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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30♣사랑과 정의.(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30 조회수1,68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9월30일 연중 제26주일 복음묵상


“너를 죄짓게 하거든 …” (마르코9,43.45.47.)

복음이 기쁜 소식인 가장 커다란 이유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죄에 대한 용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코가 전하는 오늘 복음은,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과는 상치되는 듯한 죄에 대한 엄격한 경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사랑의 하느님’과 ‘정의의 하느님’을 혼돈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사랑을 강조하기도 하고, 정의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필요에 따라 두 분의 하느님을 너무 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정리해봅니다.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는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되,
그 하느님의 사랑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는 그저 감사해야만 할 뿐이지,
그 사랑을 빌미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의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죄를 피하고자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을 찾아서 없애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욕망보다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진실된 뉘우침이 없이는 하느님의 사랑 역시 힘을 잃고 맙니다.
진실된 뉘우침이 없는 그 어떤 용서의 행위도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각자에게 다가올 그 끝날에는 살아온 모습대로 그 값을 치러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실한 뉘우침의 체험이 있었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이용하려는 치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삶이 다 할 때까지, 우리에게 완전한 회개는 불가능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뒤돌아보고, 지은 죄가 있다면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청해야만 합니다.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시니 괜찮다.”
“원래 인간은 약한 존재이고, 그런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시니 용서하실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비겁함이고 자기 파멸의 길입니다.

참된 뉘우침이 있을 때 하느님의 사랑이 힘을 발휘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사야1,18)

 

사진 말:
내가 죽었을 때,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혹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나의 무덤을 찾지 말라.

그 말들은 내가 살아있을 때 듣고자 했던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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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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