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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19♣『옳은 공감』(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19 조회수1,61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9월19일 수요일 복음묵상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루카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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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가 있어도 혼란스러울 수 있고, 혼란스러워 보여도 질서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공감 역시 다수의 공감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공감들이 서로를 적대할 수 있는 것도 세상입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러한 흐름은 늘 반복되어 왔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신나지 않는데 어찌 춤을 출 수 있고, 곡을 하고 있어도 슬프지 않는데 어찌 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감각이 서로 다른데 세상이 이렇게 흘러온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전망은 무엇일까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더라도, 사람이라면 『함께 느낄 수밖에 없는 마음의 세계』 가 있습니다.
그 마음의 세계는 분명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심어 놓으신 옳은 마음이라 믿습니다.
이를 『옳은 공감』 이라 이름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옳은 공감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자식을 위해 흘리는 어머니의 눈물.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의 투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멈추어 서게 되는 발걸음.
신념을 위해 두려움과 맞서려는 용기.

옳은 공감 앞에서는 이기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기적인 모습의 결과는 좋을 수 없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전에, 함께 나눈 묵상 중 발췌해 소개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라고 하시며 안타까움을 드러내십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마는 것이 우리 인간 사회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늘 악은 선을 없애려 할 것이고, 폭력을 휘두를 것입니다.
악이 있는 한 교회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취향이 맞던 그렇지 않던 악과 대결해야만 합니다.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교회의 판단 기준은 복음입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복음적이지 않을 때는 반대를 각오하고 소리를 내야 합니다.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대한 결과가 어떤 식으로 흐르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위해 옳은 것을 해야 하는 소명 때문입니다.
이를 순교 영성(殉敎 靈性)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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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말: “행복한 순간, 하느님을 사랑하세요. 어려운 순간, 하느님을 찾으세요.

침묵의 순간, 하느님을 흠숭하세요. 죽음의 순간, 하느님을 신뢰하세요. 모든 순간,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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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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