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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이사26,7-9,16-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9 조회수1,865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이사26,7-9,16-19)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8~9) 

 

앞선 26장 1절ㄴ에서 7절은 장차 구원의 도성에 입성하는 자들의 환희와 믿음의 선포를 소개하였다. 이제 8절 이하 15절까지는 구원의 도성에 입성하는 자들이 노래하는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에 대한 신앙 고백 소개된다.

 

이러한 내용은 네가지 신앙 고백 형태 제시되는데, 각각의 신앙 고백은 두 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첫번째 단락인 8절과 9절에서는 심판을 통하여 공의를 실현하시는 주님을 향한 사랑의 심정이 고백된다.

 

먼저 본문은 주님의 진실한 백성들이 주님의 의로우신 심판과 구원을 바라보면서 그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장차 아루어질 구원에 대한 확신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히 아는 믿음은 그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며, 나아가 악한 자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도 분명히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 사실을 믿는 자들은 현재의 삶에 비록 고난이 많다 할지라도, 그의 나타나심을 인내로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해당하는 '오하르 미쉬파테카'(ohar ishiphateka)문자적으로 '당신의 심판의 길' 이라는 의미이다. 심판의 길에서 하느님을 기다렸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심판에 합당한 삶을 살면서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실 하느님을 대망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신의 판결에 따라'에 해당하는 '미쉬파테카'(mishiphateka)의 원형 '미쉬파트'(mishiphat)는 법정에서 행해지는 판결이나 심판을 의미한다. 신명기 4장 8절에서는 '법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사무엘 하권 22장 23절에서는 '규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열왕기 상권 6장 12절에서는 '규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역대기 상권 16장 12절에서는 '판결'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종합해 볼 때, 본문의 '미쉬파테카'(mishiphateka)주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면서 그 통치의 규례로 사용하시는 법칙, 또는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시는 판결(판단)의 기준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에 해당하는 '키우위누카'(qiwuynuka)의 원형 '카와'(qawa)참을성 있게 마땅히 바랄만한 것을 기다리고 대망하는 것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강조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그 의미가 한층 더 강조되어 있다.

 

사실상 하느님의 백성들이 기다리는 주님은 그들의 삶 속에서 눈으로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손으로 확실히 느껴지지 않는 영적 존재이시다. 나아가 그 하느님은 비록 악인들이 세상에서 불의를 행하여도 그것을 모른체 하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중도에 신앙을 버리고 악한 자들의 편과 자리에 서서, 하느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에 제시된 참 하느님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마치 보는 것처럼 참고 기다리는 자들이다(히브11,27). 하느님은 당신이 정하신 종말의 날에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며, 그 인내와 진실에 대해 성실하게 보상하심으로써 당신의 신실하심을 만천하게 드러내실 것이다(히브11,6).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당신 이름'(주의 이름)에 해당하는 '쉬므카'(shimka)는 주 하느님의 고유한 위격과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주 하느님은 거룩한 이름을 소유하고 계시며, 그 이름에 부합한 일을 행하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신실한 의인들에게 인자를 베푸시고, 교만한 악인들을 진노로 벌하시며, 자신을 의탁하고 신뢰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며, 필요한 때에 도움과 구원을 베푸신다.

 

그리고 '당신을 기억하는 것' 에서 이 '기억'이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내실 때 보이셨듯이, 하느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당신의 은혜로우심과 전능하심 등과 관련된 기억을 의미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 '이 영혼' 해당하는 '나페쉬'(naphesh)는 단순히 '영혼'이라는 의미이며, '소원입니다'에 해당하는 '타아와트'(thaawath)'열망', '소원', '갈망' 이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따라서 본문은 문자적으로 '영혼의 갈망'(the desire of the soul)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의 전존재를 다하여 그야말로 뼈에 사무치도록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순수하고 단순한 것이며,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9)

 

9절의 상반절은 주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토로하는 8절의 내용이 연장되는 예언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원문상으로 8절의 마지막 단어가 9절의 맨 처음에 또 다시 나온다는 사실이다. 즉 8절과 9절 두 구절은 '네페쉬'(nephesh)라는 단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이 단어는 본래 '호흡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생명'(1사무19,11), '마음'(1사무18,1), '숨'(창세2,7), '마음'(에제36,5), '목숨'(창세12,13)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용례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네페쉬'라는 단어가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도 생명의 핵심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밤에'에 해당하는 '빨라울라'(ballaulla)매우 큰 어려움을 당하는 때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즉 그 밤은 주님의 광명이 비추지 않는 때이며, 주님의 의로운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때이다. 또한 그 밤은 악인이 횡행하고 궁핍한 자가 억울하게 착취를 당하는 때이다. 그 밤은 악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이며, 의(義)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때이다. 그러한 때에도 하느님의 백성들은 생명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였다.

 

'당신을 열망하며' 해당하는 '이우위티카'(yuithika)의 원형 '아와'(awa)'바라다', '소망하다','열망하다'란 의미를 지닌다(신명14,26 ; 시편106,15 ; 잠언13,4 ; 23,3). 본문에서는 강조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사랑의 열정이 한층 더 강조되어 있다.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본문에서 '저의 넋' 해당하는 '루히'(ruhi)는 본절 상반절에 있는 '저의 영혼'에 해당하는 '나프쉬'(naphsh)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이 단어의 원형 '루아흐'(ruah)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심령(영 ; spirit)을 지칭하며, 이것은 하느님과 사람이 영적 교제를 나누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본문에서는 '저의 영혼'이라는 표현과 병행하여 사용되었으므로,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그리고 생명을 다하여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모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풀이된다.

 

그리고 '당신을 갈망합니다' 해당하는 '아샤하레카'(ashahareka)의 원형 '샤하르'(shahar)동이 트기 직전의 새벽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하며(판관19,25),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모두 12회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하느님을 간절히 구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욥기8,5 ; 시편63,2 ;78,34 ; 잠언1,28 ;8,17 ; 호세5,15).

 

어원적인 의미와 연결시켜 보면, 이 단어는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깊이 사무쳐서 잠을 설치면서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하느님을 찾는 당신 백성의 열렬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본문에서는 강조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그 의미가 한층 더 강조되어 있다.

 

동시에 미완료 시제로 쓰여 그토록 하느님을 찾는 것을 물론,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하느님과 만나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의인들의 진정한 소망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드러낸다(시편78,23).

 

특히 현실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과 불의와 억울함이 자행되기에 인간의 한계를 너무가 잘 알고 있는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찬란한 태양처럼 임하시면, 죄악과 불의의 깊은 밤이 사리지고 세력이 약화될 것이기에, 주 하느님을 간절히 소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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