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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이사6,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4 조회수1,331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이사6,1~8)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1~2)


앞선 이사야서 1장 2절~5장 30절은 주님을 배반한 남부 유다를 향하여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란 사실과 더불어 주님의 날에 있을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이사야서 6장은 이사야가 주님의 오심과 성전 숯불의 환시를 통하여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구약의 거의 모든 예언서에는 그 예언서를 쓴 예언자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술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예언서의 초두에 이런 사실이 소개되는데 (예레1,1~19; 에제1,1~3.15), 이에 반해 이사야 예언서에는 남부 유다에 대한 심판 선언이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이며 조금도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사안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미뤄졌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것은 이사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입은 하느님의 종이며, 그의 메시지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독자들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의도로도 볼 수 있다.

 

먼저 이사야서 6장 1~3절은 이사야에게 예언자로서 소명을 주신 주님의 장엄한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이사야가 성전 위에 높이 들리고 사람들이 에워싼 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본 시점을 밝히는 본문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 일은 남부 유다의 제10대 임금이었던 우찌야가 죽던 해 발생하였다. 그 해는 B.C.739년으로 추정된다.

 

우찌야 즉 '우찌야후'(uzziyahu) '능력'(1역대16,11),'힘'(탈출15,2)이란 의미의 명사 '오즈'(oz)'야훼'의 축약형 '야흐'(yah)가 결합된 형태로 '주님의 능력'이란 신앙적인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그는 '아자르야'(2열왕15,1)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돕다'(여호1,14)란 뜻의 동사 '아자르'(azar)'야훼'의 축약형 '야흐'(yah)가 결합된 형태로서 '주님께서 도우셨다'라는 의미이다.

 

그는 부친 아마츠야에 이어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남부 유다의 왕위에 올라 죽는 날까지 무려 52년 동안 남부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통치 후기에 문둥병이 들어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삶을 살다가 병으로 죽게 된다.

 

그의 통치 전반과 중반주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고 예언자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필리스티아와 암몬 등을 정복하고, 필리스티아 땅에 성(城)을 건축하고 암몬 왕으로부터 조공을 받고, 나아가 이집트의 변방에까지 그 명성을 떨치는 등 그 왕국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지면서 교만에 빠지게 되어 사제 외에는 들어가지 못할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려 하였다.

 

그것이 죄라고 말리는 아자르야 사제의 손을 뿌리치면서까지 분향하기를 고집하는 순간, 주님께서 그를 치셔서 그 이마에 문둥병(나병)이 생기게 하셨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는 왕궁이 아닌 별궁으로 내려 앉고, 나아가 성전 출입을 제한당하였다.

 

그런 비참한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가 그의 나이 67세에 세상을 뜨게 된 것이다(2열왕15,1~7; 2역대26,1~23).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받은 소명은 그가 예언자 직분을 시작하면서 받은 소명이 아니라 예언자 직분을 수행하던 중간에 주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소명임이 분명하다.

 

즉 본장에 나오는 소명과 별개로 이사야는 과거에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로 소명을 받은 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굳이 이를 따로 소개하지 않는 것은 본장의 내용만으로도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예언자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1인칭 단수를 사용하여 자신이 직접 주님의 환시를 보았다는 증거를 많이 한다. 

아합과 여호사팟 임금 당시의 예언자 미카야가 그랬고(1열왕22,17.19-23), 즈카르야 예언자(즈카1,8), 에제키엘 예언자, 예레미야 예언자 등이 그러했다.

 

이와 같은 1인칭 단수의 사용 그들 각자가 보았다고 하는 환시의 신빙성의 무게 더해준다. 제3자의 경험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경험을 직접 기술한 것이기 떄문이다.

 

한편, 본문에서 '나는 보았는데' 해당하는 '와에르에'(waereh)계속적 용법으로 사용된 '와우'(wau)에 동사 '라아'(rah)미완료형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것은 우찌야 임금이 죽은 직후에 이사야가 환시를 보았다는 사실 그 때에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사야서 1장 1절에는 이사야가 환시를 보았다는 것이 '하자'(haza)동사를 통해 표현된 반면에, 후자 실제적으로 실체를 매우 확실하고 분명하게 바라봄으로써 실제적으로 이를 체험하여 아는 것과 관련된 표현인 것이다.

 

즉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가 본장에서 경험한 주 하느님의 천상의 모습과 그에 바탕을 둔 그 자신의 죄의 용서에 관한 환시 그에게 있어 현실적인 일처럼 분명히 나타났음을 강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이사야 예언자가 본 환시는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 하느님이었다. 이같은 장면은 아합 임금 당시 예언자로 활약한 미카야의 증언에도 나오며 (1열왕22,17.19~23), 욥기에서도 유사한 묘사가 나온다(욥기1,6~12).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물리적인 육체가 없으신 순수한 영이시기에 사람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때때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계시를 주시며,  이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 시각적 형상으로 나타나시기도 한다.

 

한편, 본문에서 주어로 제시되는 '주님'에 해당하는 '아도나이'(adonai)주 하느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인간 세상 뿐 아니라 온 우주를 권능으로 주관하시는 주님의 면모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 호칭이 바로 '아도나이'인 것이다.

 

그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으신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그 어떠한 세력도 감히 필적할 수 없는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가 이 세상을 통치하심을 나타낸다.

 

특히 '앉아 계시는' 해당하는 '요셰브'(yosheb)오래 동안 머물러 있거나 거주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야샤브'(yashab)능동태 분사형으로서 주님의 왕적 통치가 항구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주님의 통치는 인생사의 영고성쇠와 관계없이 계속되어 왔고 계속 될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영원한 임금되심과 항구적인 통치의 면모과거에 위대한 임금으로 통치하다가 범죄로 징계를 당해 비참한 신세에 떨어지고, 결국 죽어 무덤에 돌아간 인간 임금 우찌야의 면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분의 옷자락' 해당하는 '슐라이우'(shulayu)의 원형 '슐'(shul)길게 늘어뜨린 옷자락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은 좌우 손목 부분의 옷자락을 비롯하여 발을 덮어 가리는 옷자락까지 모든 부문의 옷자락이 길게 늘어뜨러져 성전을 가득 덮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만왕의 왕이신 주 하느님의 위엄과 권능이 온 세상을 덮고 있음 의미한다. 이러한 주님의 권능 앞에 모든 피조물은 굴복하고 꿇어 엎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성전' 해당하는 '하헤칼'(hahekal)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지금 이사야가 보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시이며 천상의 상황이기 떄문에 이 문맥에서는 천상에 있는 주님의 궁전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것을 성전과 관련지어 이사야가 성전에 있었으며, 성전에 가득한 주님의 옷자락은 분향 제단으로부터 올라간 연기가 성소 안을 가득 채운 것을 나타낸 것으로 해설한다.

 

그러나 그가 현재 성전에 있든 그렇지 않든, 그가 환시 중에 목도한 것은  성전 그 자체를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영광중에 거하시는 천상의 거소로 보는 것이 문맥상 보다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2)

 

이사야서 6장 2절과 3절은 하늘의 사자들이 주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사랍들'에 해당하는 '세라핌'(seraphim)'불타다'(예레51,3)란 뜻의 동사 '사라프'(saraph)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 '불탐'이란 의미를 지닌 '사라프'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세라핌' 문자적으로 '불타는 것들'이란 뜻을 지닌다.

 

천사들에 대하여 이러한 명칭이 주어진 것은 부정한 것을 불로 태워 없애는 것처럼 그들이 거룩하고 순결한 존재이며, 또한 불꽃처럼 화려하고 접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사랑을 상징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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