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국천주교회 희망의 아이콘 최양업(토마스) 신부 선종 157주년 추모(1)
작성자박관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7 조회수1,513 추천수1 반대(0) 신고

필자가 영세한 절두산 순교성지를 순례하던 중,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친필서한을 직접 확인한 것이 최초의 동기부여가 되어 최양업 신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사제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으니 이는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된지 61년만에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대단한 것이었다.


필자 또한 그동안 한국의 사제하면 최우선적으로 김대건 신부가 먼저 연상되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대건 신부 못지않게 대단한 신부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그동안 절실히 느끼지 못하였다.


뒤돌아 보면 간혹 천주교 관련 사이트에서 최양업 신부에 대한 글을 봤지만 자세히 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 갔으나 그나마 2018년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절두산 성지 박물관에서 발견한 최양업 신부의 친필서한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절실함을 느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며 이는 필자의 의지보다는 하느님이 이끌어 주었다고 믿는다.


필자는 이미 작년에 강완숙(골롬바) 복자의 일대기를 시작으로 올해 순교자 성월에는 남종삼(요한) 성인의 일대기를 소개한 바 있는데 이제 세번째로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미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칼럼을 소개한 바 있으나 그것은 일대기라기 보다는 전반적인 생애를 간략히 정리한 하나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칼럼은 최양업 신부의 생애를 보다 더 세분화하여 소개할 것이다.


이제 한국천주교회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최양업 신부는 어떠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