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9월 11일(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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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9-11 | 조회수1,41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9월 11일 [(녹)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거는 이들을 꾸짖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며 기도하시고 나서, 제자들 가운데에서 시몬을 비롯해 열둘을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신다. ◎제1독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말씀입니다. 6,1-11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이교도들에게 가서 한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하나도 없습니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속아 주지 않습니까?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차지하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깨끗이 씻겼습니다.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좋아하신다.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복음환호송◎ 요한 15,16 참조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복음◎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복음입니다. 6,12-19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제자 가운데 열두 명을 뽑으시기까지 밤새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점에 시선이 머물렀으면 합니다. 어디서나 기도하셨지요. 군중이 몰려오자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고, 때로는 밤을 새우시면서, 두렵고 괴롭거나 기쁨에 넘칠 때도 꼭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중대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이고,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도록 교육하기 위함이었지요. 우리도 어려운 일이나 중요한 일 앞에서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악령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복음의 끝부분을 보면, 예수님에게서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예수님을 만지려 하지요.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바로 꿰뚫어 보셨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세입니다. 눈길과 손길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요. 자신의 말을 들어 주기를 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처럼 진정으로 다가갈 때 우리의 손을 통해서도 사랑의 큰 힘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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