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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20주일. 2018년 8월 19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7 조회수1,425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20주일. 2018819.

요한 6, 51-58.

 

요한복음서가 기록된 서기(西紀) 100년 경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들은 이미 성찬례(聖餐禮)를 자기들의 방식으로 거행하고 있었습니다신앙인들은 함께 모여 예수님에 대해 회상하고, 그 회상한 바를 함께 나누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하신 말씀을 따라 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미사에서 하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 전례의 기원(起源)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이야기 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어서 유대인들의 항의도 소개합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유대인들은 성찬에 대해 모릅니다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은 그리스도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그래서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설명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내 형제내 살이라 부릅니다나와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따라서 오늘 복음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사셨던 인간관계가 우리의 삶 안에도 살아있게 한다는 뜻입니다유대인들에게 피는 생명입니다(레위 17,11 참조).  따라서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말은 그분의 생명을 우리 안에 살려낸다는 뜻입니다결국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예수님이 사람들과 가지셨던 그 관계와 예수님이 사셨던 그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만나면그들을 고쳐 주고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을 만나면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 기득권층이 죄인(罪人)이라 부르며 멀리하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 마음의 부담을 없애 주셨습니다하느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당신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실의(失意)에 빠져 살게 하지 않으십니다그런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확신(確信)의인(義人)이 아니라 죄인(罪人)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남겼습니다예수님이 사람들과 가지셨던 인간관계는 사람들에게 축복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신 생명은 자기 스스로를 보존하고높이기 위해 다른 생명에게 손상(損傷)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인간은 기회만 있으면자기 한 사람 잘 되는 길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이겨야 하고, 자기 한 사람이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이웃이 겪는 피해는 괘념하지 않습니다자기가 속하는 정당(政黨)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당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처세(處世)는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리스도신앙 언어 안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명(順命)’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흔히는 그리스도 신앙의 덕목(德目)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소개되기도 합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발생한 신앙언어는 하느님에게 순종하라고 말하지사람에게 순종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가톨릭교회에는 사람에게 하는 순종을 신앙의 덕목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유럽 중세 사회에는 대부분의 무식(無識)한 사람들과 극소수의 유식(有識)한 상위신분(上位身分)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런 사회에서 무식한 사람이 유식한 상위신분의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실효성(實效性)을 높이는 현명한 처신이었습니다그러나 오늘은 인간 각자가 필요한 정보를 얻고. 그중에서 취사선택하여 현명하게 삽니다윗사람의 뜻에 순종하여 사람 행세를 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이런 여건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하는 것은 강자(强者)로 군림하여 다른 사람을 지배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자기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비하(卑下)하는 일입니다인간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종과 같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는 예수님의 근본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사람은 어떤 구실로도 사람에게 순종(順從) 혹은 맹종(盲從)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생명을 짓밟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예수님이 최후 만찬에서 내어주는 몸이다 받아먹어라’, ‘쏟는 피다 받아 마셔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삶이 우리 안에 나타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성찬을 거행하는 공동체도 그 사실을 알아들었고, 그 말씀은 오늘의 미사에까지 보존되었습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앙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그 사실을 오늘 복음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예수님의 살이라는 빵을 먹고 예수님의 피라는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생명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만찬에서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그리고 우리를 위한 당신의 몸인 빵이고우리를 위한 당신의 피인 포도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감사로우면, 그것을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진 은혜로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모든 사람을 위한 축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체성사가 지닌 의미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기 한 사람 잘 되기 위해 전력을 다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로운 것도 축복도 없습니다. 그는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지 못해서 안타깝고 불행할 따름입니다. 그런 행태(行態)들은 사회에도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이라, 그 안에 명예와 권력을 위한 은밀한 추태들은 있습니다.

 

미사는 우리가 하느님에게 무엇을 바쳐서 그분으로부터 축복을 얻어내는 길이 아닙니다.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것은 이제부터 그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그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고 마시면서 그리스도 신앙인은 마음다짐을 합니다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으신 예수님의 인간관계와 그분의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하겠다는 다짐입니다신앙인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은혜로움을 사람들에게 나눕니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우리가 그것을 먹고 마실 이유가 없습니다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 되면서 성찬에서 일어나는 성변화(聖變化)’는 우리의 삶에서도 현실이 됩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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