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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 19주간 토요일(에제 18,1-10ㄱ.13ㄴ.30-3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8 조회수1,366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 19주간 토요일(에제 18,1-10ㄱ.13ㄴ.30-32)

  

 

 '너희는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자식들의 이가 시다'

속담을 말해 대느냐?(2) 

 

본절과 3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책임 연계를 뜻하는 속담이,

사용하지 않게 될 그릇된 속담임을 천명한다.

 

그 가운데 본문은 이 속담이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 특히 바빌론 유배 포로 공동체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땅'에 해당하는 '아드마트'(admath)의 원형 '아다마'(adama)는 영토라는 의미보다는

흙 성분 자체로서의 땅이라는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문자적 의미보다 예루살렘 및 그 예루살렘이 대표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내는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에 대하여'라는 의미의 전치사 '알'(al)과 함께 쓰여 이후에 제시되는 속담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되어 언급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새 성경은 잘못 번역 한 것 같은데,

원문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함마샬 핫제 알 아드마트 이스라엘";

hammashal hazeh al admath israel; this proverb about the land of Israel)이다.

 

원문에서 '속담' 해당하는 단어는 '함마샬 핫제'(hammashal hazeh)로서,

문자적으로는 '바로 이 속담'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회자되던 그 속담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던 속담이라는 사실 나타내고 있다.

 

'속담'에 해당하는 '함마샬'의 원형 '마샬'(mashal)은 어떤 두 개의 대상을 나란히 놓고

서로 비교 대조하는 것을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자연 현상이나 생활 속의 일을 빗대,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말하는 표현을 의미한다.

 

단순히 어떤 사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다른 것에 빗대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풍부하고 깊은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오래 동안 잊혀지지 않고

잘 기억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자식의 이가 시다'란 속담의 의미는

아버지(조상)가 지은 죄 때문에 자식(후손)이 고난(형벌)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예컨대 B.C.14세기에 힛타이트 왕 무실리스 2세는 자기 왕국을 휩쓸어버린 대재앙을 목도하면서

힛타이트의 폭풍의 신에게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신에게 큰 죄를 저질러

그 신이 그 죄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물어 이런 형벌을 주시는 것이라고 항변하였다.

 

본절의 속담에서 '시다' 해당하는 '티크헤나'(thiqhenah)는 구약 성경에서

본문을 포함해 오직 네 구절에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코헬렛 10장 10절("쇠가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을 더 들여야 한다.")에서는

칼이나 연장의 날이 날카롭지 못하고 무딘 상태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고,

본문의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속담을 진술하는 예레미야 31장 29절,30절에서는

본문과 마찬가지로 신 포도를 너무 많이 먹어 이빨 신경이 무뎌져 얼얼한 상태를 나타낸다.

 

상식적으로 아버지가 아무리 신 포도를 많이 먹을지라도,

그 당사자의 이빨의 감각이 무디어질 뿐이지,

그 자녀의 이빨이 그렇게 될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런 속담을 만들어 회자시킨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들, 특히 바빌론 포로로 끌려와 타향 생활을 하며 고난을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이 당하고 있던 그 고난이 죄를 너무나 많이 지은 그 조상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에 많이 나는 포도와 관련한 이 속담을 말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자신들의 삶을 깊이 통찰하여 그러한 상황에 처하도록 만든

그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조상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불평만을 일삼았으며,

무고한 자신들에게 내리시는 주님이 공평한 신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주님을 원망하는 삶을 살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러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내려진 그런 고난의 삶을 결코 벗어 버릴 수 없다는

일종의 숙명론적인 굴레에 얽매어,

미래에 대해 그 어떠한 소망도 품지 못한 채 절망속에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상의 죄악으로 인한 희생자가 결코 아니었다.

바로 그 자신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철저히 회개하여 자신들의 악한 삶을 떠나

의로운 삶을 살 경우, 자신들은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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