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7월 14일(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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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7-14 | 조회수1,44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7월 14일 [(녹)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 라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아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제1독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1-8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영광이 가득하다.”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화답송◎ 시편 93(92), 1ㄱㄴ.1ㄷ-2.5(◎ 1ㄱ) 위엄을 입으셨네.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복음환호송◎ 1베드 4,14 참조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복음입니다. 10,24-33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닢에 팔리지 않느냐?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묵상◎ 인간이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서면 두 가지 원초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황홀감’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현을 목격한 이사야가 그 황홀경에 빠지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모습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벗어나 있다는 죄의식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거룩함을 마주하기에 부끄러운 인간의 속됨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자신이 숨기고 있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사람들을 기만하고, 자신을 숨기며, 오히려 남들의 죄악의 실상을 파헤치고 폭로하여 그들보다 낫다는 위선의 그림자에 숨어 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기려는 죄악의 현실을 뜻하지 않은 순간에 드러나게 하시고, 우리의 어리석은 자만심과 교만을 꺾으십니다.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십니다. 부끄러운 죄를 숨기기보다,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신” 하느님의 완전함과 거룩함 앞에 무릎을 꿇고 죄의 용서를 청하며, 하느님의 도구로 자신을 써 달라는 보속의 삶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행여 누가 볼까 신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는 모습 속에 우리의 속됨이 드러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현현 앞에 죄인임을 느끼면서도, 그분의 부르심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서는 연습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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