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9월 23일(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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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9-23 | 조회수1,23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9월 23일 [(녹) 연중 제25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꼴찌를 첫째가 되게 하시고, 어린아이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본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지혜를 주시어, 성자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섬기는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는 가장 큰 사람임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악인들은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인지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고 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야고보 사도는, 위에서 오는 지혜는 순수하고,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제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2.17-20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알 수 있을 것이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화답송◎ 시편 54(53),3-4.5.6과 8 (◎ 6ㄴ)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를 구하시고, 당신 권능으로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하느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입이 아뢰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포악한 자들이 제 목숨을 노리나이다. 그들은 하느님이 안중에도 없나이다. ◎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제2독서◎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3,16─4,3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분쟁을 일으키는 오는 것이 아닙니까?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얻지 못합니다.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복음환호송◎ 2테살 2,14 참조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복음입니다. 9,30-37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계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였다. 이르렀다.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입을 열지 않았다.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의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향한 길을 걸으십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공동체 안의 서열 문제로 다툰 것입니다. 이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겠습니까? 그동안 정성을 쏟았던 제자 교육이 허무하게 느껴지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어린이 하나를 내세우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지요. 그러니 제자들로서는 이 말씀이 얼마나 서운하게 들렸겠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들에게 어린이를 받아들이라고 이르시기 때문입니다. 문제점은 힘겨루기입니다. ‘누가 더 높으냐? 누가 더 많이 가졌냐? 누가 더 힘이 세냐?’ 그러나 우리는 ‘누가 더’보다 ‘우리 함께’라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세상의 주인처럼 행세해 왔습니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기술 발전이라는 명분에 싸여 인간의 존엄성마저 해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예로 드신 것이지요. 따라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하느님의 손길을 더욱 따스하게 느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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