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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짝 (로마 7.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4 조회수2,039 추천수1 반대(0) 신고

(로마 7.1-7)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법률에 정통한 사람들이니 말씀드리는데, 법률이란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2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자기 남편에게 법적으로 매여 있읍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남편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3 따라서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사는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그 법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간음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죽음으로써 율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른 분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하느님께 유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5 전에 우리가 육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율법 때문에 우리의 온 몸에 죄스러운 욕정이 발동하여 죽음을 가져 왔습니다.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7 그러면 율법이 곧 죄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던들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

 

이 로마서 7장의 앞부분, 아니 로마서 7장 전체는 로마서를 이해하는 분수령 같은 그런 부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6장까지 일관성 있게 인간들이 자기들의 의로 내어 놓는 율법과 하느님이 준비하신 하느님의 를 집요하게 대조하여 가르칩니다. 우리의 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것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이 느니데그러나 이제는, 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가 6장까지의 논제예요. ‘느니데’. ‘그러나 이제는하느님이 의를 준비하실 수밖에 없었다. 로마서 321절 보세요.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법으로 받아서 지켜야 하는 계명의 수준에서 잘 지키면 그걸 죄라 그랬어요. 바오로가 지금까지. 아담의 생래적 두 마음, 그 에피뚜미아의 두 마음, 그 선과악의 두 마음으로 율법을 판단하여 자기들의 마음으로 판단하여 인간들이 선한 것이라고 합의한 그 한쪽 것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을 죄라 그랬잖아요. 그 진의를 모르고 그 껍데기를 보고 그걸 열심히 행하는 거를 죄라 그랬잖아요?

똑같아요. 그것이 죄라는 말을 듣고 에이, 그러면 안 하면 되겠네. 하고 안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도 죄란 말에요. 그러면 이건 아무 가치도 없는 거야? 이리로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도 죄라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하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하여튼 어떻게 하든 그 선악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잖아요? 이거 하라는 거였어? 그래서 했는데 아니래, 그럼 이거 하라는 거야? 역시 선악판단의 주체가 인간이라니까요. 고걸 죄라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표피적이며 문자적인 성경 해석으로... 그리고 그 해석에서 나온 행함으로 자기는 하느님 앞에 열심히 내어 놓았는데 그걸 죄라 그런단 말에요. 성경이. 그래서 아, 그게 상 받을 근거가 되는 것들이 아니라 배설물이었구나! 하고 알아먹었단 말에요. 사도 바오로가. 그 배설물이라는 단어 자체가 똥이라는 단어에요. 극단적인 단어를 쓴다니까요. 똥이야 그건. 그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게 왜 나쁘냐는 거예요. 내가 그걸 알아먹었다는 거예요. 하느님의 의도가 그거였는데 내가 그 의도에 맞게 그게 뭔지를 알았는데 그게 죄냐?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니, 사실 그게 없었으면 바오로가 하느님의 의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바오로가 행한 그게 아닌 거, 그 율법의 행함이 아닌 거가 뭐예요? 은혜잖아요. 그게 십자가잖아요.

죄는 나쁜 거예요. 그러나 그게 하느님에게 들려서 우리의 선을 이루는데 쓰이면 그건 나쁜 거 아니라는 거예요. 그 자리에 머물면 이걸로 사망이에요. 이걸로 멸망이라니까요. 그러면서 하느님이 그러한 순서와 차서와 과정을 거쳐서 의를 설명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남편과 아내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게 로마서 7장 앞부분이란 말에요.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본문. 다시 한 번 본문을 잘 보시면 1절에서 바오로가 로마 교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죠? 1절 앞부분을 직역하면 이렇게 돼요. 율법을 안다고 하는 자들, 율법을 안다고 하는 그 무지한 형제들아. 이에요.

 

데오필로’, 데오가 하느님, ‘필로스’, 친구! 하느님의 친구. 데오필로 각하에게, 라고 시작되는 루가복음, 사도행전. 이건 같은 책이에요. 그런데 둘로 나누어 놓은 거예요. 한 책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앞에서는 하느님이 하신 일 예수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설명하고 뒤에서는 그 성령을 받아, 오순절 날 받아 그 분이 한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또 다른 나, 세 번째 성전인 나를 설명하는 거예요. 아주 가감 없이 다 밝힐게, 그래서 데오필로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친구란 말에요.

사도 바오로가 여기에서 형제라고 불러요. 그것도 이 무식한 형제들아, 라고....율법을 아는 무식한 형제들아, 하고 이야기 한단 말에요. 그러면 그건 뭐예요? 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 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 그 하느님의 죽음이라는 걸 제가 지난 시간에도 설명해드렸지만 너무 신파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 하느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 땅에서 그냥 죽어 주셨단말야?

신의 죽음이라는 건 이런 거예요. 그 존재는 피조물에게 계시될 수 없는 존재에요. 그래서 신이에요. ! 피조물에게 포착이 되는 건 신이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그 신이 피조물에게 당신을 낱낱이 공개하기로 작정하세요. 어떻게 공개하세요? 말씀으로 공개하세요. 이걸 revelations 계시라고 그래요. 하늘이 도저히 그 하늘을 담을 수 없는 땅에게 하늘을 계시하는 거예요. 알려 줄게! 물론 피조물이 말씀으로 온 그 하늘을 하나도 못 알아먹어요. 피조물의 한계에요. 그것이.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 당신의 영, 즉 진리의 말씀을 넣어서... 하늘과 하느님을 그들의 심비에 새겨 버리세요. 물론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내 안에 들어있는 그게 그 하느님은 아니란 말에요. 그걸 어떻게 담아요, 우리가?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자기를 계시하는 거라니까. 그걸 하느님이 우리를 섬긴다. 그래요. 말씀을 흘리는 게 섬김이니까. 하느님은 그들의 그 우상이 되셔서, 율법이 되셔서 죽으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 율법,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 신, 가짜 신, 그 율법이 되어서 죽을게. 내가 죽을게. 계시해 줄게. 그렇게라도 하면 너희들이 신의 죽음으로만 탄생이 될 수 있는 그 벗으로서의 아들, 이게 성도의 실체죠? 그 벗으로써의 아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율법과 예언자는 나에 대해서 기록한 거야.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 호 코스모스, 성전으로... 그리스도라는 그 진리를 알아먹었어요. , 희생제사는 이런 거고, 법궤는 그런 거고, , 물두멍은 그런 거였어? 그리고 휘장은 그런 거고 이게 둘로 찢어진 건 그런 거고? ! 이렇게 그 진리, 그리스도를 그 옛 성전으로 알아먹었으면 그게 메시아라니까요. 그런데 못 알아먹게 되어 있단 말에요. 그러면? 그 구약, 율법과 예언자들도 못 알아먹은 그게 나를 설명한 거다, 이 예수를 설명한 거다, 라고 하면 알아먹어야 돼요? 못 알아먹어야 돼요? 못 알아먹어야 돼요. 십자가 이전에는.

 

인간들은 못 알아먹어야, 그래야 거기서 한계가 폭로되고 예수가 죽어, 그러니까 신이 내려와 계시를 해야 너희와 하나가 될 수 있잖아, 라고 죽어야, 그 계시가 그리스도로 내 안에 들어와 진리가 될 거 아니에요? 순전한 하느님의 열심만으로. 그런데 그걸 여기에다 걸어 놓아야 돼요? 그걸 목에다가 걸고 다녀야 돼요? 그거 조금 힘줬다가 잘 못되면 나찌, 아니면 불교의 만자 됩니다. 조심해서 걸로 다니세요. 그게 원래 태양신을 섬기던 자들의 표식이라 그랬잖아요.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드라큐라 나타났을 때 이렇게 해보세요, 손가락을 확 꺾어버릴걸? 그게 뭔지 걔는 알아요. 귀신들이 알잖아요. 왜 벌써 왔느냐고. 차라리 이렇게 하던가. 기둥이니까. 스타오로스. 언약. 그럼 좀 똑똑한 놈은 알아먹을 거 아네요? 아니, 저놈이 언약을 아네? 히스테미!

 

, 바오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이렇게 말을 이어요. 율법은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 여기에서의 사람은 모든 보편적 아담들 중에 구원받을 성도를 일컬음과 동시에 그렇게 율법 아래로 오신 첫 남편 예수를 지칭하기도 해요. 그 첫 남편 예수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율법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율법이 그를 주관하게 놔뒀어요. 하느님이.

그래서 율법은, 피조물은 반드시 신을 살해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한 아담들의 살해는 필연적인 거예요. 하느님 살해는. 인간들의 그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깨닫는 건 불가능이니까. 다 우리의 수준으로 그 신을 만들어서 섬기니까. 그래서 고작 소(), 소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께서 감해하신 것이.... 당신의 자발적 죽음인 거예요.

 

너희들은 이렇게 나를 못 알아먹고 나를 살해할 수밖에 없잖아. 이게 필연적인 너희들의 수준이야. 그러면 내가 나를 너희들에게 계시할 수 있는 방법은 신의 자발적 죽음. 자기를 계시하시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게 십자가라니까요. 십자가는 그래서 율법인 호 코스모스의 세상이 하느님을 때려죽인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이 자발적으로 자기를 계시하시는, 죽음으로 몰아내시는 것이기도 한 거예요. 그게 십자가란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십자가가. 그런데 그걸 섬기라고 준 거냐고요.

 

이제 그리스도에게 갈 수 있는 자가 된 거예요. ? 그분의 희생으로. 그분의 죽음으로. 그분의 자기 계시로. 인간들에게 오해된 그 우상으로서의 하느님은 거기서 죽어버리는 거예요. 세상의 그 첫 째, 그걸 뭐라 그랬어요? 세상 임금이라고 번역했죠? 그 세상 임금, 그 세상의, 호 코스모스의, 그 율법을 다 품어 안고, 율법의 대표가 되어 세상의 첫 째, 세상 임금이 되어 죽는 거예요. 우리가 그걸 알았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세상 임금이 있어요? 없어요? 율법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자유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복음이라 그래요. 성경이.

가끔 나타나는 뿔 달린 그런 거? 삼년 전에 죽으신 작은 엄마 이런 거? 헛 거. 그 예수가 세상 임금으로 죽지 않았으니까, 율법으로 죽지 않았으니까 그 자들에게는 그 세상 임금이 죽은 거 같았으나 살아난 존재로 여전히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헛것들이. 죽었다니까요. 그게 여러분 마음에 확실하면 그게 왜 나타나느냐고요. 나타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거는 밥 몇 끼 잘 먹으면 돼요.

그 사망, 세상 임금의 사망 안에서 내가 함께 죽는 거예요. 그런데 주인이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나를 막 때리면서 부려먹을 용도가 있잖아요. 그런데 죽은 자를 어디를 때리며 어디에다 써 먹느냐고요. 이제 관계없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는 거예요. 관계가 없으니까.

, 그렇게 그 내용이 무엇이지를 잘 이해하고 깨달아서 진리로 알게 되면 그게 바로 아니스테미’, 부활. ‘아나부스타스’. 이게 아니스테미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부활이에요 이게. ‘아나’, 위의 것으로 똑바로 서다. 그러니까 첫 번째 부활, 진리로 그것이 되지 않은 사람은 두 번째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되는 거예요. 꿈꾸지 말라는 거예요. 너희들 상식으로 그려내지 말라는 거. 사도 바오로가 경계한 겁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 (?) 초보야. 뭘 그리고 있니? 그 예수가 날 위해 죽었대! 가 아니고. 그게 예수 믿는 거죠? 그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야 되는 거라니까 아, 그분이 그렇게 진리를 설명하시고 내 안에 들어와서, 그러니까 너희는 아니고 하느님이 전부야! 를 설명해 준 거. 이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지 예수 믿으라고 안 그래요. 항상, 는 그리스도시오, 라고 설명해주잖아요.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라 그러지 예수 믿어라, 안 그런다니까요. 그러니까 함부로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런 거 써 갖고 다니면 오히려 여러분이 큰일을 내는 거예요. 그거요. 다 설명해 줄 수 없으면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영을 담은 그릇이... 예수였잖아요? 그래서 내가 말씀이야, 내가 하느님이야 라고 얘기 했잖아요. 그 예수가 육을 삭제 당하고 진리로 살아나신 그 십자가와 부활에 의해서 우리 안으로 진리의 영, 그 푸뉴마가 들어왔단 말에요. 내 안에 진리가 담겨 있잖아요. 그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이미 우리는 인정했고, 하느님도 선언하셨고. 내 안에 성령이 들어오신 게... 이미 난 죽은 거니까. 그러니까 질그릇 안에 보배를 담은 나, ‘호 소마 호 크리스토스’. ‘그렇게 되면 이게 뭘 하던 안 하던 하느님이 무슨 상관이겠어? 하고 율법에 대해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오늘 본문에서 호소마 호크리스토스가 너희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는 유일한 방법이야, 라고 제시해 주는 거예요. 이걸 왜 굳이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라고 설명을 해야 되냐고요. 여전히 성화론에 묶여 있기 때문이에요

 

율법과 은혜를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 그러면 인간들은 반드시 율법을 택해요. 100%. 은혜는 당연하고 마땅한 거라고 여겨서 가치 없다고 해요. 그래서 버립니다. 사실은 그 은혜가 당연하고 마땅한, 가치 없어 보이지만 당연하고 마땅한 진리고 율법이 인간들의 탐심이 만들어 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마땅하고 당연한 건 가치 없다, 라고 하는 속성이 있어요. ? 거기에는 내 가치를 입증할 어떤 틈이 없거든요. 그냥 되어지는 거야. 이거는. 거기에는 내가 드러날 수 있는 그런 틈이 없어요.

 

여러분 하늘에 비행기 타고 올라가면 한 동, 한 구 하나를 엄지손가락 안에 다 넣을 수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죠? 그거? 이 안에 다 들어가요. 63빌딩도 들어가고 여의도 방속국도 들어가고 내려오면 그렇게 커 보이네요. 그게. 저 빌딩 주인은 누굴까? 복도 많네. 그러니까 자꾸 진리 안에서 위에서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요. 그 때 진짜 내 가치가 뭔지를 알게 되고 부러운 게 점점 줄어들게 되는 거예요. 뭘 부러워요? 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네, 그래서 진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 이야기 할 때만 너무 좋아 헤어지면 또 멍하니,,다 온 세상이 딴 얘기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까.

 

인간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건강하고 건전한 몸으로 문화를 구축해서 너도 나도 그런 행복한 사회, 국가를 만들어 놓는다고 할지라도 생명 없으면 헛것 입니다. 호 코스모스가 불 탈 때, 모형이 불 탈 때 다 불타는 거예요. 그 당연하고 마땅한 거, 그거 없으면 다 헛 거라니까. 죽은 시체한테 생명이 없는데 그게 뭐냐고요?

 

아무리 좋은 옷 입혀 놔 봐요. 투탄 카메론 왕처럼 그 죽은 시체 미라에다가 아무리 무거운 금관 씌워 놓아 봐야 그게 무슨 가치가 있냐고요. 마찬 가지에요. 정작 우리를 살리는 마땅하고 당연한 은혜의 진리는 무가치 하게 여려 버리고 인간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는 율법의 행위를 움켜쥐는 거 아담들의 자연스런 성향이에요. 본성이라니까요. 그게. 그런데 인간들은 그걸 통하여 자기들이 행복, 구원, 내 가치 향상 이게 인간들이 추구하는 구원이잖아요? 거기에 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양식 삼아 살아요.

 

  

진리를 잘 알면요 세상에서 세상 적으로 이용해 먹으면 돈도 벌수 있어요. 그렇게 안 하는 것뿐이지.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거에. 뭘 굳이 그렇게까지 해. 뭐 그거를. 그렇게 되는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그거는. 우리가 그렇게 아들이 되는 거라니까요. 그 하느님의 죽음.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 진리를 담은 몸이 된 이들이.... 다른 남편을 맞는 사람이에요. 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칼, 진리의 남편을 다시 받아 네케바, 그릇이 되어 하나가 되면 사람이 되는 거예요. 사람. 거기에는 신의 죽음. 자기계시가 전제 된 거고. 이게 복음이에요. 뭐가 어려워요 이게요.

 

내 밖의 예수와 나는 연합이 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역사 속에 세워둔 십자가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니까요.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걸 깨달아 아시란 말입니다. 제가 그 얘기를 해드리는 거예요. 계속해서. ,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된다. 그래요? 새로운 남편에게 가서 뭘 하라 그래요?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게 성경에 나오는 열매의 이야기예요.

열매는 어떻게 맺힙니까? 여러분.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면 거기에 뭐가 생겨요? 씨방이 생기죠? 그게 열매가 되는 거예요. 씨를 담은 열매요. 그러니까 열매가 많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꽃이 떨어지는 사건이 있어야 되는 거고 자 그 떨어진 꽃이 씨가 되어, 씨로 와서 제라, 약속의 후손이 되어 그 씨가 담긴 열매들이 나오는 거예요.

베전 1:21 여러분은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져서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심으로 열렬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새로 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 곧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났습니다. 24 "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다."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게 씨로 심는다는 거예요. 주의 말씀이. , , 씨 이렇게 연결한단 말에요. 그 씨 가졌느냐는 거예요..... 그 씨 가지면 씨를 가진 존재를 뭐라 그래요? 아들, 남자. 씨가 있는 거. 씨가 없는 거는? 여자. 그렇게 아들이 되는 거란 말에요. 여러분. 아니 성경은 한 얘기 밖에 안 한다니까요. 한 가지 얘기 밖에. 그리고 이렇게 남자, 여자, 부부를 통하여 그거 설명해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 그래요? 이게 복음이야. 그러는 거예요. 이게 복음이야.

그 풀이라는 단어가요.. 사실은 풀이라는 뜻도 있지만 안 뜰. 그리고 씨가 없음이란 뜻이에요. 안 뜰에서 뭐해요? 성전 안 뜰에서? 번제 단 있잖아요. 희생제사 드리죠? 정결예식, 물두멍. 손 닦는 거. 자기들의 힘으로. 희생제사 드리고..... 율법이죠? 안 뜰. 씨 없음. 이게 풀이라니까요. , 율법, 행위. 풀은 어떻게 돼요?..... 말라요. 죽어요. 이건 죽는 거예요. 놔두면 죽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꽃을 심으면 돼요. 어디에다가? 그 풀에다가 꽃을 붙여버려. 어떤 능력자가. 어차피 씨가 없기 때문에. 씨를 심으려면 꽃을 먼저 심어야 된다니까요. 붙여야 된다니까요. 그 씨로. 그 꽃으로 온 분이 누구예요? 씨가 없는 곳에. 꽃으로 온 게? 예수. 샤론이 광야. 물 없는 곳 이란 뜻이니까.

물 없는 곳에 꽃이 붙어버렸네! 그러더니 십자가에서 떨어져버렸어. 그러더니 진리희 항상 있는 말씀. 그리스도, 진리의 영으로 씨가 되어 심겨져요. 그 씨를 담은 이들이 열매가 되고 그들이 또 그 씨를 심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해요. 그걸 복음이야. 이렇게 얘기한다니까요. 복음이야. 이건 이사야서 406절에서 8절 말씀을 그대로 갖다가 쓴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도 똑같은 얘기 하는 거죠?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설명 안 해줬으면 그 얘기가 뭔지 모른단 말에요. 그 풀에 불과한 우리 ......거기에 예수라는 샤론의 꽃이 붙어서..... 그가 자기를 계시하고 떨어지므로. 하느님을 계시하고 말씀으로 계시하고..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 씨가 심긴 거예요. 그 씨가 있는가를 묻는 거예요.

 

예수 믿는가? 안 믿는가? 이거는 여러분도 모르고 저도 몰라요. 뭐 어떻게 믿는 게 믿는 거예요? 그리고 난 믿어요, 라고 하면 그걸 어떻게 내가 믿어줘야 되느냐고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난 예수 믿어요. 뭘 어떻게 믿는데요? 이 내용을 그 진리를 갖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라는 꽃은 반드시 떨어져야 돼요. 그 씨가 내 속에 심겨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첫 남편의 죽음과 새 남편의 도래를 예수님께서도 이런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914절 보세요.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15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혼인집에 아들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금식해야 되냐? 먹어야지 그 때는, 이런 말이거든요. 이 이야기가 세리 마태, 레위를 부르시고 예수님이 그 안에서 레위와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 많은 바리새인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그리고 왜 죄인들과 밥 먹어? 그랬단 말에요. 당시에는 죄인들과 겸상을 하는 게 부정한 거였어요.

겸상도 아니에요. 상은 성전에서 떡 놓았던 그 상에서 우리 밥상이 나온 겁니다. 우리 인류가 상을 쓴 게 얼마 안 돼요. 다 바닥에 놓고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밥 먹는 게 부정한 거예요. 누워서 먹었죠. 이렇게 반쯤 누워서. 그렇게 밥을 먹는 게 부정한 건데, 세리들과 밥을 먹고 있네.

그 중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있었어요. 세례자 요한이 왜 등장 하느냐 하면 율법과 예언자들의 때는 세례 요한의 때 까지다, 를 상징하는 거예요. , 율법이 물어옵니다. 우리는 금식하는데 당신과 당신 제자들은 왜 금식 안 합니까? 금식은 뭐죠? 율법이며 원로들의 전통이에요. 율법에는 속죄일 날 한 번, 대 속죄일에 한 번 금식하라 그랬는데 원로들의 전통으로 일주일에 두 번 해버렸어요. 그리고 그 돈으로 구제했다니까요. 그래놓고 잘 했죠? 이랬단 말에요. 그 얘기 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금식 하는데 당신들은 왜 금식 안 하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죠. 신랑이 와 있다. 아들들에게 신랑이 와 있다. 이 신랑을 만나면 그들이 진짜 아들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신부가 신랑을 네케바가 자칼을, 그리스도를 맞으면 그들이 아들이 되는 게 구원의 서정이란 말에요. 굳이 따지자면. , 혼인집 아들들이 신랑이 와 있으면 신랑이 주는 걸 먹어야지....

내가 지금, 구약의 그 율법이 너희들이 지금 나 안 먹어요. 라고 금식하면서 그걸 너희들의 영의 양식이라고 착각하고 그걸 먹고 있잖아. 그죠? 그거 아녜요? , 이렇게 금식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해준대! 가 율법주의죠? 러면 그들이 그 금식을 뭐하고 있는 거예요? 영양식으로 먹고 있는 거예요. 율법을. 그러면서 우리는 금식한다,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그러는 거죠? 내가 그게 뭔지 얘기 해 주러 왔잖아. 내가 안에 그리스도, 진리를 담고 있잖아. 그래서 신랑이 왔어. 첫 번째 남편이 왔다. 그래서 얘기 해주는데 너희들이 금식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아니, 금식을 먹고 있으면 어떻게? 내가 주는 걸 먹어야지. 그런데 안 먹어요. 아니, 못 먹습니다. 예수의 말은 못 알아들어야 맞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한 가지 방법을 내놓은 게 뭐예요? 너희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와. 그래야 먹을 수 있어. 그러는 거예요. 그 신랑을 빼앗기면 뭐가 와요? 그리스도가 오죠. 씨가 와. 진리가 와요. 그러면 아, 이게 그렇게 금식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이제 더 이상 이거 안 먹겠죠? 율법을 안 먹고 행위를 안 먹고...., 이게 나의 영의 양식이 아니라는 걸 알면..... 그게 금식이야. 그러는 거예요. 네가 신랑을 빼앗기면 그 씨가 올 거니까..... 그 때는 네가 금식할 거야. 지금은 금식 많이 먹어라. 제 말이 아니에요.

 

이사야서 586-7절 보세요. 6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숨지 아니한다는 게........ 말을, 내가 가진 것을 감추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다 전해주어 가난한 자를 먹이고.... 못 입은 자를 입히고 뭐로? 진리의 겉옷으로. 하늘의 양식으로 그리고 그들을 구제해 내는 게, 이게 금식 아니겠니? 그 말은 그리스도라는 진리, 그 씨가 너희들한테 담기면...... 너희들에게서 당연히 발생 되는, 격발되는 사랑 아냐? 그게. 그게 금식이야. 율법 안 먹는 거. 세상 거 안 먹는 거. 이거예요. 주님이 이렇게 설명 안 해주셨으면 이 금식도 뭔지 모르는 거죠. 그죠? 너희들이 이사야가 이야기 한 그 금식 하게 될 거야. 어떻게 되면? 예수라는 꽃이 떨어지면. 그러니까 그 꽃은 떨어져야 된다니까요. 죽어야 돼요.

로마서 929-33절 보세요. 29 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 전능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시지 않았던들 우리는 소돔처럼 되었을 것이요 고모라와 같이 되었으리라." 30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읍니까?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이 오히려 그 올바른 관계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법을 추구하였지만 끝내 그 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게 의야, 라고 쫓아간 이스라엘은 그 법이 이야기하는 그 바, 그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 그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32 왜 그렇게 되었읍니까?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얻으려 하지 않고 공로를 쌓음으로써 얻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3 성서에, " 자 이제 내가 걸림돌 하나를 시온에 놓으리니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바윗돌이라.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그 돌은 한 돌입니다. 그런데 그 돌로 말미암아, 그 계명에 적힌 그 돌로 말미암아, 계명,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게 그거예요. 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먹으면 그게 진리의 생수를 뿜어내는 반석이 되지만 그냥 율법으로 붙들어버리면 거치는 돌이 된다는 거예요. 그게 네 위에 떨어져 가루로 안 남기게 부수어 버릴 거야. 그러니까 돌은 하나에요. 나무도 하나고 진리도 하나예요. 그걸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 예요. 두 마음으로 보면 죽음. 한 마음으로 보면? 그거예요? 사는 거예요.

 

하느님은 모든 것을 짝을 지어서 설명을 하세요. 그 짝은 원래 하나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에요. 나쁘고 좋아, 이렇게 우리에게 판단하라고 짝 준 거 아니에요. 하나라니까요. 그걸 하나로 보는 것이 모노게네스, 하나를 가진 자, 진리를 가진 자예요. 거기서 용서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이, 하느님이 짝 지어 놓은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라고 말씀 하신 거예요. 그거 이혼하지 말란 말이 아니에요. 무슨 뭐 하느님이 짝 지어줬어요? 자기들끼리 좋아서 짝 지었지. 그래놓고 꼭 하느님이 짝 지어줬대. 아니에요. 자기가 좋은 사람하고 짝 짓게 되어있어요. 하느님이 이렇게 짝 지어서 뭔가를 이렇게 설명하려고 한 걸

자기들 맘대로 선, 악으로 구분하여 이건 하고, 이건 하면 안 되는 거라고 하면 그거 하느님이 용서 안 한다고 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짝 지어놓은 걸 네가 왜 분리 해? 왜 네가 둘로 분리 해?...... 왜 네가 선악으로 판단해버려? 그런 이야기란 말에요. 그리스도 안의 나, 이렇게 하나가 아닌 나와 예수로 존재하면 그게 죄예요.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요. 여러분이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라니까요. 주신 자유를 누리는 거란 말이에요. 이것이요.

 

아담과 하와, 자칼과 네케바, 아브라함과 이사악, 아브라함과 사라, 야곱과 요셉,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구약과 신약, 땅과 하늘, 위엣 것 아래 것, 물과 뭍, 예수와 그리스도, 육체와 땅, , 첫 남편 두 번째 남편, 거짓과 진리, 밤과 낮, 빛과 어두움, 다윗과 솔로몬, 성막 성전, 선 악,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다 짝이에요.

그 하나를 통하여 다른 하나로 완성을 해가시는 방법으로 그 둘을 통해 하나를 설명한단 말에요. 하느님이. 그것을 창세기 1장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고 말씀 하신 거예요. 언약이 담겨 있는 거죠. 저녁, ‘에레브’, 저녁이 되고 보케르’, 아침이 되라, 예요. 저녁이 되게 하고 하느님이 그걸 통하여 아침이 되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밖에 없었다니까요. 에레브가 어둠이에요. 어둠. 저녁. 그 어둠. ‘에레브가 되고 그걸 깨달아 보케르가 되게 할게. 그럼 그게 뭐야? ‘이야. 그걸 날이라고 번역했지만 그게 덮음이란 뜻이에요. 덮음. 그게 덮음의 은혜라는 거야. , . 너희들에게는 선악과부터 내가 설명해줄 수밖에 없어. 먹었어? 밤이야. 그게 뭔지 알면 그걸 빛이라 그래. 그럼 뭐야? 너희들이 잘 나서 내가 너희들을 내 벗으로 여겨주는 거 아니잖아.

그걸 덮음의 은혜라고 해. 그게 이에요. 그럼 뭐라 그래요? 그게 연합이잖아요. 그래서 첫째 날, ‘욤 에하드라고 명명하는 거예요. 그 때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어요. 이거를 일 이 삼 사 오 육으로 생각하시면 안 돼요. ‘욤 에하드’, 그게 연합의 덮음이야. 그게 맨 처음 나온 거예요. 그래서 첫째 날 이렇게 번역 해놓은 거죠. 그게 연합의 덮음이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거. 하느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고 어두움을 밤, 빛을 낮이라 했다, 그러잖아요? 그리고 그 낮을 날이라 그래요. 그리고는 그러는 거야. 저녁이 돼. 그리고 아침이 돼. 이게 욤 에하드. 연합의 덮음이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밤이 나빠요? 이 밤에서 그 빛, 낮을 알면 되는 거예요. 여기를 낮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니까요. 살수도 없지만.

 

두번 째 창조가 뭡니까? 휘장, 궁창을 가운데 두고 궁창 위에 물과 아랫물로 나누죠? 그리고는 이게 두 번 째 욤, ‘욤 쉐니그래요. 그건 짝이라는 말이에요. duo 이게 짝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아랫물은 위엣 물을 설명하는 거예요. 아랫물을 갖고 위엣 물이 돼. , 호 코스모스, 율법, 성경, 성전을 갖고 진리로 가. 그러면 그게 짝이야. 성막과 새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이 다릅니다. 성막에는 법궤가 조각 목에다가 금을 씌운 거지만... 성전에는 올리브나무에다 금을 씌워요. 올리브나무는 하느님을 상징해요. 항상. 짝이란 말에요. 이게요. 똑같지 않아요. 자 그 성전으로, 그 아랫것으로 너희들이 위엣 것 알았어? 그게 욤쉐니. 그거 짝이야. 내가 그렇게 하게 만들 거야. 그래놓고 밤이 돼. 그리고 아침이 돼. 그게 욤쉐니야. 짝의 덮음이야. 그런데 여기에 무슨 뭐 서수가 있고 기수가 있고 그런 거 없어요. 숫자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니까요, 의미로 준 거잖아요.

 

그러면 셋째 날은 뭐예요? 이게 중요해요. 세기 111-13절 보세요. 11 하느님께서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거라! 땅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풀은 뭐? 씨가 없는 거)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이리하여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났다. 낟알을 내는 온갖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났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13 이렇게 사흗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 , 너희들은 마른 풀이 되어야 돼. 아니, 마른 풀이야. 씨가 없어. 너희 안에는. 하늘의 것이 없어. 내가 그래서 꽃을 달 거야. 샤론의 꽃으로 붙여버릴 거야. 꽃이 떨어지면 너희들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될 거야. 이게 뭐예요? 진리잖아요. 그래서 그걸 세 째날 이라고 했는데 세 째 날이 아니라 욤쉐르시’, 세째 층이야. 바오로가 삼층 천에 올라갔다. 세 째 하늘에 올라갔다 와서 뭐라 그러죠? 첫 째 하늘은 보이는 성전. ‘호 우라노스’. 둘째 하늘은 내가 하느님 나라다 그러죠? 예수. 세째 하늘은? 진리.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 이제 새 성전이 되잖아요. 세 째 하늘이잖아요. 그 진리를 알았을 때 바오로가 내가 세 째 하늘에 갔다 왔어 라고 이야기해요. 그리고는 뭐라 그러죠? 사람의 말로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다. 그래요. 그래놓고 이게 참말, 이라고. 바레떼이아’, 진리야. 라고 그런다니까요. 그러면 이 세째날이 뭐예요? 이게? 이게 진리란 말에요.

 

그럼 보세요. 첫 째 날과 넷 째 날이 짝이고 둘 째 날과 다섯 째 날이 짝이죠? 셋 째 날과 여섯 째 날이 짝이죠? 그러면 요게 어떻게 완성이 되어야 돼요? 자칼이 네케바 안으로 들어가서 자칼이 그리스도가 되어 진리가 되어 씨로 들어가야죠? 그래서 씨 가진 열매가 되어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안 되면? 그냥 풀이에요. 그거 먹으면 죽어요. 열매 못 맺으면. 그러면 여섯 째 날이 뭔지 보세요.

창세기 127-30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그 둘이 하나가 되니까 사람이 됐어요.)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새는 뭐예요? 옛 성전)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씨 없는 것. 그거 먹으라고. 어떻게 되라고요? 그리고? 죽으라고. 열심히 식량 아닌 거 먹고 죽으라고.... 밤 열두시에 라면 세 개 네 개, 계란 다섯 개 넣어서 끓여 먹고 밥 한 공기 넣어서 먹으면 아침에 일어나면 불쾌하죠? 포만감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왜 그랬지? 그러잖아요. 그거 보다 더 한 거예요. 먹어, 풀 줄게, 씨 없는 거줄게. 땅의 짐승들아 그거 먹어. 그게 완성이야....... 각자의 자리에서의 완성. 그러면 일곱 째 날이 돼요. 그러니까 창세기는 11, 아니 첫 글자, 첫 문자부터 다 이 진리인 복음만 이야기해요. 씨 얘기요. 많은 열매. 너희는 그걸 먹어야 자칼, 네케바, 사람이야. 그런데 왜 내가 이야기하는데 금식해? 그거 이야기해주는데 왜 안 먹느냐고?...... 엉뚱한 얘기나 하면서. 딴 금식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69이레예요. 그리고 와서 반을 쓰고 가세요. 삼 년 반. 그럼 나머지가 삼 년 반이죠? 이게 우리의 인생이에요. 그래서 요한묵시록에 한 때 두 때, 삼년 반, 마흔 두 달, 처 이백 육십 일이 나오는 거예요. 이 역사를 그렇게 이야기 한다니까요. 그 말은 육십 구일의 반을 삼년 반에다 넣어버리겠다는 거예요. 그 일이, 우리에게서 일어난 일이, 십자가 이후에 일어난 일이....... 역사 내내 일어나는 거야. 그러는 거예요. 요한묵시록이. 뿐만 아니라, 예수에게 삼년 반 동안 일어났던 일이...... 너희에게 일어날 일이야. 그게. 삼년 반이에요. 그 삼년 반. 이 칠십 이레. 일흔의 칠. 이 기간 동안에 그 진리를 씨로 받으면,..... 그리스도로 받으면, 용서가 되는 거야. 그 이야기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는 십자가 이후인... 이 삼년 반의 때에만 구원이 있다고 착각을 해요. ? 그 십자가와 예수의 죽음이 나를 위해 발생한 거라는 이걸 지우지를 못해서 그래요. 그래서 그 이전은 어떻게 구원 받아요? 여기에 이게 해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예수에게 감사하느라. 여전히 율법에 묶인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감사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감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여러분 걸 털어드리는 게 아니란 말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율법에 묶인 자들이 몇 번 용서해줄까요? 물어보는 거예요.

율법에는 네 번인가 용서하라고 그러잖아요? 베드로가 일곱 번쯤 하면 돼요? 물어보는 거죠. 일곱 번쯤 하면 돼요? 그럼 내가 칭찬 받겠죠? 이게 율법주의죠? 그러니 예수님이 거기에 대고 그러는 거예요. 용서는 칠십 이레 동안에 일어나 그 진리만 알면 그런데 뭘 네가 용서를 하니? 성경이 말하는 용서가 네 그 용서야? 칠십 이레의 용서지. 태초부터 있던 하느님의 그 용서지. 그러는 거예요. 사백구십한번째는 가서 죽여도 된다. 가 아니라. 그래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름이 그리스도잖아요. 메시야죠? 기름이? 그것 부음을 받았다는 건...... 내 안에 그리스도를 가진 자. 그게 모형이죠? 그는 예수의 모형이죠? 그리고 우리의 모형이에요.

 

사무엘상 1738-39. 38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힌 다음,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혔다. 39 그리고 자기 칼을 다윗의 군복에 채워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것을 입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이런 것은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모두 벗어 버렸다. 40 그리고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집어 들고 개울가에서 자갈 다섯 개를 골라 목동 주머니에 넣은 다음 돌팔매 끈을 가지고 그 불레셋 장수 쪽으로 걸어갔다.

, 요 일이 고대로, 요 그림대로 일어난 거 맞아요. 그런데 문자는 그렇게 안 쓰여 있어요. 다른 문자들을 여기에다 써서 성경이 우리에게 뭐를 가르쳐 주려고 해요. 기름부음을 받은 바로 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씨가 이제 율법에게 가는데 아무도 못 이겨. 세상 왕도 못 이겨.... 가는데 뭘 가져가요? 막대기에요. 모세의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 야곱의 지팡이, 시편 23편의 지팡이와 막대기.... 왜 성경에 지팡이가 그렇게 많이 나와요? 하느님이 아랫것으로 가르치는 위엣 것 이란 뜻이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고 나를 지킨다는 건 뭐냐 하면.... 그게 하느님의 말씀이에요.

 

여러분, 그 밑에서 다윗이 이 돌을 던졌다, 라고 그러죠? 그 단어 카라가 새기다, 라는 뜻도 같이 있어요. 한 번 보세요. 어떤 것이 새겨져서 ,던져짐으로... 도저히 깨질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으로는 깨질 수 없는 어떤 것이 심판을 받은 사건이 뭐예요? 십계명 사건이에요. 그 이야기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왜 다섯인가? 물매라고 번역이 된 단어 있죠? ‘캐라거든요. 그게 던지다, 새기다. 카라에서 온 단어인데 그 단어 캐라가 휘장이란 말이에요.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 그 단어에요. 그게. 휘장. 휘장이 몇 폭으로 되어있는지 아십니까? 열개로 되어있어요. 열 폭, 그래서 거기에서 열 폭 병풍이 나온 거예요. 병풍은 반드시 열 폭이어야 진짜예요. 두 폭 세 폭은 사람들이 만든 거예요. 원래 병풍은 어떤 것을 가리고 막기 위해 그래서 죽음이 항상 병풍 뒤로 들어가는 거예요. 가리고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열 폭의 어떤 것. 이게 뭐예요?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거기서 나온 거예요. 자 그 휘장이 열 개, 계명이죠? 그죠? 계명은 진리인 지성소를 막고 있는 어떤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휘장이 뭐라 그래요? 히브리서에서는? 예수의 몸 그건 막고 있었던 거라니까요. 그게 찢어졌다! 어떻게 찢어졌을까요? 잘 찢었겠죠.

반 씩. 다섯 개, 다섯 개. 뭐예요? 출애굽기에서 십계명을 앞의 다섯 개만 주시고 뒤의 것은 제목만 주세요. 다섯 개는 뭐예요?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마. 부모를 공경해. 이런 거..... 이런 거는 인간들이 지킬 수 없는 거예요. ? 하느님이 뭔지를 모르는데...... 그 이름이 뭔지는 어떻게 알며? 함부로 일컫는 게 뭔지는 어떻게 알아서 그걸 안 하느냐고요. 하느님이 그분의 이름 맞아요? 그럼 하느님은 맞아요?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붙인 이름이에요. 하느님이든 뭐든지 괜찮아요. 그거 갖고 싸우지 마세요. 국어 책에 하느님으로 되어있다고, 아녜요. 모르는 거예요. 그건. 그러면 그 모르는 걸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고 밑의 거는 우리에게 안 주었어요. 그리고 그 밑의 거는 예수님이 오셔서 산상수훈에서 설명해 준다고 예수로. 그리고 마지막을 사랑, 아가페로 끝내 버려요. 그래놓고 서간문 에서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야, 모든 게 다 그 안에 들어있어. 라고 이야기해버린다 말이죠. 그러면 뭐죠? 이거는 너희들이 못 하는 거잖아. 그럼 내가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어?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사랑하고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니?

 

이름이라는 건 곧 말씀인데 그건 우리가 못 알아먹는 거예요. 그러면 너희들이 이걸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하면 밑의 다섯 개를 하면...... 그게 바로 위의 것을 하는 거야. 뭐예요? 살인하지 마, 희생제사 드리지 마, 간음하지 마. 희생제사 드리면 당연히 간음하고 그걸로 거짓증거 하고 엉터리 말을 던져줄 테니까 사랑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뭔지 알아 진리로 깨달으면 아, 이거예요? 희생제사 드리지 않는 거...... 그게 하느님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는 거군요. 그리고 간음하지 않는 것, 거짓 증거 하지 않는 것....., ,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일컫지 않는 거고, 하느님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는 거네요. 그리고 하느님을 부모로 나를 낳아주시는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나를 낳아주시는 부모로 공경하는 거네요. 라고 알아먹는 거란 말에요. 이것이. 그럼 다섯 개에요.

 

이 열 개는 의 이 다섯 개로, 찢어진 휘장,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찢어져서 뒤의 다섯 개로 남아 진리로 우리에게 넷, 코드란테스로 주어진 그걸로 이 율법 열 개가 깨지잖아요. 그러니까 그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그걸 주머니에 넣어, 그 주머니가 뭐냐 하면 추를 넣는 주머니에요. 그 단어가. 추가 뭐냐 하면 성경에서 항상 말씀을 상징해요. 그래서 큰 거, 작은 거 같이 넣지 마, 말씀은 항상 일정해야지. 똑같아야지 그런단 말에요.

거기에 넣어, 추 넣는, 씀을 넣는 주머니가 뭐예요? 나에요. 그리스도, 호 소마. 호 크리스토스. 내가 그렇게 돼서 가면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그 골리앗이라는 율법이 깨진다는 거예요.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매, 휘장, 그 휘장이 찢어져 다섯 개로 던져지자 그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복음으로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십자가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고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세요? 그래요. 그런데 왜 자꾸 그게 그리스도 아니라고? 그리스도예요. 그런데 우리는 못 알아먹는 그리스도. 하느님이라니까요.

그럼 보세요. 다윗이 뭐, 뭐 가져갔어요? 주머니, 막대기, -계명, 말씀이에요. , 물매-휘장. 예수님이 제자들을 열둘과 칠십으로 보내죠? 칠십 명이 아니라 칠십으로 보낸 거예요. 완성이에요. 그게 열둘, 아들로 보내는 거예요. 딱 열두 명 보내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열둘로,.... 칠십으로 보내면서 뭐를 가지고 가라 그래요? 지팡이, 전대, 은전(), 두 벌 옷. ‘메데이스 아이로씌우지 마라예요. 가지지 말아라가 아니라. 그거 안 가져가면 안 돼, 거든 요. 원래가.

그런데 사람의 두 마음으로 그 말을 딱 대하면 무슨 마음이 먼저 드느냐 하면, 그래 그렇게 나는 가난하게, 겸손하게 그렇게 선교를 가야 하느님도 그걸 기뻐하셔, 라고 해석하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메데이스 아이로를 가지지 마라...... 는 걸로 보는 거예요.

다윗이 그거 갖고 가서 율법을 부수었는데 그걸 진리로 가져가서 전하는 역할로 지금 부름을 받는 그들이 그거 안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 은은 항상 구약에서 속전이잖아요. 가지고 가야죠. 주머니, 가져가야죠. 내가 진리를 담은 그릇인데. 그 주머니가 그릇이라는 단어에요. 똑같은 단어라고요.

 

옹기장이가 하나는 천히 쓸 그릇.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 이거 만드는 게 잘못이 아니라 그 그릇이 주머니, 단어가 똑같은 거라고요. ‘’. 두벌 옷. 배웠잖아요? 속옷과 겉옷. 속옷을 달라고 하는 이들에게 겉옷을 줄 수 있는 짝. 두벌도 아니에요. 짝으로 옷을 가져가. 가리는 걸 가져 가. 그거예요. 그래 갖고 어디로 가라 그래요?

이렇게 우리는 첫 번 째 남편으로 오신 예수 안에서.....진리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거고 율법이라는 죄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라는 의를 발견해야 되는 거고, 우리 안에 두 마음으로 하느님의 한 마음을 배우면 되는 거예요. 그게 신의 죽음에 .....그 은혜를 통하여...... 성취되었다는 거 그거 아시면 돼요. 그러면 당연히 그분을 찬송하게 되죠.

찬송은 여러분이 만날 앉아가지고 그냥 막 되지도 않은 멜로디로, 할머니들 봐요. 멜로디도 똑같고 박자도 똑같고 리듬도 똑같고 가사만 틀려. 그래놓고 우리는 만날 찬송한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 자, 내가 어디 산에 가다가 맛있는 무지 시원하고 너무너무 깨끗한 옹달샘을 발견했어요. 마셨어. 너무 좋아. 칭찬해주고 싶어. 찬송하고 싶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릇에다 떠 놓고 빌면 돼요? 먹고 다른 이들에게 아, 시원 해. 그럼 돼요. 그걸 찬송이라 그래요. 그게 진짜 섬김이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거 떠 놓고 거기에다 대고 빌고 있는 거예요. 이걸 우상 섬김이라 그래요. 여러분이 진리의 복음을 알았으면 아, 좋아! 하면 되는 거예요. , 좋아! 그 진리가 여러분 안에 있으십니까? 그거 확인하시라는 거예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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