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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양심의 자유가 새 계약의 완성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09 조회수2,26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양심의 자유가 새 계약의 완성>



  복음: 마태오 16,13-23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20096월 미국, 29살 한 청년이 자신의 블로그에 16년 전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혔습니다. 그는 마이클 잭슨에 의해 성추행 당했다고 아버지와 함께 마이클 잭슨을 고소했던 죠단 챈들러였습니다.

그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93년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마이클 잭슨의 차가 고장 나서 멈추어 서 있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이 그 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에반 첸들러였습니다. 그는 마이클 잭슨의 차를 고쳐주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감사한 마음에 두 부자를 집에 초대하여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어렸을 때부터 연예계에 데뷔를 했기에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의도보다 큰 면적의 땅에 놀이동산을 만들고 어린이들을 초대하여 함께 놀았는데 그 곳이 네버랜드였습니다. 에반 첸들러의 아들 조단 첸들러는 네버랜드에 자주 놀러 다녔고 마이클 잭슨과 남다른 친분을 쌓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 에반 첸들러는 파산 직전으로 빚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이용하여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 어렸던 죠단 첸들러는 고아원에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압력을 버틸 수 없어 아버지가 일러 준대로 마이클 잭슨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소송이 제기 된 때는 마이클 잭슨이 거액의 투자를 하여 월드투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소송을 하며 월드투어를 할 수 없어 한화 약 220억 원에 합의를 신청합니다. 하지만 모든 언론은 마이클 잭슨이 성추행을 했음을 인정했다고 보도합니다. 그래서 성추행 범이 되어버린 마이클 잭슨의 모든 월드투어는 취소되고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재기를 못하다가 다시 월드투어를 기획하여 연습도중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조단 챈들러는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SNS를 통해 사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에반 첸들러는 이미 오래 전에 합의금을 다 탕진해버린 채 살아가다가 마이클 잭슨 사망 4개월 후 자살한 채로 자택에서 발견됩니다. 이로써 16년 동안 아동 성추행자로 낙인찍혔던 마이클 잭슨은 누명을 벗었습니다.

[출처: ‘진실’, 서프라이즈 605]

 

지옥에 가서도 사라지지 않는 벌이 양심의 가책입니다. 조단 첸들러는 양심의 가책을 풀기 위해 세상의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이라 인정했습니다. 에반 챈들러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안에 양심이 없다면 이미 마이클 잭슨이 죽은 상황에서 그런 결단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심이 있기 때문에 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상벌을 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반드시 그 상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과의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자신 안에서부터 벌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심판관이 되어 남을 심판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새 계약에 대한 예언을 주십니다. 옛 계약은 십계명을 지키면 당신이 그 백성의 하느님이 되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자신의 힘으로 지킬 능력을 지닌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옛 계명을 기준으로 그 십계명을 몰라도 지킬 수 있도록 양심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래서 양심에 민감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굳이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양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종교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계약에 의해 결정됩니다. 천주교에 다니더라도 양심대로 살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종교가 없더라도 양심대로 살면 이미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는 마음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뿌리이기 때문에 거기서 결정된 것은 어떤 나의 일부분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마치 물이 샘솟을 때 독이 녹아있었다면 그 물은 강이 되어도 독을 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심에 어긋나면 하느님께 어긋나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느님과의 계약조항입니다. 양심을 어기는 것은 신랑이신 하느님 앞에서 바람을 피우는 신부와 같습니다. 양심의 자유가 부부관계의 완성이라면, 역시 양심의 자유가 하느님과의 관계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계약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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