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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영적 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28 조회수1,894 추천수1 반대(0) 신고

 

 

영적 쉼.

+찬미예수님

여러분들 성경 읽을 때

성경말씀을 잘 이해하고 싶은데

잘 안되죠?

성경을 잘 이해하는 방법을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성경은 복음사가들이

그 당시 보았던 것과 기억한 것을

적은 것이기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성서가 적혀졌던 2천 년 전으로

돌아가셔야합니다.

오늘 복음엔 제자들이

예수님에 와서 자기들이

한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제자를 맞는

예수님 입장이 될 수도,

예수님 앞에 나가는 제자들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과 제자들의

행동이 어떠했는가는

거기 나오는 말씀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의 보고를 듣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고했다, 삼겹살 구워먹자

하신 것이 아니라,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어라.’입니다.

제자들이 많은 사람을 고쳐주고

많은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를

설명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죠.

주님, 오늘 400명 정도가 모였어요.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느님나라를 설명했죠,

그리고 큰형님은 사람들에게

손을 대니 주님말씀대로 손을 대는

사람마다 치유가 되었어요.”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무엇을

눈치 챈 것이에요?

이 아이들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구나!’

하느님 일은 많이 했는데,

얼굴을 보니 진이 다 빠진 얼굴,

지친 얼굴이었죠.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지친 영혼과 몸을 보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라하십니다.

공동번역에는 함께

좀 쉬자고 나왔는데,

새 성경에는 따로 가서

쉬라고 나옵니다.

왜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했을까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출발입니다.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죠?

이야기 그 시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병 고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군중이

되어야할 때도 있고,

병 고침을 받는 그 당사자가

되어야할 때도 있고,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그 이야기 속에 빠지지 않으면

그 성서가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저는 적어도 강론 준비하는

그 순간에는 2천 년 전

예수님 앞에 서 있으려고도,

예수님이 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어쨌든 오늘 예수님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보고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쉬어라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정확한 것을

파악하신 겁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쉬어야합니다.

쇠로된 기계도 오래 쓰면

망가집니다.

짐승들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산도 사람들이 너무 찾아가면

몸살을 앓아서,

안식년을 법으로 정해놓았습니다.

또 직업마다 다르지만

안식년이라는 것이 있어요.

신부님은 10년에 한번씩

1년을 쉴 수 있는데,

저는 35년간

한 번도 못 쉬었어요.

35년간 피정지도를 해왔기에

목도 안식년이 필요해요.

20여 년 전 편두통이 심한데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도 않고

원인을 몰랐지요.

그런데 내가 어느 날

피정을 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나 봐요.

그 테이프를 전주의

어느 치과의사가 들었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그 부분 전문이야.

어느 날 간단한 진료도구를

가지고 와서, 원인을 알겠으니

잠시 시간을 내 달래요.

진료하더니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조인트가 있는데

그것이 닳아 두 턱이 붙어

그 안의 신경이 눌러 산소공급이

안되어 두통이 생긴 거래요.

권투선수들은 많이 맞아

조인트가 나갈 수 있고,

또 오징어를 너무 많이 먹어도

그럴 수 있대요.

그런데 말 많이 해서

조인트가 나간 사람은

처음 봤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치료도 치료지만

목 안식년을 가져야한다고 하면서

스프린트를 끼어주고 갔어요.

그 분 덕에 이제는 턱이 나았어요.

그 당시 만해도 그것이 치과 쪽인지

신경외과 쪽인지 구분을 못했거든요.

그 분은 외국에서 공부를

해온 분이라 바로 알아 챈 거죠.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창조주 하느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쉬게 했어요.

일할 수 있는 낮을 주고

쉴 수 있는 밤을 주었어요.

오늘 예수님이 쉬라고 하셨을 때는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육신의 쉼과 영적이 쉼입니다.

일상적으로 육신이

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로부터 물러나서 거리를 두고

몸을 쉬게 하는 휴식입니다.

이때는 절대적으로 잠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때로는 음악도 가벼운

운동도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지친 육신에 힘을 주는

쉼이 바로 육신의 힘입니다.

예수님이 가서 쉬어라 할 때는

분명히 이 첫 번째 뜻도

들어가 있는 거예요.

사람 만나다보면 밥 때를 놓쳐요.

가서 밥도 좀 먹고

잠도 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피로가 그렇게 해서

풀렸다하더라도 마음의 피로와는

별 관계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쉬는 것인

백수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한다고 마음이 편안한가?

아니죠.

그래서 두 번째 쉼이 영혼의 쉼,

영적인 쉼, resting in God

이라고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쉼,

하느님 안에서 휴식,

spiritual resting in God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기를 뺐깁니다.

그리고 파김치가 되십니다.

그 뒤에서 도우미 했던

제자들은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지쳐서 해만 떨어지면 쿨쿨 잘 때,

주님은 육신의 쉼보다도

더 중요한 영적인 쉼,

영적인 힘을 얻기 위해

어디로 가십니까?

제자들 자는 것을 보다가

제일 높은 산,

성부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높은 산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밤새워

성부께 기도하십니다.

사랑은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내가 적셔져야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엄청난 기운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를 적시고,

그 적신물이 흘러넘쳐서

이웃에게 갈 때

우리는 지치지 않습니다.

알량한 동정심,

봉사하려는 의지 등은

다른 것으로부터 물줄기가

차단이 되면 쉽게 지칩니다.

꽃동네에 처음 봉사자들이 오면

장갑 안 끼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똥 손으로

그냥 만집니다.

사랑이 가득 차있어

냄새가 안 납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고 나면

피곤하다고 기도안하죠,

미사참석안하죠,

오늘 세 시간 똥오줌 치웠으니

세 시간 기도한 거와 똑같아.’

그런 마음으로 가기 시작하면

논바닥 갈라지듯 영혼에

먼지만 풀풀 납니다.

그럴 때는 장갑 몇 개를

끼어도 냄새가 납니다.

불과 얼마 전 맨손으로

똥을 만져도 이분이 예수님이야,’

했던 마음이 없어집니다.

사람들에게 기를 다 뺏겨

영과 육이 피곤할 때,

제자들은 잠을 청하며

육의 쉼을 취했지만,

예수님은 육의 쉼을 취해도

영의 쉼을 취하지 못하면,

즉 성부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면 이내 지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올라가신 겁니다.

여러분들 밤새 고스톱하면

며칠 동안 온몸이 피곤합니다.

하지만, 철야기도가서

찬미하고 기도하며

밤을 새워도 눈이 초롱초롱합니다.

기운이 넘칩니다.

같은 밤을 새워도 이렇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비적인

휴식이 아니라 창조적인 쉼을

예수님은 찾으셨던 것입니다.

소비적인 휴식은 spontaneous rest,

창조적인 쉼은 creative rest

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분명히 때가 있습니다.

나서야할 때가 있으면

물러서야 할 때가 있고,

나타내야할 때가 있으면

숨어야할 때가 있고,

말해야할 때가 있으면

침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능동의 때가 있으면

수동의 때가 있습니다.

능동을 Action,

수동을 Passion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Passion이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도 능동의 때가 있고

수동의 때가 있을 겁니다.

영혼의 휴식을 우리는

수동의 휴식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사람들 치유하고,

구마 시키고 하느님나라 설명하며

능동의 때를 기쁘게 사시다가,

밤에는 수동의 때로

들어가시어 오로지 성부 앞에

기도의 닻을 내리십니다.

넓게는 3년 동안

능동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유다 배반으로

잡히시는 그 순간부터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수동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겟세마니에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의 18시간동안

주님이 하실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끌려 다니고,

매를 때려도 맞을 수밖에 없었고

십자가를 지라해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수동의 시간이 된 겁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passion

18시간이 능동의 3년보다도

성부께 더 가까이 가셨던

시간이셨을 겁니다.

우리는 영적인 쉼을

포기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단순히 실컷 먹고

음악 듣고 운동하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거리적으로 물러서서 쉬는 것

까지는 육신의 쉼입니다.

그다음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사람을 포기하고

일을 포기하는 은총을 통하여

나를 하느님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영적이 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피정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영적인 쉼을 하게합니다.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분별하면서,

사람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을

하느님으로 가득 채우는

시간이 바로 피정입니다.

또 무엇보다도 미사만큼

영적인 쉼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못해,

혹은 성사 보는 것이 지겨워서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로부터 힘을 받은 예수님처럼,

세상으로부터 찌들어

살다가 적어도 미사시간에는

말씀과 성체를 통하여

우리는 힘을 받을 겁니다.

돌아나갈 때는

성당 들어올 때의 얼굴과는

달라야할 겁니다.

그래 해보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고통아, 내가 너에게 안 진다.

십자가야, 내가 너 반드시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 부활을 볼 것이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사셨으니,

오늘 미사 때 내 몸과 피가 되고

말씀으로 나를 키워주셨으니

절대 나는 어둠에지지 않을 것이다.”

성지순례도 영혼의 쉼의 한 방법입니다.

성체조배도 영혼의 쉼입니다.

집에서 시간 날 때 아무 의미 없이

TV앞에서 영혼없는 웃음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펴서 읽고 쓰면서,

때로는 성인전등 영적독서를

하는 것도 큰 영적인 쉼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라 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12명 제자들도

이미 모두 스타들이었습니다.

보기 어려운 예수님대신

그 제자들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

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녔습니다.

사람한테 뺏기는 기가 참 강해요.

그래서 그 기를 보충하려면

기도해야합니다.

저도 하루 종일 피정 시키고 나면,

할 때는 힘든 것 모르는데,

차타는 순간 파김치죠.

물론 잠도 자야하지만

적어도 며칠 동안은 하느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해야합니다.

주님, 저의 작은 힘으로 주님께서

큰일을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며칠 전에 강의를 들은 신자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이 사제 교만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성령이 제 입을 가지고

하느님이 역사를 하셨으니,

다시금 성령께서

이 사제에게 힘을 주십시오.

내일 모레 또 다른

말씀잔치가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피곤한 얼굴

보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머리에 기름 바르고 정말 밝은 얼굴로

그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하루에도 능동의 때가 있고

수동의 때가 있습니다.

한 인생에도 능동의 때가 있고

수동의 때가 있습니다.

한평생을 일하는 시간을

능동의 때라한다면

은퇴 후는 수동의 때입니다.

그러나 이 수동의 때는

시들어가는 나뭇잎을 보는

절망의 때가 아닙니다.

아까 말해드렸듯이 예수님은

3년 동안의 그 능동적인

공생활보다도 18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수동의 시간에

성부를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만났던 것처럼,

은퇴한 후가 황금시절입니다.

나름대로 무엇인가 멋있는

계획을 세워서 시도하십시오.

바빠서 하지 못했던 것

시도하십시오.

저는 지금도 은퇴할 때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 저는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은퇴 후에 더 바쁠 겁니다.

공인이기에 하지 못했던

주님이 주신 그 많은 탤런트들을

사용한다는 것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주님 앞에 앉아있어도

누가 부르거나, 다음 스케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봉쇄수도원에서 일이년

침묵하면서 하느님과

더 가깝게 하며 능동의 시간을

어떻게 살았나보고,

주님께 가는 기쁨의 시간을

만드려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있고 봉사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나 봉사했으니

기도 생략, 이것은 지옥 가는

KTX 타는 겁니다.

오늘 봉사했으니

기도한 것과 똑같다.’

라는 악의 소리에 빠져

기도를 놓치기 시작합니다.

5시간 봉사를 해서

파김치가 되었어도

기도는 해야 합니다.

꾸벅꾸벅 존다 해도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했던 그 봉사가

겸손으로 포장됩니다.

오늘 이 미사도 능동의 시간이 있고

수동의 시간이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나는 온전히 그 분이 되어,

그분의 눈이 되고,

그분의 귀가 되고

그 분의 마음이 될 겁니다.

예수성심으로 바뀌는

수동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능동의 때와 수동의 때는

우리 인간에게는 중요합니다.

단순히 소비적인

휴식이 아니라 창조적인 쉼을

살도록 노력합시다.아멘.

2018년 연중 제16주일 (7/22)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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