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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8.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6 조회수1,71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에제 12,1-12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3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유배 짐을 꾸려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거라.

행여 자기들이 반항의 집안임을

그들이 깨달을지도 모른다.

4 너는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라.

5 그들이 보는 앞에서

벽을 뚫고 나가라.

6 너는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마라.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삼았다.”
7 나는 명령을

받은 대로 하였다.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손으로 벽을 뚫고,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다.

8 이튿날 아침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9 “사람의 아들아,

 저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10 그들에게 말하여라.

 ‘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 신탁은 예루살렘에 있는

수장과 그 안에 있는

온 이스라엘 집안에

관한 것이다.’

 11 너는 또 말하여라.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유배를

당해 끌려갈 것입니다.’

12 그들 가운데에 있는

수장은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이 그를 내보내려고

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땅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

복음 마태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안식년을 지내고

있었을 때의 일이

하나 생각납니다.

식사를 하고서 커피 한 잔을

우아하게 마신 다음,

설거지를 하다가 커피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 잔은 어느 지인이 직접

 만들어서 제게 선물로

주신 것으로 무척 아끼는

커피 잔이었습니다.

깨진 커피 잔을 바라보면서

주의하지 못한 제 자신을

 탓하면서 동시에

 선물 주신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요.
얼마 뒤의 일입니다.

제가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집에

신부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다가 선배

신부님께서 찻잔을 실수로

떨어뜨려서 깨진 것입니다.

이 찻잔 역시 제가

아끼는 것 중에 하나였지요.

 이때 어떻게 했을까요?

신부님께 화를 내며 짜증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괜찮으세요?”라고

황급히 이야기하면서 다친 곳이

 없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왜 제가 잔을 깼을 때와

행동이 다를까요?
깨진 잔보다 선배 신부님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때문에 내 자신이

잔을 깨뜨렸을 때에는

그 깨진 잔이 아깝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지요.
누군가에 대해서 화가 날 때,

정말로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로 귀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화를

다른 쪽으로 옮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것에만

집중하면서 중요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랑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미워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기뻐할 수도 있고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지금의 내 상태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잘못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를 묻지요.

그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끊임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용서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깨끗하게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은

누구나 다 귀한 존재입니다.

그 귀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나의 이웃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용서하라는 것은

 그 사람의 귀함을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이의 귀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귀함을

인정받아서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나의 이웃을 귀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내가 상대방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통이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하게 됩니다.

(피에르 볼프)


갈매못 순교성지.

"18 오천 갈매못 순교성지."

갈매못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다섯 성인과

유명 순교자

(박베드로, 손치양, 이영중, 이발토로메오, 임운필)

와 500여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바닷가입니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의 제5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지 4일 만에

 그의 복사였던 황석두 루카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더 이상 많은 교우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오매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에게

자수를 권고하셨지요.

 이에 순명하여 두 선교사가

신리로 와서 자수하였고,

황석두 루카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조선 왕실의 국혼을 앞두고 있어

서울 인근에서 피를 보는 것이

좋지 않다 하여 멀리 보령 갈매못으로

보내 처형하게 했습니다.
갈매못은 수군들이 주둔하는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세 선교사들과 황석두 루카가

갈매못으로 이송될 때 함께

 갇혀 있던 배론 신학당 집주인인

장주기 요셉도 동행했습니다.

이들 다섯 순교자는 갈매못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1866년 3월 30일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성금요일이었기에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을 봉헌했습니다.
다섯 성인의 잘린 머리가 바닷가

모래사장에 장깃대에 매달리던 날,

하늘에서 은빛무지개 다섯 개가

 내려와 다섯 성인의 얼굴을

비추었다고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무명 순교자들은 처형 후

바다에 던져 수장했습니다.

그래서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없습니다.

성지 앞바다는 그 당시 피로

물들었고 그 바다가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인 것입니다.
미사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 30분에 봉헌되며,

주일에는 오전 8시

미사도 있습니다.

500명까지 미사와

식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전 예약 필요).

주소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이고,

전화는 041-932-1311입니다.


 

 

대전교구의 오천 갈매못 순교성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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