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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7.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5 조회수1,709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7월 15일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 아모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12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제2독서 에페 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복음 마르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직장 생활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늘 바쁘게 지냈던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바쁜 것도 문제지만 왜 이렇게 지출되는

돈이 많은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에만 빠져 지내는

자신의 이 모습이 너무 비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방송을 보면 다들 즐길 거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자신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지요.
정말로 큰 맘 먹고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을 떠났습니다.

또 아주 저렴한 여행 상품을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을 차지했지요.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너무나도 기뻐했지요.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제님은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행복을 자신의 SNS 계정에

여행 다녀온 것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부정적인

글을 이렇게 적은 것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여행은 왜 가냐?’,

‘여행 다니면서 살기 힘들단 소리 하지 마.’,

 ‘여행은 무슨... 나는 주말에도 일한다.’

등등의 글에 상처를 크게 입었지요.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의 모습은 분명히

행복하고 즐겁고 부유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노력한 모습은 왜 보지 못할까요?

바로 자신의 입장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게 만들고

이로 인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아픔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이 내 뜻대로만 행동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늘 함께 전교여행을 하시던

주님께서는 제자들만을 둘씩

짝지어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직접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시지요.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8)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부족한 상태가 되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명령을

 충실히 따른 제자들은 성공적인

전교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귀들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마르 6,13 참조).
제1독서에 나오는 북이스라엘에

 파견된 아모스 예언자도 사실은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받아서

이스라엘에게 예언합니다.

(아모 7,14.15 참조).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에 따라서

그 명령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그것도 사람들 위에 서서

모든 풍요함을 누리면서 섬김을

 받는 모습이 아닌,

부족함 안에서 섬기는 모습으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은 섬김을

받는 모습이 아닌,

섬기는 모습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에페 1,4).

이 주님의 선택을 존중한다면

 우리가 이웃을 향해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제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봅니다.

대신 겸손한 마음으로

또한 섬기는 모습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은

삶을 있는 그대로의

무질서함으로

 껴안는 일이다.

우리의 소망대로

 따라 주지 않는 상황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오미 레비)

주님밖에 없습니다.

"미키마우스"

떠돌이 목수 아들로 태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농촌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 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했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 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에게 만화는 보석이었으며,

꿈과 자존심 이었는데 소원대로 

 소년은 자라서 신문사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항상 평가절하

하며 퇴자를 놓았습니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 두는 게 어떨까?”
매일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결국 퇴직을 당했습니다.

그는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 다시 고향 농촌으로

내려갔고 교회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일을 했습니다.

 지하창고의 어둠이 바로

자신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의 인생의 지하창고가

보물 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처를 받은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보다

예쁘고 친밀감 있게 그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림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입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오늘날 디즈니랜드의 주인입니다.

 디즈니에게는 참혹한 지하 창고가

사실은 보물 창고였으며 가장 암울한 때

창조와 기회의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에게 지하 창고의 생활이 없었다면

미키마우스도, 디즈니랜드도

탄생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처지나 제일 미운친구,

싫은 동료가 혹여 내일의

별이나 보물창고가 아닐까요?

미키마우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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