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0 조회수2,840 추천수10 반대(0)

서울 교구에는 외국에서 온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레뎀또리스 마테르(구세주의 어머니)’라는 이름의 신학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남미, 유럽,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입니다. 젊은이들이 모였을 때 제비를 뽑았고, 한국으로 정해진 젊은이들이 왔다고 합니다. 말을 배우는 것도 힘들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제비에 뽑혀서 왔다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힘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미를 드리며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선포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생각이 변하였기에, 좋아하는 일이기에 가족들을 떠나서 멀리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1982년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는 내규가 있었고, 신학생들은 내규를 지켜야 했습니다. 외출이 허락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침묵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침기도, 미사, 양심 성찰, 묵주기도, 저녁기도, 끝기도가 있었습니다. 즐거워하기보다는 의무감으로 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잘 지켰지만, 방학 중에는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몸은 규칙을 지키지만, 생각과 마음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좋아하고, 성서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았다면 학교의 내규는 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은총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서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의무감으로 돌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부부는 의무감으로 살아서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참아 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의무감으로 한다면 날개는 있지만, 새장에 갇혀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새와 같을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 같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연필의 영성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연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연필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를 내세우기보다는 하느님께 먼저 의지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연필은 깎여야 하고, 조금씩 없어지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희생과 봉사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은 겉모습보다는 연필심이 중요합니다.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연필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겉모습을 꾸미기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연필은 잘못 쓰면 지울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과정에서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이웃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로 쓴 것은 지울 수 있지만, 흔적은 남게 됩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신중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작은 연필도 자세히 보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가뭄도 견디고, 바람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집도 기둥이 있어야만 오랜 세월 지탱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람, 건물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봉사자들입니다. 예비 신학생들의 여름 행사에 봉사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간식을 준비해 주시고, 방문해 주시는 성소 후원회 임원들이 있습니다. 후배가 될 학생들을 위해서 땀을 흘리는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도 많은 봉사자를 보았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분, 삼계탕을 끓이는 분, 어르신들 간식으로 전을 부치는 분, 수박을 나르는 분, 사진을 찍는 분, 고기를 굽는 분,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겉으로 드러난 꽃이라면 봉사자들은 어둠 속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부제도 바로 그런 봉사자였습니다. 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우리는 모두 주님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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