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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에제16,1-15.60.6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7 조회수1,190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에제16,1-15.60.63)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15)

  

앞선 1~14절은 타락한 선민의 징계와 회복의 전과정을 조망하는 일련의 비유인 1~63절의 전반부이다.

여기서는 버려진 신생아처럼 비참한 처지에 있었던 이스라엘을 구하시고, 아름답게 키워 단장하시며,

왕후로 삼으셨던 주님의 은혜를 회상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15~52절은 본장 중반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전반부의 긍정적인 내용과 달리 아주 부정적인 내용을 다룬다.

15~34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이에 보답하기는 커녕

그 은혜로운 결과를 악용하여, 남편되신 주님을 배반하는 가증스러운 일,

주님 보시기에 실로 구역질이 날만한 각종 더러운 죄악을 다른 이방 사람들 및

그 종교들과 결탁하여 범했다는 사실 다양한 비유로 매우 상세하게 진술한다.

 

여기서 '그런데 너는 ~믿고'에 해당하는 '왓티브테히'(wathibtehi)의 원형 '빠타흐'(batah)는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들이 믿는 대상은 바로 '네 아름다움'이었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을 존귀한 존재로 삼아주신 주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름다움과 명성을 의지하여 주님을 저버리는 배신의 죄악을 범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궁핍과 곤란을 겪던 자리에서 풍요와 번영을 누리는 자리로 옮겨 주시고,

수치와 굴욕의 자리에서 아름다움과 명성을 누리는 자리로 옮겨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기 보다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를 맹신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누리는 은혜의 결과물들로 인해, 하느님을 의지하는 자리에서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불륜을 저지르다' 해당하는 '왓티즈니'(wathizni)의 원형'자나'(zana)

문자 그대로  유부녀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더불어, 또는 창녀가 남자와 더불어 간음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여기서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어, 이스라엘 자손이 남편되신 주님을 저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끌어들여, 그 신들을 남편처럼 떠받들고 의지하는 죄를 범하였음을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비천한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자기 소유로 삼으셨지만(8절),

그들은 주님께 속하기를 거부하고 이방 민족처럼 되기를 바라며, 이방 민족과 교류하며,

그들이 섬기는 허망한 신들을 섬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본문에서 '지나가는 아무하고나'에 해당하는 '콜 오베르'(kol ober)

이스라엘에 큰 관심을 갖지도 않는 이방 사람들 혹은 그들의 우상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관심도 없이 그 주변을 지나갔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매혹되어 그들과 더불어 영적 간음을 저질렀음을 말하고 있다.

실로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우상과 무차별적인 영적 간음(불륜)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60)

 

앞선 56~59절에서는 맹세를 멸시하고 계약을 배반한 예루살렘을 징벌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하실 것임을 강조했다.

이제 이어지는 60~63절은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영원한 계약을 세울 것을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은 과거 어렸을때 맺었던 계약을 잊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를 철저히 배반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과 어렸을 때 맺으셨던 계약을 기억하고, 또한 당신의 은혜를 근거하여,

그들과 전혀 새로운 영원한 계약을 맺어, 그들을 새로운 백성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의 어렸을 때에 맺으셨던 계약은 사실상 8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혼인 계약이며,

이는 역사적 시각으로 볼 때, 시나이 계약(탈출19,5.6)이라 할 수 있다.

이 계약이 구원사적 발전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과 하느님께서

새롭게 맺으시는 계약으로 발전된다(1베드2,9).

 

한편, '나는~기억하고' 해당하는 '웨자카르티  아니'(wezakarthi ani)는 22절과 43절에서

예루살렘이 과거 어렸을 때의 비참한 상황 및, 바로 그때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않았다고 한 진술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과거 자신들의 본래 상태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며,

심지어 과거 하느님앞에 행한 맹세를 저버린 예루살렘은 계약을 배반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과거를 기억하시며 결코 이를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새로운 계약을 세우시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소개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에는 '나는'에 해당하는 '아니'(ani)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있다.

즉 앞선 59절까지는 이스라엘과 그들의 태도, 그들에 대한 심판에 강조를 두었다면,

이제 본절 이하에서는 주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해 시각을 돌려 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영원한 계약'에 해당하는 '뻬리트 올람'(berith ollam)계약의 효력이 영원히 변치 않고 지속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에제키엘서에는 본절 외에 37장 26절 또 다시 나타난다.

 

그곳 문맥에서 제시되는 영원한 계약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무덤에서 나오게 한 후,

그들에게 새 영을 주어 살게 하신 다음, 그들에게 다윗이라는 이름의 왕을 세워 그들의 목자가 되게 하고,

주님의 법규와 규정을 지키게 할 것이며, 그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세우는 이 영원한 계약은 곧 '평화의 계약'으로 설명된다.

 

그 문맥에서 다윗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다윗의 계보에서 태어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어 놓으심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가져 오시고(로마5,1.10),

그들과 당신 피로 세운 새로운 계약을 맺어(마태26,28),

영원히 그들을 통치하는 왕이 되실 것이다(필리2,9-11).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이 영원한 계약에 대해 예언한 바 있는데,

그 계약은 주님께서 과거 시나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계약,

곧 돌판에 새겨져 계약궤 안에  넣어 두지 않고, 그 법을 그들의 가슴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어, 하느님께서 그들의 하느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계약으로 제시된다(예레 31, 31-33; 33,38-4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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