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7월 22일(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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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7-22 | 조회수1,39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7월 22일 [(녹) 연중 제16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입니다. 교회는 주일마다 함께 모여 주님의 파스카를 경축합니다. 말씀과 생명의 빵 안에 계시는 성자를 알아 뵙고, 그분을 참된 예언자요 목자로 모시어, 영원한 기쁨의 샘에 이르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말씀의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시고, 그들을 돌볼 목자를 세워 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고, 그분께서는 당신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가셨는데, 거기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살아남은 양들이 다시 모아들여 그들은 돌보아 줄 목자들을 세워 주리라.> 23,1-6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내 백성을 돌보는 목자들을 두고 말씀하신다. ─ 흩어 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많이 하여 번성할 것이다.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화답송◎ 시편 23(22), 1-3ㄱ.3ㄴㄷ-4.5.6(◎ 1) 아쉬울 것 없어라.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제2독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말씀입니다. 2,13-18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없애셨습니다. 세상에 오시어, 평화를 선포하시고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복음환호송◎ 요한 10,27 참조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복음입니다. 6,30-34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같았기 때문이다.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오늘의묵상◎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생산 능률과 효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모든 것을 자본으로 환산하다 보면 복음의 가치들도 물질적 척도로 평가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잘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은 물질적 평가와 보상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군중은 가난한 이가 부를 얻고, 병든 이가 치유되고, 불의한 재판의 결과가 공정하게 바뀌기를 기대하며, 복음이 세상 속에서 내는 효과를 직접 느끼고 싶어 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커질수록 복음이 지닌 내면의 가치는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신 복음 선포는 능률과 효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 평화와 자유의 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안에 ‘쉼’을 통해 그것을 깨닫도록 초대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기쁜 봉사가 피하고 싶은 의무감으로 느껴질 때, 내가 선택한 삶이 잘못된 판단처럼 여겨지고, 희망찬 내일이 두려운 미래가 되는 불안감에 빠질 때, 우리는 잠시 외딴곳에서 쉬면서 물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 내가 가진 재물과 세속적 권력이 누군가의 희생이나 나의 위선과 기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다른 가치와 이념으로 갈라져 적대하며 살아가는 현실은 물론, 우리가 지닌 내적 모순을 십자가를 통해 화해시키시어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라고 고백합니다. 흩어진 양들을 이끌어 줄 목자가 세상의 공정과 정의를 이루어 줄 그날이 올 것임을 확신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굳은 믿음과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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