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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9.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28 조회수1,65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9월 28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코헬렛 3,1-11

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복음 루카 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어떤 교수님께서 묻습니다. 

 “교수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일까요?”

이 질문을 받은 여러분들도 교수에게는

‘가르치는 일’이 제일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공부하는 일입니다.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따라서 교수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일은

공부하는 일입니다.”
저 역시 신학교에 강의를

나가다보니 이 교수님의 말씀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1시간 강의를 위해서 4~5시간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잘 가르치는 것은 얼마만큼

 공부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우리 삶 안에서도 중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옳음을

 강조하면서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하는 것에 반대를 하면,

인정하지 않으면서 더 목소리를 키웁니다.

러나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을

가르치려고만 드는 사람을

가까이 하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을 어떻게

편하게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반대로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많은 이들이 함께 합니다.
주님께서도 기본적으로 우리의 말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답변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주님께서도 먼저 들으십니다.

답변에 맞춰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정답을 이야기했던 제자들에게만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군중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내 자신이 먼저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들어주셨음을 기억하면서,

 배우는 마음으로 내 이웃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듣는 사람만이

주님의 말씀도 온전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보십시오.

끊임없이 내 말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웃의 말을 잘 듣는 사람만이

내 삶 안에서 계속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기의 서투른 말을

알아듣는 것은 말소리보다

뜻에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

(법정)


신앙고백비.

61 신앙고백비

신앙고백비는 1866년

병인박해 전의 신자인

김삼록 도미니코(1843~1935)가

자기의 신앙 고백에 관한 내용을

비석에 새겨 그의 집 뒷산

바위 위에 세운 것입니다.
신앙고백비가 서 있는 상주군은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김해 김씨 집안의

 4형제 중 둘째였던 김삼록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박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1886년 한불 수호 조약 이후에

공식적인 박해가 끝나고 자유가

허용될 무렵인 1894~1900년 초에

그와 그 집안의 문중들이 살고 있던

석단산 아래의 현재 청리면

삼괴2리 안골짝의 쌍바위 중

오른쪽 큰 바위에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신앙고백비를

건립한 것입니다.

크기는 높이 127Cm,

폭 39Cm, 두께 22Cm입니다.
김삼록은 신앙고백비를 세운 뒤

박해를 피하기 위해 고백비 앞에

 여러 나무를 심어 눈에 잘 띄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이 신앙고백비는 비록 건립 연대는

 100년 남짓하지만 확실하게

자기 신앙의 증거를 위해서

돌에 비를 세웠다는 것과

아직 한국 교회에서 다른

신앙고백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대단히 높다 하겠습니다.
이 고백비에는 천주님과 교황,

주교, 신부, 교우를 위한

기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주소는 경북 상주시

청리면 삼괴2길이고,

관할 옥산 성당의

전화번호는 054-532-4507입니다.

 

 

 

안동 교구 신앙고백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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