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독서(이사1,10-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6 조회수1,599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독서(이사1,10-17)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1)

 

고대 근동 지방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아무리 격렬하게 분노할지라도 제사만 드리면 얼마든지 달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든 상관없이 지극한 정성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제사, 곧 값 비싸고 가치있는 제물이 드려지는 제사를 통해 신의 분노를 달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범죄를 저지르고서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당신의 분노를 잠재우고, 그 눈을 가리고자 바치는 그러한 제사를 받지도 원치도 않으신다. 그분은 철저히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성품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제사만을 합당한 것으로 받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당신이 스스로 대답하신다. 이 대답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무수한 제물이 하느님께 전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 물렸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굳기름'에 해당하는 '헬레브'(heleb)는 제사를 드릴 때 동물의 뱃속 내장 부분에서 떼어내 불태워 드리는 지방 성분을 가리킨다(레위3,9). 제사드릴 때 다른 부분을 먹는 것을 허락되었지만, 피와 굳기름 만큼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성별되었으며,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레위3,17).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먹지 않고 모두 태워버리는 그 기름마저도 원치 않으셨다. 이는 다름아닌,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마음과 삶, 제사가 도리어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과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었기 떄문이다.

 

한편, '살진 짐승'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짐승을 잡아 드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 시대 말기에 병든 것과 저는 것 등 값이 떨어지고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을 제물로 드렸던 것(말라1,8)에 비하여, 매우 많은 정성을 드린 제사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완악한 마음과 삶이 그들의 값비싼 제물의 가치를 무용지물로, 아니 하느님 대전에 역겨운 것으로 비쳐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또한 '나는 ~ 물렸다' 해당하는 '사밧티'(sabathi)의 원형 '사바으'(sabah)배부르게 먹어 완전히 만족한 상태를 말한다. 본문에서는 물릴 정도로 싫증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무언가를 물릴 정도로 먹으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거북하고 그 자체가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이 된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제사드리는 자들의 완악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드리는 굳기름을 받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도리어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여기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는 말씀으로 형식적 제사가 당신께 아무 유익이 없음 밝히신데 이어, 이제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고 보다 직접적인 말씀으로 형식적 제사의 무용성 밝힌다.

 

여기에서 '싫다'가 원문에서는 '기뻐하지 아니한다' 로 되어 있는데,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하파쳇티'(haphatsethi)의 원형 '하페츠'(haphets)본래 관심있는 어떤 대상을 향해 몸을 기울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여기서는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와 함께 쓰여, 주님은 이스라엘이 드리는 피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으며, 기뻐하지도 않으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본래 제사를 명하는 율법의 기록에 의하면,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 그리고 그중 피는 가장 거룩한 것으로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으로 묘사된다(민수18,17). 율법이 명하는 것과 똑같은  짐승, 살지고 좋은 제물을 잡아 바치는 피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주님의 반응이 다른 것은, 하느님께 제물을 잡아 바치는 그들 자신들의 손에 무죄한 희생자들, 약자들의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이다(이사1,15-17).

 

히브리 사회 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피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이것은 피가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을 물러내는 속전의 개념으로 드리는 피는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물의 일부였다.

더욱이 이방 여러 종교들은 그들의 신들이 피에 굶주려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피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를 드린 것은 이방 사람들과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레위17,11), 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만은 동일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소중한 제물이었던 피를 하느님께 드렸지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이는 그들이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바른 인식도, 그분께 대한 바른 삶도 갖추지 못한 채, 제물인 피에만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올바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피만 드리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들의 이같은 행태는 그들 스스로 그들의 제사 자체를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만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성품과 뜻을 올바로 인식하지도 않고,그에 부합한 삶과도 거리가 먼 그들의 제사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무가치하고 헛된 이방신을 향한 제사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