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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뜻 아닌 하느님 뜻으로 가족 사랑을 / 연중 제 16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24 조회수1,733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가 길거리에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묵주반지를 낀 교우를 보면 반가운 것도 우리 안에 하느님의 이 이웃 사랑의 뜻이 흐르기에.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신앙 공동체가 지금보다 더 가족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오로지 주님의 뜻을 함께 찾고, 그것을 함께 실천하는 것이리라. 그것만이 우리를 가족으로 묶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성모님과 형제들이 오셨다. 어떤 이가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밖에 계십니다.’라고 일렀다.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셨다. 그리고는 분명히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을 따르는 이가 형제,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6-50 참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관계는 어머니와 그 자식 관계일 게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찾으신 어머니에게 참으로 냉정하게 대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랑을 혈연에 한정시킬 때,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될 수 있기에. 유다교 지도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사랑을 자기 이웃이나 자기 민족에게만 국한시켰다. 혈육에 집착하면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 예수님도,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이웃도 보이지 않을 게다.

 

많은 이가 예수님은 성모님을 배척하시는데 천주교 신자는 유독 성모님을 왜 그리 공경하느냐이다. 물론 예수님은 복음 선포와 공생활을 하시면서 혈연에 그리 얽매이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더 깊이 묵상하면,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뜻을 성모님보다 더 순명한 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과 한 몸이나 다름이 없으셨다. 이보다 더 위대하신 어머니가 정녕 계실까?

 

그리하여 예수님은 혈연이 아닌 믿음으로 가족 개념을 세우신다. 그분께서는 이웃을 어떻게 해 주었는지에 따라 예수님의 참 가족 여부가 달려 있단다. 그렇다면 예수님 주변에 있던 이들은 누구일까? 죄인들과 병자들, 굶주린 이들, 과부들, 여인들이었다. 그들에게 하느님 말씀인 사랑을 실천하면 그 상급으로 참 가족이 된다는 거다. 우리가 예수님 가족이 되려면 먼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형제자매가 되어야 할 게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형제, 자매, 부모라는 말을 혈연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 사용하셨다. 곧 예수님께 가족이란 물리적인 핏줄이 아닌 영적인 핏줄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니까. 그러기에 사랑은 주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할 게다. 그 뜻을 벗어나면 맹목적인 사랑이 될 터이니까. 우리 모두는 하느님 사랑 실천으로 그분의 참 가족이 되자. 어쩜 우리 가족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살아 있고, 그분이 주신 소명이 우리의 삶을 이끄는지? 아니면 가족의 안위와 평안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소극적이고 닫힌 마음으로 사는지? 내 방식이 아닌 하느님의 방법으로 가족사랑을 실천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성모님,예수님 형제,성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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