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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9.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6 조회수1,66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9월 26일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잠언 30,5-9

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복음 루카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어느 책에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이 유독 서글퍼지는 때는
 30대라고 말하더군요.
20대에는 입시에서 해방되어
독립을 만끽하고 많은
꿈을 꾸는 순간이지만,
30대에 접어들면 취업, 결혼,
인생과 같은 단어들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랍니다.
이 글을 보면서 내게 있어서
 나이의 앞 숫자가 ‘3’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서글퍼지기보다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1월 28일 사제서품을
받았던 해가
바로 ‘3’으로 바뀌는 30대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30대를 기쁘게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면 나이의 앞자리가
 ‘4’로 바뀔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솔직히 강의나 글 쓰는 것으로
너무 바쁜 시기를 보냈었기 때문에
어떻게 맞이했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이제 제 나이의 앞 숫자가
 ‘5’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제야 숫자가 바뀐다는 것이
조금 무게감 있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걱정들이 제 마음에
들어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걱정도 생기고, 흰 머리카락이
많아지고 노안이 심해지면서
나이 듦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워집니다.
서글퍼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 아닐까요? 그
러나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30대와 40대를 떠올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바로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걱정들과 불안을
주님께 맡기면서 지금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충실하게 산다면
글픔보다 오히려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열두 제자를 파견하십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제자를 파견하면서
뜻밖의 말씀을 하시지요.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간단히 옆집 다녀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 곳을 떠나는 여행이고,
커다란 임무가 부여된 여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
필요하다 싶은 지팡이나
 여행 보따리, 빵과 돈,
그리고 여벌옷까지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되고,
어떻게 될까 라는 불안감도
생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인데도
챙겨주기는커녕
가져가지도 말라고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세상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것에 의지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불안해하고 걱정합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주님께
의지하고 있을까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수록
주님께 내 자신을 맡기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행복을 결정한다.

(조지 베일런트)

신나무골.

59 신나무골.

신자들이 나무 아래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신나무골’은

대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2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 마을에 처음 신자들이 산 것은

1815년 을해박해 때로 추측됩니다.

서울, 경기, 충청도 지방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 곳으로, 한국에서 충청도

배론과 함께 가장

유서 깊은 교우촌입니다.

그들은 여기서 옹기를 굽고

산전을 일구면서,

초근목피(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어렵게 살았습니다.

인근의 교우촌은 한티,

 어골, 원당, 장자골,

가실 등이 있었습니다.

교우촌이 형성한 후 샤스탕 신부가

방문한 것으로 추측되며,

다블뤼 주교와 최양업 신부와

리델 신부가 사목 활동을 했습니다.
1837년 샤스탕 신부 등 역대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들과

전교회장들이 이곳을

 왕래하며 전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837년 샤스탕 신부의

명을 받고 이 곳에 온 전교회장

성 홍병주 베드로와 형제회장

성 홍영주 바오로가 1년간

전교활동을 했으며,

이들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샤스탕 신부와 같이 서울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또한 1860년 경신박해 때

이선이 엘리사벳과

 장남 배 스테파노 그리고

세 아이는 잠시 신나무골로

 피신했다고 포졸들을 피해

한티로 다시 숨어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포졸들에게 붙잡혀

“죽어도 성교를 믿겠소.”라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이선이 엘리사벳과

장남 배 스테파노는 작두에

 목이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배교의 유혹에 넘어가 배교했던

남편은 뼈저린 아픔 속에 부인과

아들의 시신을 그 자리에 묻었다가

선산 칠곡으로 부인만 이장했습니다.
신나무골 성지에는

 이선이 엘리사벳 묘역이 있고,

대구 지역 첫 본당터와 엘리사벳의 집

(예수성심 시녀회 은퇴 수녀들의 거처)

이 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나무골 신자들은 사방을

 뿔뿔이 흩어졌는데,

한티로 피신한 대부분은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본당터 안에는

로베르(김보록) 신부의 흉상,

사제관과 과거 선교사들의

사진과 유물, 공소가 있습니다.

 로베르 신부는 1885년 후반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지어 정착했는데,

이 시점을 계산 주교좌 성당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구 지역에 천주교가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 것입니다.
주소는 경북 칠곡군

지천면 칠곡대로 2189-24이고,

관할은 신동 성당으로

전화는 054-972-2014입니다.

 

대구 대교구 신나무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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