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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9/27♣가책(呵責) .(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7 조회수1,81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9월27일 목요일 복음묵상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루카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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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짖을 가(呵), 꾸짖을 책(責), 이렇게 두 번의 꾸짖음으로 이루어진 가책(呵責)이란 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책이란 저지른 과오에 대해 뉘우치며 자신을 꾸짖고 또 꾸짖는다는 뜻입니다.
가슴이 잠깐 뜨끔하는 정도의 것을 가지고 가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가책을 느낄 일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일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보통 우리의 마음입니다.
물론 같은 잘못의 반복으로 죄의식에 묶여 헤어나지를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아예 가책을 못 느끼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는 듯합니다.
무디어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타고난 마음의 구조가 잘못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잔인하다 싶을 정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뉘우친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쉽게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후회란 항상 결과에 대한 느낌이니,

미리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그저 머무르지 말고, 뉘우침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책을 느낀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뉘우침이 잘못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에 대한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어이없는 이유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헤로데는 모든 인간의 어리석음을 상징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잘못들, 실수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별 것 아닌 작은 부정적 감정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약함은 우리를 잘못된 길에 들게 합니다.
유혹은 늘 우리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인간적 약함 때문에 우리는 다시 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무릎을 꿇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잘못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뉘우쳐야 합니다.
뉘우침이 아프면 아플수록 다시 제대로 일어설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된 일에 대하여 자신을 탓하고 힘들어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미신 손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뉘우쳤으면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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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영원한 길목에 서서’ 199쪽에서 201쪽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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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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