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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13♣복음적 바보가 되는 것.(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13 조회수1,55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9월13일 수요일 복음묵상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루카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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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루카6.27-38)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로 들립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 말씀이 모두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은 옳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한 뺨도 내어주라는 말씀,

겉옷을 가져가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내어주라는 말씀,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주라는 말씀.
한마디로 바보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할까요?
적어도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한가지 결론에 이릅니다.

이기지 못해서 지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이길 수 있지만 져주는 것을 요구합니다.
‘진다’는 것과 ‘져준다’의 차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져주는 것은 연민을 그 기반으로 합니다.
상대가 겪어야 할 아픔을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모든 종류의 폭력적 가해자이기를 거부합니다.
무엇보다도 져주었을 때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평화와 기쁨이 허락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힘든 요구입니다.
‘지는 것’이나 ‘져주는 것’이나 모두 바보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의 약속을 믿어야만 합니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 이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복음적 바보가 되는 것.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의 삶과 죽음이 그랬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야 하는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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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말:
“사랑과 연민은 필수품이지 사치품이 아닙니다.
이것들 없이, 인간성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달라이 라마)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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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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