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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단식 자체보다 단식 그 동기를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7 조회수1,480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기만 하는군요.”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루카 5,33-35 참조)’

 

단식은 음식을 끊는 행위이다. 먹기 싫어 그러는 게 아닌 먹고 싶어도 참는 거다. 그러므로 동기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인내가 생긴다.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겼을 때 단식하라.’신다.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니까. 당신의 십자가 수난에 동참하려면 단식해야 한단다. 이처럼 대부분 참을 때 변화를 느끼며 그분의 이끄심을 체험한다. 예수님은 단식보다 단식의 동기를 더 중히 여기라신다. 단식은 절제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말씀일 게다. 어찌 단식뿐일까? 모든 게 그 원인을 알면 활동은 훨씬 자유로워진다. 그게 힘이니까. 용기를 주는 거다. 단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

 

예로부터 많은 종교가 음식에 대해 쾌나 까다로웠다. 지금도 못 먹는 음식을 규정한 종교가 많이 있을 정도이니까. 그러나 음식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다만 그것을 먹는 이에게 책임이 있을 게다. 음식의 절제는 보통은 자유로움을 준단다. 그만큼 매사가 기쁜 삶으로 바꿔 주리라. 본능을 절제함으로써 예수님 수난에도 동참할 수 있다.

 

사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경건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에 충실하고 신앙심이 깊었지만, 하느님의 옛 약속이 새로워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신약의 주인인 예수님의 현존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율법의 규정은 예수님으로 완성될 게다. 그렇지만 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키기에만 몰두했지 하느님 구원 계획을 몰랐다.

 

누가 뭐래도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신앙은? ‘이웃 섬기는 모습’, ‘반복되는 일상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맞는 자세일 게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나의 믿음과 생활이 그리스도 한 분을 향하여 있고, 그분께서 우리의 중심에 있는지를 살피자.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으로 성숙되는지를 진지하게 살펴야한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완고하게 사는 모습이 아닌, 주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새로운 의미에 눈 뜨고, 반응하는 부드러움에서 성숙함이 드러난다
 

우리의 의무적인 단식은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이다. 물론 개인적인 단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수님은 단식과 그 동기도 중히 여기셨다. 단식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먹는 자유를 절제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거다. 신앙생활의 모든 활동도 마찬가지이리라. 사실 단식은 주님 섬기는 한 방법일 뿐 그 이상은 아닐 게다. 단식 그 자체에만 매달려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은 이가 되지 않도록 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단식,신랑,잔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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