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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독서 (호세아11,1-4.8ㅁ-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2 조회수1,687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독서  (호세아11,1-4.8ㅁ-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9)

  

앞서 8절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에서는 결코 선민을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제시되었다. 이제 9절에서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진노를 거두실 것 약속하시는 내용이 제시된다. 이것은 8절에 제시된 이스라엘을 아드마와 츠보임으로 대표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과 관련시킬 때, 그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타오르는 내 분노' 에 해당하는 '하론 압피'(haron aphi)는 분명 파멸을 초래하는 진노, 예컨대 앞서 제시된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진 심판을 초래한 진노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은 이를 나타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는 주님께서 앗시리아를 통해 행하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단행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님은 그 심판을 단행하시되, 이스라엘을 전멸하시지 않으실 것이며, 그 후에 다시 그들을 회복케 하실 것이다.

 

본문에서 '나는 ~나타내지 '에 해당하는 단어 '에에세'(eeseh)는 문자적으로 '내가 수행할 것이다' 라는 의미인데, 본문에서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어 '로'(lo)와 함께 사용되어, 이러한 일이 절대로 없을 것임을 강조하며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두말할 나위없이 앞선 8절에 선명하게, 강렬하게 제시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실로 하느님은 공의로우신 분으로 악을 행한 자에게 심판을 내리시지만, 그분은 크신 자비와 연민으로 인하여 심판을 넘어서 용서와 회복의 은총을 그 백성들로 하여금 받아 누리도록 한다.

  

한편, '나는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에 해당하는 '로 아슈브 레샤헤트 에프라임'(lo ashub leshaheth ephraim)은 문자적으로 '에프라임을 멸하기 위해 내가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멸하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레샤헤트'(leshaheth)의 원형 '샤하트'(shahath)주님께서 죄인들과 죄악된 세상을 완전히 진멸해 버리시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창세6,13 ; 19,13).

  

하느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아담 이후 범죄로 치닫는 인류를 물로 쓸어 심판하시고, 죄악이 난무하여 무법이 횡행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완전히 멸망시키셨지만,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은 그러한 진멸의 심판을 내리지는 않으실 것이다. 물론 그들을 앗시리아를 통해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그들이 그 고통을 통해 깨닫고 돌이킬 수 있을 만큼만 심판하시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되는 본문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전멸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주님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칭 대명사 '아노키'(anoki)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화자(話者)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본문은 주님 자신이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지칭하는 '엘'(El)하느님의 초월성과 전능성 강조하는 호칭이다. 그는 사람처럼 감정에 압도되어 분별없이 본노를 발하지 않으시며, 그의 신적 의지와 지혜는 타오르는 분노의 감정 또한 억제하실 수 있다.

  

아울러 그분은 오직 공의로 심판을 내리시되, 진노 중에도 당신의 백성들에 대하여 자비와 연민의 정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전능하심, 그분의 초월자 되심은 바로 이같은 측면을 견지할 때 보다 선명하게 이해된다.

  

이어 본절 말미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밝힌다. '거룩한 이' 해당하는 '카도쉬'(qadosh)는 어원상 다른 속된 것들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거룩함을 유지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주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며, 죄인들을 심판하신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주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들린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표현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느님의 거룩함은 죄인에 대한 심판을 통해 나타나지만, 그것은 죄인을 완전히 진멸해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하여 공의에 입각한 심판을 행하시되,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케 하도록 징계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이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선민에 대해서는 멸절하는 것이 아닌, 의로운 징계를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빚으시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거룩함이란,다른 존재와 구별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결코 용서하거나 용납할 수 없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차원이 다르셔서 무한히 사랑으로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을 의미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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