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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8.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3 조회수1,56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에제 1,2-5.24-28ㄷ

제삼십년 넷째 달

2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복음 마태 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미국의 작가인

데이 클라렌스 셰퍼드는

자신의 글에서

‘세 개의 황금 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즉,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첫째는 그것이 참 말인가?

둘째는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마지막 세 번째는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라는 문을 거쳐서 말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내 자신이 내뱉고 있는 말이

이 세 개의 황금 문을 통과한

적당한 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으로 많지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때도 많고,

또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친구들과 함께 식사 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 좀 먹어. 너무 먹어서

네 살이 옆으로 터져 나가겠다.”
이 말에 아내는 크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참 말도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좀 살을 찌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

 마른 체형이었습니다.

 또 필요한 말이었을까요?

 친구들과 함께 외식하는 자리는

 즐거움의 시간이지 상처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친절한 말도 아닙니다.

남편의 쓸모없는 말이 비수가 되어

아내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말이란 아픔과 상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이란 나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지금 내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의 모습이 바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전세에

대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임금이

 자기 자녀들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는다면서 굳이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고기를 잡아 성전세를

 베드로의 몫까지 내주십니다.

성전세를 걷는 이들을

무서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툼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진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중

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다툼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치를 이루는 것이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얻기 위한 말이 아닌,

오히려 큰 것을 얻기 위해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성전세를 내면서

다툼을 피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이 원칙을

 늘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일에 집중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나

행동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99%의 사람은 현재를 보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고,

1%의 사람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지금 현재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의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간다 마사노리)





해미 성지...

"15 해미 순교 성지"

해미 성지는 이름 모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터전입니다.

정사박해(1797)때부터

신유박해(1801),

 병인박해(1866)까지 80여 년간

수천 명의 무명 순교자를 낸 곳입니다.

병인박해 때만 1,000여 명이

순교한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이름이 기록된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합니다.

이들 가운데 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후 비오가 2014년 8월 16일에

시복되었습니다.
해미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이유는 이곳이 서해안

방어를 위해 마련한 해미 읍성과

군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죄인들의 처형을

 군인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충청도 서북부 내포 지방에서 잡힌

신자들 중 일부는 홍주와 공주로,

일부는 해미로 보내졌습니다.

신자들은 신앙을 버리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한 번 알아 모신

하느님 아버지를 배반할 수 없다하여

순교에 이르렀습니다.
해미에는 조선시대에 건축된

읍성과 관아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체포된 신자들은 1차로

해미 읍성 안에 있는 관아에서

형벌을 받고 감옥에 갇혔기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신자들을 매달아 형벌을 가하던

회화나무(호야나무)가 있고,

감옥도 복원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을 처형할 때에는 읍성의

서문 밖으로 이송하였으므로

그 방향으로 설치된 십자가의 길

14처를 따라가면

순교성지에 이릅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11시에 미사가 봉헌되며,

 사전 예약을 하면

식사와 숙박이 가능합니다.

주소는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이고,

전화는 041-688-3183입니다.




 

 

 

대전교구의 해미 순교 성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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