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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8 조회수1,607 추천수1 반대(0) 신고

 

『음성강론』?2012년 8월18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마태오 19,13-15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마태 19,13-15)."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기도를 해 달라고 청합니다.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은 것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거나, 아니면 그런 사소한 일로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어린이'는 힘없고, 가난하고, 못났고, 보잘것없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어리고 순수하고 단순한, 글자 그대로의 어린이가 아니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세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교회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모이는 곳이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없고 보잘것없고 못난 사람도 주눅 드는 일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반대로 힘 있고 잘 살고 잘난 사람들이 역차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없어야 하는데, 아예 구별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만으로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출신, 직업, 성별, 나이, 인종, 학력... 다 예수님 앞에서는 무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예수님의 제자들은) 힘없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야 하고,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예산을 들여서 휠체어를 탄 채 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설치하는 등의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대우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바로 공평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자기를 낮추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라고 하셨고,

 

또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라고도 하셨습니다.

 


 

'사랑이란 같아지는 것'입니다. 같아지려면 먼저 자기를 낮춰야 합니다.

 

자기는 낮추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올라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교만이고 위선이고 거짓 사랑입니다.

 

이제 막 입교한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은 신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도 만일에 예비신자 교리를 마치 신학 수업처럼 진행하면서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한다면 그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자기의 믿음을 증언하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면서도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기만 하고, 자기가 유식하다는 것을 과시합니다.

 

그것은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경우엔 읽은 책이 많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어떤 이는 읽은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인용하기만 합니다.)

 

'하느님이신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14) 라는 육화강생의 교리는 사람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처럼 당신을 낮추지 않고 하늘 높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나를 믿고 따라라.' 라고만 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선거 기간에 대통령 후보자가 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 먹는 정도로는, 또 교구장이 조그만 공소에서 성탄절 미사 한 번 드리는 정도로는 자신을 낮추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같아지지 않고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은 낮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낮춤'은 잠깐 내려와서 휙 둘러보고 다시 올라가신 일이 아닙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송영진 모세 신부

 

2013년도 연중제19주간 토요일 묵상글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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