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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9.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1 조회수1,670 추천수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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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복음 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

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죽이는 일은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반대되는 말만 하면 됩니다.

상처 받은 사람을 향해서는

 “그깟 상처가 뭐 대수냐?”

면서 비아냥거리면 됩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낮은 자존감으로 작아진

모습을 지적하면서

“네 인생은 항상 그 모양이야.”

라고 조소 섞인 말을

하면 될 것입니다.

죽고 싶은 사람에게는

“너는 절대 죽을 수 없어.”

라면서 마음을 더욱 더

망치는 말을 하면 됩니다.
세치의 혀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죽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치의 혀로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즉,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는 인정의 말을,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자존감 낮은 사람에게는

 힘이 되어주는 말을,

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말을 전한다면

분명히 사람의 마음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말이란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마음을 죽고 살리는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어떤 형제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 형제님께서 운전을 하는데,

차선을 계속해서 바꾸면서

난폭운전을 하는 차를

보게 되었습니다.

위험한 운전을 차를 보면서

짜증도 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 차를 향해서

 “사고나 나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고가 난 것입니다.
사실 이 형제님께서

난폭운전을 하는 차를 향해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내 탓’이라는

 죄책감을 갖게 되면서,

운전할 때마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말은 상대방뿐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이렇게 영향을 끼칩니다.
주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는 달리

늘 희망이 가득한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지요. 마태오를 향해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묵상해봅니다.

 사실 당시의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먹고 살기위해서

세리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밖에 없었지요.

물질적으로는 넉넉했을지

모르겠지만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자기와 같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지금까지 자기가 누렸던

모든 부를 기꺼이 버릴 수 있는

희망을 간직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이 없는

우리를 향해서 “나를 따라라.”

라고 부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분명히

희망 안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나의 이웃에게

희망을 말을 전하고 있을까요?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있지만

후회한다고 이미 늦은 것은 아니다.

(톨스토이)


복자 성당.

54 복자성당

복자성당에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의 묘소가 있습니다.
김해, 공주, 서울 태생인

세 분 순교자는 박해를 피하여

언양 죽령리 공소 지역에 살다가,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여

경주 산내면 단석산

범굴로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포졸들에게 붙잡혀

 온갖 문초와

극심한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들은 곤장으로 피와 살이 터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끝끝내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경주 진영에서 울산까지 80리 길을

걸어 도착한 울산 장대벌에서

1868년 9월 14일 순교하셨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허인백의 부인

박조예에 의해 처형 후 형장 근처의

 강둑 아래 가매장되었다가 1907년

경주 산내면 진목정 뒷산인

도매산에 매장되었습니다.

그 뒤 1932년 대구 감천리

교회 묘지로 이장했다가

복자 성당 건립 정신에

따라서 1973년 10월 19일에

 이곳으로 옮겨 모셨습니다.

세 분 순교자는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된 데에 이어 절차에 따라

시복되셨습니다.
묘소 뒤쪽에 보이는 성당은

병인 순교 100주년 성당으로서

시복 시성 운동의 일환으로

교구민의 헌금으로 1970년에

봉헌된 성당입니다.
성당 외형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올 때 타고 온 배를

 상징하며, 전체적으로 유선형

모양을 이루고 지붕의 처마 끝과

종각은 뱃전과

돛대를 닮아 있습니다.
성당 내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앵베르 범 주교, 모방 나 신부,

샤스탕 정 신부의 유해를

제대와 감실에 모시고 있습니다.
일반 본당과 마찬가지로

매일 미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소는 대구시

 동구 송라동 22이고,

전화번호는 053-745-3850입니다.

대구 대교구 복자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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