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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빼앗기는 열정을 막아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03 조회수2,64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17간 토요일

 

 

 

<빼앗기는 열정을 막아라>

 

 


      복음: 마태오 14,1-12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어떤 사람은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평범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게 살다 가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분명 태어나면서 부모나 환경의 영향이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큰일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에겐 무언가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에너지의 한계를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쏟을 에너지를 다른 곳에 절대 쏟지 않습니다. 애플의 전설 스티브 잡스는 다시 일에 복귀했을 때 이전 모든 자료들은 다 폐기하고 자신의 방을 매우 단순화했습니다. 페이스 북의 저커버그는 옷 고르는데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옷만을 입습니다. 미국 주식왕 워런 버핏은 다른 것에 정신 팔지 않기 위해 TV와 컴퓨터 등을 사무실에 두지 않고 그의 모든 시간을 신문과 책을 읽고 명상하는 데만 씁니다. 우리나라 이선희 씨도 콘서트가 있을 때는 목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의사소통할 때는 수첩에 글로 적어서 한다고 합니다. 성공한 누구든지 이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 분산을 막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 시간과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 살았지만 저에게 거머리는 여전히 꿈에 나타날 정도로 끔찍한 동물입니다. 피를 빨아먹으며 살 속으로 파고 들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 어렸을 땐 더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거머리 치료법도 있는 것을 보니 거머리가 크게 위해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거머리에게 피 조금 빼앗기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했으면서도, 지금은 피와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여기저기 흩뿌리며 살아온 것 같아 후회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피 빼앗기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데는 무감각했습니다.

 

모든 에너지는 쓰는 대로 소진됩니다. 공부하는데도 에너지가 소진되고 게임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소진됩니다. 게임을 하여 공부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생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에너지는 분명 한계 지워져 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에너지를 빠져나가게 만드는, 내가 애착을 둔 모든 것들을 끊지 않으면 한 가지분야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과를 거두기란 불가능합니다.

 

구원만큼 우리가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것이 있을까요? 구원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들에 있는 이들은 도시로 들어가지 말고 산으로 올라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산을 오를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젖먹이 아이가 있거나 임신한 여자라면 어떻게 그 급박한 상황에서 산을 오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를 배거나 젖을 먹이는 엄마는 불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상징적인 표현인데 이 세상 것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노아의 홍수 때처럼 빗물이 들이닥칠 때 노아의 방주까지 다다르지는 못할 것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에너지가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살모사의 새끼가 어미를 먹어치우듯 우리 에너지가 내가 집착하는 것에 의해 빼앗깁니다. 그렇게 힘이 분산되면 구원이 힘들어집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께서 매 맞으시며 고통당하실 때 군중들 사이로 한 여인이 지나가는데 그 여인이 안고 있는 어린 아기가 사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 여인은 그렇게 세상 것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수난 당하시는 그리스도께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가끔은 그에게 찾아가 조언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것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먼저 아내에 대한 애착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딸이 춤을 추자 헤로데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게다가 왕국과 사람들에게까지 묶여있기 때문에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요한의 목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세상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에너지는 부족하게 됩니다. 이런 애착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 에너지를 이 세상 것에 집착하며 거기에 다 써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에너지를 오로지 주님께 쏟기 위해 나의 힘과 지성과 시간을 빼앗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마지막에 끊어야 하는 것은 애정입니다. 사람과의 애정도 많은 에너지를 잃게 만듭니다.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끊지 않으면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헤로데가 진정 자신의 가족을 사랑한 것일까요? 이용당한 것입니다. 먼저 끊지 않으면 올바른 데 써야하는 에너지도 빼앗기고 맙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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