 진리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으면 그 진리가 무어냐? 도대체' 조롱하는 거죠.

진리를 이야기하는 그 진리의 본체이신 이 분이 진리에 의해 포로로 결박당하고 결국 진리에 의해 죽습니다. 세상과 완전히 결별해 버리는 거예요. 세상에 대하여 죽는 거예요 진리는. 그래서 성도의 삶이 쉽지 않은 거예요

 

'내가 진리니까 나를 쫓아 살아봐' 라고 오히려 시범도 보여줘요. 여러분 예수 안 믿는 착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전기문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얼마나 그들의 삶을 동경했습니까. '나도 이들처럼 살거야' 이순신 강감찬 예? 안창호.

그런데 우리는 그걸 좇아 살겠다고. 어렸을때 얼마나 가슴을~ 부여잡고 결심을 했습니까. 성도는 그런 본을 좇아 사는 거 아니에요. 세상은 얼마든지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견본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진리에 의해서 쫓아 끌려가야 가야지~ 세상이 견본으로 보여주는 것을 쫓아가면 안돼요. 그것은 세상의 선악을 지들이 판단하여 이게 선이니까 쫓아와! 라고 제시한 견본이거든요. 마태복음 11장 보세요

(마태 11:16-19)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17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18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고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여기 나오죠?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그 지혜가 한 일은 다 옳다라는 그 말 앞에 어떤 말이 있어요? 예수님은 포도주를 즐겼다라는 그런 말씀이 나와 있죠? 세상의 종교인들의 그 선악 기준에 의하면 이건 나쁜 일이잖아요. 패역한 일입니다 이거는. 그런데 예수님이 한 일은 뭐든지 다 옳다라는 거예요. 니들의 선악기준으로 그거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포도주를 즐기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라고 누가 이야기를 하겠어요? 유대주의 율법주의가 이야기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옳다라는 건 유대주의와 율법주의를 지금 부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비유를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와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들이 전혀 안 따라오더라 나팔을 불었는데 따라 춤을 추지도 않고 애곡하는데 같이 우는 자들이 없더라.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요 아닙니다. 반대 이야기예요.

여러분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이 땅에 놀러 온 사람들 아니에요. 진짜 종교놀이를 하고 있었던 건 바리사이인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종교놀이하고 있어요. 노는 거예요.

1819절보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오죠. 잔치에 초청했는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들꿀만 먹고 안오는 거예요. 예수님은? 경건하고 엄숙한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자기들 앞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포도주를 먹고 막 놀고 있어요. 애곡을 하는데 따라 울지를 않아!

  문창극 언론인민재판에 서다! (빌라도 법정 패러디)

바리사인들의 종교놀이에 하늘 왕이 왕노릇을 하러 온 이 세상의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전혀 따라가지를 않는 거예요. '~ 종교 행위 열심히 해서 이 세상의 힘도 얻어내고 야 우리처럼 이렇게 떵떵 거리면서 권세도 부리면서 살아봐~ ' 잔치에 초청하는 거예요. 세상잔치에. 그런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오지를 않아요. 복음을 전할라면 도시로 좀 들어오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거기서만 외치고 있어요. 효율성 있게 일을 못해요 사람이. 하느님이 시켰기 때문에요. 잔치로 안 들어와요.

예수님이 그들의 경건하고 엄숙한 종교행위를 기각을 해버려요. '웃기지마'. 이렇게 이 세상 사람들이 혼인잔치 놀이를 해도 장례식 놀이를 해도 하늘 왕노릇에 참여한 이들은 절대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거예요. 이 세상의 힘과 가치 이 세상의 밥! 밥이잖아요 그게 밥! 돈이죠

 

그러나 그건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우리에게 잠시 허락된 소품이지 그게 목적이 아니란 걸 우리는 안단 말입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그런 선한 일 착한 일로 '야 이게 진짜 선한 거야. 야 이게 진짜 착한거야. 이렇게 살다보면은 하느님도 감동하여 다 천국 보내주는 거야~' 그 애곡의 초청에 따라서 울지 않을 수 있다니깐요 우리가!

세상은 우리를 잔치로 초청하고 엄숙하고 경건한 선한 삶 종교행위 이런 데로 초청을 해요~ 같이 울자고.

여러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게 안될 때 우시란 말입니다. 실패했을 때 울지말고.. 하느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신다라는데 왜 그것으로 기쁘지가 않을까? 그때 우시란 말입니다. 종교행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종교행위 해 가지고 그것으로 하느님 기쁘게 해드리고 여러분의 모습을 업그레이드 하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느님이 받으실 신앙생활, 하느님이 받으실 의로운 삶, 이건 단 하나밖에 없어요. 예수의 삶, 예수의 제사. 그거 이외엔 다 꽝이에요.

(마태2311-12)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지금 제자들과 예수님이 같이 계시는데 그 중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 전부를 섬기는 자다 그중에 자기 이외의 다른 이들을 전부 섬길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었어요?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럼 너희 중에 큰 자 너희를 섬기는 자 그 자는 누구에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어요. 큰 자는 예수님밖에 없어요. 우리 하느님은 그 큰 자 예수님만 받으세요. 우리는 그 안에 연합되어 구원받은 거예요. 하느님을 우리가 어떻게 섬겨요. 못 섬깁니다.

그런데 예수가 섬기고 우리를 그 안에 끌어 들이셨단 말입니다. 그걸 아는 만큼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에 깊이 젖어들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은혜가 내 안을 침공해 들어올 때 내가 점점 비워지게 되는 거예요. 그게 자기부인입니다. 그 밑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그래요. 여기서 '높이다 높아지다-()페오' 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이라고 하신 데 있죠? 한번 볼까요? 요한복음 12

32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들리다' '()페오' 예요. 여기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이라는 단어 안에 두 가지의 의미가 함유되었다고 그랬죠? 첫번째는 십자가에 매달려서 들리면 '()페오' 예요.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의 나라로 승천하여 들어올려지면 '()페오' 예요 똑같이. 그 말 그 단어 하나에 복음 전체가 다 들어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다른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뜻을 좇아 목숨까지 내어놓아 들려지면 그게 하느님 나라의 '승천'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스스로 내가 높아지면 하느님이 날 낮추신다 그래요.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느님이 나를 낮추면 나를 높이신다 그런단 말이죠. 여러분 이거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거기는 물론 내가 이 세상에서 교만을 떨면 하느님이 나를 낮출거고 겸손하게 살면 나를 높이실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석할 수도 있어요. 나쁘지 않은 해석입니다.

'내가 나를 높이면' 이라는 단어 안에 '십자가를 지면' 이라는 뜻도 있단 말입니다. '()페오' 내가 스스로 십자가를 질려고 하면 하느님이 너 끌어 내린다 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세상에 많은 착한 이들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간디나 슈바이쳐가 그렇게 산 사람들이에요. 하느님의 은혜와 상관없이 하느님이 지우지 않았는데 지맘대로 십자가 져버렸어요. 십자가에 들려 올려져 버렸어요. 그래놓구는 '나 잘 살았죠? 나 참 착하죠?' 요놈들을 낮추신단 뜻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이 끌어 내리신 자는 '낮추다' '끌어 내리다'란 뜻이거든요? 끌어 내리신 자는 하느님이 높이시는데 묵시 속에서는 높아지지만 역사 속에서는 십자가에 달린다란 뜻입니다. 하느님이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는 자는 역사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린단 뜻이에요.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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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 잘 믿으면은 부자도 돼야 되고 병도 나아야 되고 뭐도 돼야 되고 뭐도 돼야 되고 뭐도 돼야 되고 이게 도대체 뭐냔 말이에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이게.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어요? 없어요! 오늘날은 그리스도교를 너무나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엔 다 큰 자예요. 전부 예수안에서 큰 자로 구원받는 거니까. 그렇게 해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큰 자가 되었다는 걸 알고 그렇게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절대 종교행위들을 하면서 자기자랑으로 그게 자기 안에 쌓이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가 한 종교행위가 다른 이들을 폄하하는 데에 도구로 쓰일 수가 없어요. '에이구 세리 저 놈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그걸로 구제도 하는데.. 나는 매주 십일조도 꼬박 꼬박 하는데.. 저 놈은 뭐야?' 이게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리사인의 기도 였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확인하시란 말예요.

(요한1828) 28 사람들이 예수를 가야파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그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그들은 부정을 타서 과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까봐 총독 관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예수님을 죽일라고 빌라도의 관정에 끌고 갔는데 그 때가 새벽이었어요 6시 정도 됐을 거예요 아마. 빌라도가 어떻게 새벽부터 그냥 그들의 방문을 받아들였을까? 원래 총독들은 새벽부터 12시까지 일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무례하게 찾아간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잖아요? 십자가에 달리기 세 시간 전입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이 유월절이에요.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전체가 잔치를 치룹니다. 유월절은 먹어야 돼요. 그런데 율법상 부정해진 자는 유월절을 먹을 수가 없어요. 명절을 함께 지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들은 이방인과 접촉을 하게 되면 부정해져요. 그러니까 빌라도의 관정에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지들은 안들어가요. 깨끗함을 유지하면서 하느님을 죽이라고 밀어 넜어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율법지킴 도덕적 율법적 삶이 바로 하느님을 죽이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그 분의 은혜를 '필요없다' 라고 막아버리는 거~ 그게 하느님 죽이는 겁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목숨 걸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이들이 그 율법을 지킨다고 지들은 밖에 서서 깨끗함을 유지하면서 하느님을 등 떠밀어 죽이라고 밀어 넣었어요.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조심해야 할 게 이거예요. 정작 하느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한 번 조직으로 힘으로 세력으로 재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거 그거 하느님 죽이는 겁니다.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여 내는 도덕과 윤리. 그것이 하느님 죽이는 거란 말이에요. 잘 이해하셔야 되는데...

(로마13:8-10) 8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라는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0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율법이 어디로 귀결되야 된다 그래요? 하느님 사랑으로요. 여기서 이웃은 하느님이잖아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배웠잖아요. '내가 다 사랑할게요! 내 이웃이 누굽니까?' 그랬더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 주시면서 '예수님이 니 이웃이야~ 너는 그 이웃에게 사랑받는 존재지 니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 아니야~'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 예수님에게 사랑받으라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율법의 종착역 율법을 짜고 짜고 꽉~ 짜가지고 한 문장으로 딱 줄이면? 나 이외의 다른 존재 사랑이에요. 하느님과 이웃사랑.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그게 안돼요. ?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죽은 흙들은 자기만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하느님이 그걸 배격하고 그걸 공격하여 들어오시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힘으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버리시는 거예요...그 사랑을 우리가 알 때...그 은혜를 우리가 알 때... 우리가 비로소 하느님을 조금씩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이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 속에서 처-절하게 폭로당하셔야 돼요...처절하게 폭로당하셔야 돼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내가 하느님의 은혜가 없으면 도저히 존재할 수가 없는 자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상대방의 그런 공격들이 당연한 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자꾸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세상의 가치로부터 발을 들게 되면 내가 그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요구 그런 것들도 굉장히 우스워지는 거예요 나중에는.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더 배우셔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은혜를 더욱더 깊이 체험하셔야 돼요.

(갈라 6:11-15) 11 보십시오. 내가 직접 여러분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써 보냅니다. 12 인간적인 겉치레만을 일삼는 자들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박해를 면하려고 그러는 것뿐입니다. 13 실상 하례를 받은 사람들도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다만 여러분에게 외형적인 할례를 시켰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14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15 할례를 받고 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례나 무할례 율법 지킴이나 율법 안지킴이나 드럽게 사는 놈이나 착하게 사는 놈이나 그런 것으로 하느님께 이쁨받고 미움받는 거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새롭게 지어져 가는 길 그 길에서 하느님이 너희들에게 거짓말을 시킬 수도 있고 너희들에게 살인을 명령할 수도 있고 시아버지와 간음하라고 시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은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러한 하느님에게 순종 못하는 자가 악이란 말예요. 그게 죄란 말예요.

선악을 내가 판단하겠다고 선악과 먹어버린 아담이란 말입니다 그게~ 거기로부터 여러분 먼저 거기서부터 자유로와져야 돼요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가 이 땅에서 반드시 꼭 유일하게 하고 가야할 일이 뭐예요? 하느님과의 화목이잖아요 아니다 딴 거 뭐 있다 하면 손들어 보세요 딴 거. 다른 거 뭐 있어요? 하느님과의 화목 이루어 하느님이 누리는 모든 것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천국에 들어가는 게 우리의 목적이잖아요.

 

그럴라면 그 분에 대해서 알아야 되고 그 분과 친해져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 분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셨는지를 아셔야 되는데! 그 은혜를 먼저 알아야 된다니깐요. 그런데 이 인간들이 자기가 쪽 팔리니까 자기의 죄된 모습을 폭로 당하지 않을랴고 율법 뒤에 숨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바리사인이었단 말입니다. '! 인간이 어떤 존잰데 쪽팔리게 하느님 앞에서 나도 내 힘으로 뭔가 해 줘야지~' 제사 지내고 율법 지키고 착한 일 하는 거예요. 착한 일 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그거는 성령의 소원으로 여러분 안에서 당연히 욕구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구원받은 자들의 삶속에서는. 그러나 그것도 늘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느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그리로 끌고 가십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그 행위 자체가 여러분의 목적이 아니라니깐요?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는 거'예요.

 

그리스도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계시이고 성도의 올바른 하느님 인식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계시하시고 우리는 그 하느님을 올바로 깨달아 '! 우리는 하느님의 그 생명력을 풍성히 받아야만 행복할 수 있고 그 때 비로소 참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거구나 그게 하늘 왕의 삶이구나' 깨달아 하느님 나라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종교행위들만 난무하는 거죠. 그게 이파리만 풍성한 무화과나문 거예요. 저주받습니다 그거. 여러분 다른 거 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을 배우세요. 하느님을 아세요. 그 분의 은혜를 듣고 또 듣고 또! 들으세요. 그 은혜 속에 푹~ 잠겨야 돼요. 가끔 와서 한 모금씩 먹고 가면 안돼요. 그 은혜의 강에 잠겨버려야 된다니깐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가보호장치 내 또 다른 얼굴을 '' 로 믿고 있어요. 벗겨버려야 돼요. 말씀이 그거 벗기는 겁니다. 얼굴에 붙어있는 그 가면이 강력 접착제로 붙어있는 그 가면이 강력한 힘에 의해 이렇게 뜯어진다고 생각하세요. 말씀이 하는 일이 그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 감춘 줄 알았는데 들켰구나' 그 속에서 덮고 있는 하느님의 은혜를 제발 좀 알아먹으세요. 그래야 그 하느님이 사랑스러워질 것 아닙니까.

예수의 은혜를 절감하지 못하고 나오는 여러분의 율법지킴은 하느님을 죽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라는 거 잘 아시고 어줍쟌은 종교행위로 여러분의 인기나 명성을 쌓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세상의 그런 잔치 초대에 가 가지고 그 나팔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마세요. 우리 성도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만을 추구하면서 한 번 살아보잔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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