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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그 쌍 칼을 들고서 /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6 조회수1,438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길 가다가 네거리를 만났을 때 오른쪽 왼쪽 길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 넓은 시각에서 하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을 요구받는다. 살면서 둘 다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유혹을 받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선에서 양립도 하기도. 둘 다 선택하면 목숨마저는 버리지 않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나 두 가치가 충돌할 때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 우리가 그러한 타협을 할 수는 없단다. “내가 세상에 평화 주러 왔다고 생각지 마라. 평화가 아닌 칼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 왔다. 집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34-36 참조)

 

예수님은 우리를 당혹케 한다. 사랑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근거요 기둥인데, 그분 요구는 너무너무 단호하다. 우리 사랑이 정당하려면 하느님만을 선택하여 우리를 온전히 봉헌해야 한단다.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상 그 무엇과도 일체 타협은 없단다. 어느 순간 어정쩡 타협하려고 하늘 나라 요구들을 애써 외면하여 내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판단이서서, 희생이 요구되는 그 순간 잠시 귀막고는 후에 그분 가르침을 열심히 따른다하자. 그래도 그게 하늘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결코 아니라나.

 

사랑은 가장 위대하고 소중하지만, 때로 그 사랑의 기준이 잘못 되었을 때 우리 삶을 흔드는 장애가 될게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부부 사이를 이어 주는 위대한 사랑의 끈은 우리 삶의 가치를 지켜 주고,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잘 지키려고 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그 사랑을 정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이는 나에게 합당하지 않는다.” 이는 너무나 가혹해 보이는 것 같지만, 너무너무 명확한 우리 신앙의 지침이다.

 

사실 하느님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와는 모든 면에서 분명히 다르다. 힘으로 입을 막고 강제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은 거짓 평화다. 이는 평화를 가장한 불의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단다. 이 평화는 거짓 평화이기에. 이러한 평화는 오히려 세상을 분열시킨다. 예수님은 이 거짓 평화를 칼로 베어 버리고 하느님의 평화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의 평화는 힘으로 남을 지배하는 그런 평화가 아닌, 자신만을 그저 내어 주며 뜨겁게 사랑만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평화이리라.

 

, 칼을 받아라!’라는 예수님 말씀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라는 것일 게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참 평화를 찾을 때까지 거짓 평화와 싸워야 할 게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 주신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내 것만 사랑할 게 아닌 모두를 안고는 이 세상을 두루두루 사랑해야 하리라. 쌍 칼을 들고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평화,원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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