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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7.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0 조회수1,76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 호세 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4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5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6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11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13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복음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내 수업이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내 수업이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재미없는 사람이다.”
솔직히 당시에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재미없으니까

재미없다고 하는 것이지,

재미있는데 누가 재미없다고

말하겠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보는 방식에 따라 같은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따분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시더군요.

즉, 따분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정말로 따분한

과목인데도 아주 재미있게

공부를 합니다.

노래가사에 암기할

단어들을 대입해서

노래를 부르며 공부합니다.

어떤 친구는 10분간

엎드려서 잠자기,

매점에서 맛있는 것 사먹기 등

자신에게 작은 상을 내리면서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삶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보니

분명히 재미없는 과목도

 아주 재미있게 공부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긴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 처음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농담도

많이 하게 되고 일부러 방방

뛰어다니면서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듣던

한 형제님께서는 이러한

강의방식이 자신의 마음에도

들지 않았나 봅니다.

 인상을 쓰면서 팔짱을 끼고

저에게 강력한 눈빛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못 참겠는지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조금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말씀해주십시오.”
사과의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볼 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제 강의

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제 스타일대로 강의를 했고,

실제로 강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고

사람들의 만족도도 아주 높았습니다.

그러나 제게 건의를 했던

형제님께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시더군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강의 방식이면

무조건 틀린 것일까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무조건 싫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처 주셨습니다.

나쁜 일이었습니까?

비난 받아야 할 모습일까요?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라고 비난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하고 함께 하였습니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우리는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상대방이 아닌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될 때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칭찬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막심 고리키)

인천신학교 성당.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똑같은 가사일 인데..."

어떤 시어머니께서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며느리는 아들이 벌어다 주는 돈을

펑펑 쓰며 집에서

놀기만 한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아내가 집안일을 해주기 때문에

남편이 직장에서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집안일이 마치 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을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는데,

 남의 집에 가서 가사도우미

하는 것을 가지고 절대로

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데 말이지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

반대하는 마음이 아니라

수용하는 마음을 통해서

 이 세상은 서로를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곳이 됩니다.

 

 

작은 꽃도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냐가 중요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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