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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9.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30 조회수1,75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9월 30일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 민수 11,25-29

그 무렵

 25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모세와 말씀하시고,

그에게 있는 영을 조금 덜어 내시어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 주셨다.

그 영이 그들에게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그러나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다.
26 그때에 두 사람이

진영에 남아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런데 명단에 들어 있으면서

천막으로 나가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도

영이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진영에서 예언하였다.
27 한 소년이 달려와서,

“엘닷과 메닷이 진영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고 모세에게 알렸다.
28 그러자 젊을 때부터

모세의 시종으로 일해 온,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저의 주인이신 모세님,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
29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

제2독서 야고 5,1-6

1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2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3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4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5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6 그대들은 의인을 단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마르 9,38-43.45.47-48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어느 원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상적인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예전부터 예의를

항상 강조했지.

 특히 식사 때에 음식을

쩝쩝거리면서 먹는 사람,

음식을 흘리면서 먹는 사람이

얼마나 싫었는지 몰랐어.

그런데 나이를 먹다보니

나도 모르게 식사를 하면서

음식을 자주 흘리는 거야.

그제야 예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네.

예의는 먹는 소리를 내지 않거나

음식을 흘리지 않고

먹는 것이 아니었어.

 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것이

진짜 예의더군.

그 동안의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네.”
예절이나 예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지요.

그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것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식탁에서 팔꿈치를 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공간을

내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예절이나

예법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불편함을 드러냅니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겠다면서 무시하고

배척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예의는

나의 편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완벽하지 못한 모습도

포옹하면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가장 예의바른 사람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될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요한이 묻습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마르 9,38)
이에 예수님께서는 “막지 마라.”

(마르 9,39)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해서

잘못된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체면에 손상을 갈 수 있겠지요.

그래서 말렸고 이 점을 예수님께

칭찬받으려 했는데,

오히려 “막지 마라.”고

하시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요한 사도의

시선과 예수님의 시선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먼저 보았고,

요한은 스승과 자신들의 체면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통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병자들이

고통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지 않아도

 고통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것이지요.
제1독서의 모세도 예언을 하는

사람을 말리려는

여호수아를 향해서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민수 11,29)라고 말하지요.

모두가 주님의 영을 받아서

주님과 가까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기 안에

갇혀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워서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은

자기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남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사랑을 받기 힘든,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자기의 체면에 상관없이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사람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를 설득하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려는 것,

나의 편함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힘들어하는

사람의 고통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것,

 입으로만 외치는 사랑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한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가

지적하듯이 마지막 때까지 재물을

쌓기만 합니다(야고 5,3 참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짓게

하는 것들을 모두 과감하게 끊고

대신 생명의 길로 가게 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어떤

사랑의 실천을 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이 생명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진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란 무엇인가

(생텍쥐페리)


어제 성지순례 온 서울 홍제동성당 주일학교 학생들입니다.

63 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 묘.

황상영 알렉시오 순교자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었으며,

15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의 오묘한 진리에

깊이 매료되어 입교하였고,

그후 활짝 열려 있던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고난과 박해만이 기다리는

 신앙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다

마침내 1801년 순교하였습니다.

신유박해의 상황과 대비책을 적어

북경 주교에게 보내려고 준비했던

‘백서’는 젊은 학자의 용기 있는 표현이며,

귀중한 교회사적 자료입니다.
그는 양반청래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능지처참형을 받았으므로 시신이

 온전할 리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미 참수를 당하고 시신을

여섯 토막으로 잘리는 ‘육시’를 당했습니다.

또한 정약현의 딸이자 부인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 대정현으로 유배 갔고,

외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남겨졌기에

시신을 거둘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집안에서조차

오랫동안 잊혀 왔습니다.

그러다가 180년이 지난 1980년에

집안의 후손이 사료검토 작업과

사계의 고증을 거쳐 홍복산 선영에서

황사영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을 발견합니다.

이를 발굴한 결과 석제 십자가와

비단 띠(토시)가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오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황사영의 세례명은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와 달레의 한국 교회사에서

 ‘알렉산델’로 알려졌으나,

1990년대 교회사 학자들의 연구에 따라

‘알렉시오’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운 묘비는 아직

 ‘알렉산델’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황사영 순교자 묘역은 경기도의

도로 신설 계획에 따라 이장 또는

현 지역에서의 성역화 작업이

결정될 예정입니다.
주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산35입니다.

이곳을 담당하는 순교자공경위원회의

연락처는 031-850-1497~8입니다.

의정부교구 황사용 알렉시오 순교자 묘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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