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까요] 가톨릭 장례의 올바른 이해 (2) 1. 상장례의 개념과 변천 상례(喪禮)는 숨을 거두는 초종(初終)부터 신주를 사당에 안치하기 위해 지내는 길제(吉祭)까지 거행되는 유교 의례입니다. 장례(葬禮)는 상례의 일부로 장사지내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교의 예서에 독립적으로 언급된 예는 거의 없고, 상례의 한 부분인 장례를 상례에 붙여 만든 상장례(喪葬禮)는 조어(造語)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죽은 이를 위한 의식에 여러 종교의례가 혼합되었고, 교회는 중국의 한문본 ‘성교례규’의 ‘장상예절(葬喪禮節)’과 조선의 ‘텬쥬셩교례규’의 ‘상장규구(喪葬規矩)’처럼 함께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유교의 개념으로는 불합리한 조어이지만, 오늘날 상례의 전 과정 그대로 이행하는 이가 드물고, 말은 반드시 합리적으로 변하지 않는 현실을 존중해 통용되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2. 위령기도의 정의 인간은 영원히 살고 싶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으므로 그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절망에서 벗어나려고 누군가 믿고 기대고 바라는 노력 가운데 기도가 있습니다. 사전은 기도를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것이나 그런 의식’이라고 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바를 얻으려고 빌고 의식을 행해도 아무나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그분께 기도합니다. 선종한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를 ‘위령기도(慰靈祈禱)’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연도(煉禱)’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연옥도문(煉獄禱文)’에서 유래되고, ‘도문’은 ‘호칭기도(呼稱祈禱)’이므로 직접적인 의미는 ‘연옥에 있는 이를 위해 바치는 호칭기도’입니다. 그러나 넓게는 교회의 이전 예식서인 ‘텬쥬셩교례규’와 오늘날 사용하는 ‘상장예식’의 돌아가신 분을 위한 모든 기도를 통칭(統稱)하는 것이므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구원을 위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3. 위령기도의 토대 위령기도의 토대는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인간의 활동에 관한 교리와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에 관한 교리입니다. 인간의 활동에 관한 교리는 피조물인 인간의 모든 활동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의 협조를 받아 그분의 나라를 이루고, 인간의 활동을 통해 당신 뜻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가 하느님이 심판하실 때 다시 살아난 사람(로마 6,4 참조)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더라도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사람은 회개하고 정화(淨化)해야 온전히 그분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에 관한 교리는 성인들이 친밀하게 교류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가진 바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승의 착한 삶을 복되게 마무리하고[善生福終]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이들, 그리스도인으로 죽었으나 정화 중인 이들, 하늘나라로 향해 가는 나그네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사랑 안에서 여러 단계와 방법으로 친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그리스도께 딸린 이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인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에페 4,16 참조).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 가운데 하나가 고통을 겪으면 나머지도 고통을 겪고, 하나가 영광을 받으면 나머지도 기뻐합니다(1코린 12, 26 참조). 하느님 안에서 잠든 형제와 세상 나그네들의 결합은 중단되지 않고 영신적(靈神的)으로 도움이 되는 교류로 튼튼해지며(교회헌장, 49 참조), 정화 중인 이들을 위해 바치는 나그네들의 희생‧자선‧기도 등은 매우 필요하고 큰 도움이 됩니다. 4.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효도는 기도 죽음은 주님 안에서 영원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해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요즘은 상조회사 직원이 상중의 일들을 처리하기도 하지만, 신자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연령회에 상가의 제반 업무를 맡겨야 합니다. 교우 장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없는 장례미사‧고별식, 입관‧출관‧하관 예식과 기도 등인데 상조회사 직원만으로 모든 예식과 기도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우가 운명하면 가장 먼저 연령회장이나 총무 그리고 성당 사무실에 소식을 알려 여러 업무를 원활히 처리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적은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므로 선종한 이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선한 행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해야 할 유족은 소홀히 하고, 연령회원 또는 이웃만 모여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족으로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문상객을 접대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만,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를 등한시해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이기 어렵다면 문상객과 교우들이 돌아간 시간에 한마음으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교회 장례의 의미와 절차 등을 잘 아는 연령회원이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이를 잘 모르는 유족들이 교회의 가르침대로 장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자세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5. 바람직한 문상 예절 교우가 선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즉시 성호경과 주모경 등을 바치고 “하느님, ○○○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등과 같은 화살기도로 주님께 그분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상가를 직접 방문하고, 도저히 안 되면 ‘상장예식’ 또는 ‘가톨릭 기도서’에 있는 위령기도를 바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 5)라는 말씀처럼 세례를 통해 우리는 모두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肢體)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최대 관심사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선종한 이를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께 그분의 구원을 간구(懇求)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 인한 아픔과 아쉬움을 온전히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주님 안에서 영원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복된 날이므로 아픔과 아쉬움에 파묻히지 말고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지녀야 합니다. 교우 상가에서 “얼마나 망극(罔極)하십니까?”라는 유교식 문상을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의 영혼 구령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문상해야 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8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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