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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1 조회수2,636 추천수10 반대(0)

 

연수원에서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수업은 거시적인 우주 이야기입니다. 우주의 시작은 한 점에서 에너지가 나와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138억년의 우주를 1년으로 줄인다면 인간의 등장은 12311157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은 우주의 긴 역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더욱 겸손해야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주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지면서 가지는 경외감과 신비로움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초의 생명이 35억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변이와 자연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공존과 공생, 협력과 이타적인 삶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연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삶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남에게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타인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진화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마태오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세리였지만,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만났던 마태오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세리로 살았으면 잊혀졌을 마태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알 수 있도록 복음서를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석공은 이름 없는 돌을 가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도공은 진흙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들을 부르셔서 하느님의 거룩한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는 분입니다. 돌은 깨지고 다듬어져야 작품이 될 수 있듯이, 진흙은 뜨거운 불을 견뎌야 작품이 될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창세기 12장과 22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제 네 고향과 친척과 이웃을 떠나 내가 알려 주는 곳으로 떠나라!’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편안하고, 정이 들었던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 과거를 버려야 함을 뜻합니다. 버스를 잘못 탔을 때는 내려서 갈아타야 하듯이, 하느님과 함께 하려면 과거의 잘못된 삶을 버려야 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더욱 어려운 명령을 하십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이는 고향 땅을 떠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결정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은 미래였기 때문입니다. 부족을 번성하게 하고, 대를 이어야 하는 미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미래마저도 하느님께 바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미래의 모든 것까지도 하느님께 의탁하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산으로 올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모두 과거와 미래를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와 미래 모두를 버렸던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한분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직책도, 능력도 모두 한분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께 마태오 사도처럼 우리도 라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셔서 오늘 세리 마태오를 부르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큰 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는 한 결국 산은 걸림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박 노해 시인의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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