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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제1독서(예레30,1~2.12~15.18~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07 조회수1,533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제1독서(예레30,1~2.12~15.18~22)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21)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22)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15)

 

하느님께서 선민의 심각한 죄악 때문에, 그들에게 보내신 재난

결국 그들의 회개와 회복을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받지 않고 거기서  빠져 나가려고만 하거나,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로 인해 원망의 소리를 내거나,

무조건적인 구원을 호소하는 것은 결코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본절은 바로 이 사실을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소리치느냐' 에 해당하는 '티즈아크'(tizak)의 원형

'자아크'(zaak)는 극심한 고통에 빠져있는 자가 도움을 얻기 위해

애절한 심정으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72회 사용되었으며, 대부분 주 하느님의

도움을 원해서 부르짖을 때 사용된다(탈출2,23; 판관3,15; 1사무12,10).

 

본문에서 이 단어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어 당시 선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에서 헤어나고자 반복적으로 부르짖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주님께 부르짖는 것은 전혀 책망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적극 권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멸망 당시 정황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이 쌓여서 넘칠 정도로 무수히 많은 범죄를

저질러 온 데 대한 최종적 심판 선고의 적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 그 일을 당하기 전에 주님께로 가서 간곡히 부르짖었어야만 했다.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본문에 앞서 제시된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에 해당하는

원문 표현은 14절에서의 어구와 동일하다.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선민의 윤리적 사악함과 신앙적 타락이

너무나 극심함을 또 다시 언급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것에 대해 도저히 번명할 구실을 찾지 못하게 하며, 주님께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징계하시는 것이 매우 정당한 일임을 확정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라는 본문의 선언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이런 벌' 해당하는 '엘레'(elle)는 복수 지시 대명사로서

'이것들'(these)이란 의미이다.

즉 이것은 한 가지 특정한 징계가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징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을 당신의 진노를 대행하는 막대기로 사용하시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파괴하며, 그곳에서 범죄를 자행하는 자들을

죽음에 던지고, 그들을 또한 포로로 끌려가게 하는 등의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 내린 것이다'란 표현을 통해 명시되듯이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1)

 

주님께서는 선민들을 위해 친히 세우시는 그 지도자를

당신께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구약적 맥락에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성전에 들어가

주님께 제사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남부 유다의 임금 우찌야가 오직 주님께 향을 피우도록 성별된

아론의 자손 사제들에게 맡겨진 분향을 허락없이 하려다

그 자리에서 이마에 나병이 생기는 형벌을 당했다(2역대26,16~20).

 

그런 점에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사제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인 사제가 동시에 정치 지도자인 통치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은 대사제 겸 임금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다.

 

시편 110장 1절에서 주님께서는 메시아에게 자신의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가까이에 있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느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

당신 백성을 위해 대신 간구해 주신다(사제직 중재 기도를 올리고 계신다.)

(로마8,34; 히브7,25).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22)

 

본절의 예언은 과거 주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출애굽시키시는 과정에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건지시는 목적을 밝히시면서 주신 약속이었다(탈출6,7).

 

그 약속을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의 선민들에게 다시 주신다는 것은

포로 귀환이 출애굽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바빌론 포로 유배기 이전에 멸망을 통해 그들이

이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로부터 참된 예배를 받으실 것을 계획하신다.

 

본문에서 '나'에 해당하는 단어 '아노키'(anoki)

주어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인칭 대명사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바빌론으로 넘기시고 다시 유배에서 귀환케하신

주님 자신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14,27)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히브11,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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