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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슬기로운 전례상징: 성품성사의 상징 인호와 안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05 조회수1,157 추천수0

[슬기로운 ‘전례상징’] 성품성사의 상징 ‘인호와 안수’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와 보편 교회, 그리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고,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유럽이나 미국 등의 이야기로 치부되었던, 주일미사 참석률 감소와 청소년층의 붕괴, 그리고 신자의 고령화 등의 현상이 한국천주교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전반적인 교회의 복음화 방향성에 대한 검토와 대안을 찾기 위해서 ‘시노달리타스’(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라는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2021-2023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요한 3,8)라는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화의 사명을 구현해야 하는 가톨릭교회의 몸부림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의 개념은 교계적 구조가 상하의 일방적인 권력의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할을 통한 일치 실현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거기에 ‘함께 걸어가는 여정’은 겸손한 자세를 바탕으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소통’을 통해 주님께 향해가는 공동체의 모습과 현세에 안주하지 않고 성조 아브라함처럼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길을 떠나는 ’여정‘임을 잘 말해줍니다.

 

이러한 여정에 있어서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성품성사’의 상징인 인호와 안수를 살펴보면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있는 교회에서 성직자인 주교, 사제, 부제의 역할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인호’

 

성사 중에서 세례․견진․성품성사는 성사의 은총뿐 아니라 성사의 인호(印號, Sphragis), 곧 ‘인장’을 새겨 줍니다. 이 인호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각기 다른 신분과 역할에 따라 교회의 지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 세 성사는 결코 다시 받을 수 없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21항 참조).

 

‘인호’를 받는 예식은 일반적으로 후보자의 이마 위에 십자 표시를 긋습니다. 인호는 성령과 연결되어 있음을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그의 저서 ‘신비 교리교육’에서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주어지고 할례가 베풀어진 것처럼 성령에 힘입어 세례로 할례를 받은 우리에게 영적 표시가 새겨집니다.” 이 언급은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말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에페 1,13)를 연상시킵니다.

 

성령의 인장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스스로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인호는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해 있고 그분을 영원히 섬기겠다는 표시인 동시에, 종말의 큰 시련 때에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품성사에서 인호는 성직자가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그분의 도구 역할을 하도록 그리스도를 닮게”(‘가톨릭교회교리서’, 1296항) 하였음을 확인해줍니다.

 

 

‘안수’를 통해 내려온 성령에 의해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성직자!

 

성품성사를 유효하게 하는 핵심은 ‘안수’와 ‘서품기도’입니다. 그러나 피렌체 공의회(1439년)에서 ‘안수’ 대신에 각 품과 관련된 ‘제구의 수여식’(사제직은 포도주가 담긴 성작과 빵을 얹은 성반, 부제직은 복음서)을 필수 요소로 선포하였고, 이것은 성령을 따라 수행해야 하는 성직자의 역할과 삶을 전례적 기능으로 축소시켰습니다.

 

다행히 교황 비오 12세가 1947년 11월 30일에 발표한 교황령 ‘성품성사’(Sacramentum Ordinis)에서 “부제와 사제 성품의 질료는 동일한 안수이다. 형상은 이 질료의 적용을 밝히는 기도인데, 이 기도는 교회가 수여하는 성사적 효과인 성품의 권한과 성령의 은총을 드러낸다.”라고 초기 교회에서의 본질을 회복하였습니다.

 

서품식에서의 ‘안수’는 말없이 두 손을 뽑힌 이의 머리에 얹는 방식입니다. 주교 서품에서는 주례 주교와 참석한 모든 주교가 안수를 하며, 사제 서품에서는 주례 주교와 참석한 사제들 모두가 합니다. 반면에 부제 서품식에서는 주교만 합니다. 이는 3세기 초에 작성된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 8장에서 “그는 사제직을 위해 서품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자(주교)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이행하고 감독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서품”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좀 달라져서 부제직이 사제로 향해가는 과정처럼 여겨지고 있지요.

 

 

주교, 사제, 부제가 받는 성령의 은사는 어떻게 다른가?

 

각 서품기도에서 성령은 각 품에 적절한 성령에 대해서 말합니다. 주교 서품기도는 “다스리시고 이끄시는 성령을”(Spiritum principalem)이라 하면서,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도들이 지역마다 교회를 세우고 그곳이 하느님의 이름에 끊임없이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성소가 되게하는 성령임을 이어진 기도문에서 밝힙니다. 사제 서품기도는 “거룩함의 성령을”(Spiritum sanctitatis) 청하면서, 사제들이 주교의 협력자로서 복음 선포와 성사 거행을 통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거룩하게 하며 덕행의 삶으로 모범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제 서품기도는 단순하게 “성령을”(Spiritum sanctum)을 말하고, 부제가 봉사의 직무임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성령칠은으로 굳세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성품성사를 통해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는 다른 ‘직무 사제직’을 수행할 자격을 얻은 성직자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직무 사제직은 신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받은 거룩한 권한이기 때문에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성품을 받은 교역자들은 ”가르치고(munus docendi), 하느님께 예배드리며(munus liturgicum) 사목적 다스림(munus regendi)으로써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가톨릭교회교리서’, 1592항)하면서 군주적인 태도가 아닌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한 봉사 직무자임을 교회는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 수도원, 신학교들이 텅 비어 가며, 수만 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한국천주교회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루카 5,5)라고 하며 주저앉지 않고,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린 시몬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가르쳐준 “깊은 데”를 찾아서 그물을 내려야,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요.

 

주님께서는 현재의 한국천주교회의 성직자들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해오던 정형화되고 구태의연하며 성직자 개인의 역량에 좌지우지되는 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명령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환청은 아닐 듯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9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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