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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21주일. 2018년 8월 26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24 조회수1,797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21주일. 2018826.

요한 6, 60-69.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요한복음서6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6장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5000)명을 먹이신 이야기로 시작하여 성찬(聖餐)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며 명상(瞑想)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성찬곧 성체성사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복음서는 그 제2장에서 예수님이 성전(聖殿)의 상인(商人)들을 쫓아내어 성전을 정화(淨化)하신 이야기를 한 다음, 그리스도인의 성전은 성체(聖體)라고 말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2,19).복음서는 예수님의 입을 빌려 말하면서 이렇게 해설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몸이 곧 성전임을 가리켜 말씀하셨다.”(2,21).  그러나 그 사실을 제자들이 깨달은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이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이 말씀을 상기하고 성서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2,22).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제자들이 성찬을 거행하면서 예수님의 몸인 성체가 그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 다른복음서들은 이미 집필(執筆)되어 있었고, 신앙공동체들은 성찬을 거행하고 있었습니다.요한복음서저자는 공동체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성찬이 그냥 먹고 마시는 허례허식(虛禮虛飾)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다른복음서들은 수난(受難)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이별(離別)의 만찬을 하셨고, 그것이 성찬의 기원(起源)이라고만 기록하였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성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최후만찬에 대한 보도에서 그 이야기를 빼버렸습니다그 대신 이복음서는 예수님이 만찬 식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이야기를 합니다그 이야기는 다른복음서들에는 없습니다그리고 이복음서는 예수님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주인이요 선생인 내가 발을 씻었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3,14).  성찬은 먹고 마시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과 같이 겸손하게 섬기는 종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서를 집필한 사람들은 태어나는 신앙공동체들의 한가운데에 성찬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사실을 봅니다.  그들은 성찬이 신앙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다음과 같은 말도 있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성찬은 육()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여기서 육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생각하는현세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자기 한 몸, 잘 먹고 편하게 살고 싶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움직이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찬은 그런 삶을 위해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넓은 지평을 보고 사는 인간을 지칭합니다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하느님의 뜻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 주변을 보는,  하느님 자녀의 삶을 의미합니다자녀는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생명을 이어서 산다고 믿던 시대였습니다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오늘과는 달리 생각할 때였습니다현대인은 부모의 생각을 따라 살기 보다는 각자 자기의 창의력을 좇아서 독자적으로 삽니다오늘과 같이 개인의 창의성(創意性)과 독자성(獨自性)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시대는 인류역사상 없었습니다초기 신앙공동체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한 것은 그분이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그 생명을 이어서 사셨다는 뜻입니다우리도 예수님의 삶을 배워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요한복음서는 그 서론에서 말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 현상을 읽어내어 그것을 빛으로 삼아영의 삶을 살라고 권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육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영의 삶이 하느님의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하느님은 생명을 아끼고, 고치고살리는 분이십니다그래서 인류역사에 생명들이 있고,  생명을 위한 헌신(獻身)과 사랑이 있으며,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보살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영이 주는 생명입니다. 그런 헌신과 사랑과 보살핌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연은 많은 일을 합니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햇빛과 수분이 공급되고 땅이 보존한 양분이 흘러듭니다. 그래서 대지(大地)에는 식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랍니다부모 된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헌신하기에 자녀들이 태어나고 성장합니다.

 

소설(小說) ‘흥부전을 우리는 잘 압니다. 놀부는 육의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의 표본입니다놀부는 많은 재물을 가졌으면서도, 호박씨를 얻어 횡재하기 위해 제비의 다리를 부러트립니다흥부는 가난하지만, 형의 재물을 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리 부러진 제비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히 생각합니다물론 이 소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하려는 작품이 아닙니다그러나 이 소설은 흥부가 축복 받게 함으로써재물만을 욕심내지 않고미미한 생명이라도 소중히 생각하고아끼며 돌보는 데에 하늘의 축복이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영을 따라 사는 생명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자기 스스로를 내어주고쏟아서 주변에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 혹은 우리의 욕심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그래서요한복음서는 사람은 위로부터 새로 나야 한다.”(3,3)고 말합니다영의 삶은 우리 생명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입니다하느님과의 교감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예수님은 그 교감을 가장 강도 높게 또한 확실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성찬에서 빵을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적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그 빵은 본시 육을 위한 음식이지만성변화 후에는 예수님의 삶을 우리 안에 재생(再生)시켜서 영의 삶을 살게 합니다.  자기 자신만 보는 삶이 아니라하느님을 생각하는 삶이 발생하게 합니다성찬은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하는 성사(聖事)입니다초기 신앙공동체들은 기도성서독서 및 성찬은 하느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한다고 믿었습니다신앙인은 성찬에서 삶의 힘을 얻어 영()의 삶, 곧 하느님의 생명이 하는 일을 하며 삽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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