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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10,5~7.13~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8 조회수1,834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10,5~7.13~16)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  약탈질을 하고 강탈질을 하며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처럼 짓밟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뜻을 마음에 품지도 않았다." (5~6.7ㄱ)

 

앞선 이사야서 9장 8절에서 10장 4절은 주님을 거부한 북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엄정한 심판으로 장차 멸망하게 될 것을 네번이나 예언한 내용이다.

 

이제 이사야서 10장 5절이하 19절은 북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하느님의 도구쓰임받은 아시리아가 스스로의 신분을 망각함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심판 받게 된다는 사실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하느님을 배제하고 인간 역사를 고찰하면, 북부 이스라엘을 패망시키고 아람을 패망시키며, 남부 유다를 함락 직전의 위기까지 몰고간 아시리아가 근동에서 오랜 세월동안  절대 주권을 휘두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막강한 힘을 지닌 아시리아를 향한 하느님의 예언은 역사는 주권자 하느님의 손 안에서 움직이며, 아시리아는 단지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신 심판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아시리아는 자신의 위치와 분수, 즉 하느님의 심판 도구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을 자랑함으로써, 주님께로부터 북부 이스라엘처럼 심판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시리아를 통해 북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또 바빌론을 통해 그 아시리아를 심판하심으로써, 역사를 운행하는 자는 강력한 전제 군주나 제국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신다.

 

다른 각도에서 아시리아는 당시 히브리 민족의 관점에서 볼 때 불경건하고 사악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을 심판하는 도구의 자격 얻을 수 있는가?

 

이것은 그들이 사악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북부 이스라엘은 그들보다 더 불경건하고 더 사악한 자들이었다는 데 해답이 있다.

 

또한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의 깊이까지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이러한 내용은 아시리아 사람을 향하여 저주를 선언하는 내용으로 시작딘다. 거기서 '불행하여라' 에 해당하는 '호이'(hoy)는 이사야서 10장 1절의 맨앞에서도 쓰여 북부 이스라엘의 부패한 지도자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음을 나타냈었다.

 

이제 바로 북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주님께서 선택하신 아시리아에 대해 동일한 단어가 사용됨으로써, 그들이 비록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되기는 하였지만 그들도 임박한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 예언되고 있다.

 

그들에게 화가 있는 것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만심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강해져 근동의 패자가 되었다고 자만하여 정복 과정에서 온갖 비인륜적인 만행을 저지르며 파괴와 약탈을 일삼았다(7).

 

심지어 아시리아는 이 과정에서 주변 열강의 신들, 북부 이스라엘의 우상들과 북부 이스라엘의 전능자이신 하느님을 동격으로 취급하고,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신성 모독적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주님은 그러한 아시리아의 교만을 단죄하시고 그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이사야서 10장 5절이하 6절에서는 아시리아를 심판의 도구로 택하신 주님의 주권과 의도 밝힌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아시리아가 하느님의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함을 선언하신다.

 

여기서 '내 진노' 해당하는 '압피'(apphi)의 원형 '아프'(aph) '코'(창세2,7)를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 단어는 코에서 뜨거운 김이 품어져 나올 정도로 감정이 격앙된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극도의 분노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이 단어는 주님의 활활 타오르는 진노 의미한다.

 

그 진노의 방향은 북부 이스라엘에게로 맞추어져 있으며, 그 진노를 대행하도록 선택된 자가 바로 아시리아 사람들이었다.

 

'막대'에 해당하는 '셰베트'(shebet)왕권을 상징하는 '홀'이나 '규'를 의미하기도 한다(창세49,10 ; 민수24,17 ; 판관5,14).

 

그러나 뒷 문장과의 대등관계를 고려할 때 징계하는 데 사용되는 매, 혹은 막대기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원문의 뉘앙스를 고려하여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몽둥이는 나의 격노의 표현이다'가 된다.

 

여기에서 '그의 손에'에 해당하는 '베야담'(beyadam)'손'을 의미하는 명사 '야르'(yar)에 3인칭 복수 소유격 접미어와 '~안에'란 뜻의 전치사 '뻬'(be)가 붙어 '그들의 손 안에'라는 의미이다.

 

또한 '나의 분노이다' 해당하는 '자으미'(zahmi)의 원형 '자암'(zaam)본래 입에 거품이 뿜어져 나올 정도의 격노를 나타낸다.

 

여기서는 죄에 대한 주님의 분노가 얼마나 격렬한 것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이사30,27; 38,4;시편102,11).

 

이러한 하느님의 분노는 인간의 분노와 달리 죄의 속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의노(義怒; 의분; 義忿)이며, 잘못된 것을 심판하여 의(義)를 이루시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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