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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행복, 자아의 행복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05 조회수2,65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나의 행복, 자아의 행복>



 복음:루카 10,17-24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북방 라마교의 고명한 라마에게 남방 라마교의 라마로부터 불교 수행자들을 가르칠 슬기롭고 거룩한 스님 한 분을 보내주십사는 간곡한 전갈이 왔습니다. 뜻밖에도 북방의 대사는 스님을 한 사람이 아닌 다섯이나 떠나보냈습니다. 그때 모두들 그 까닭을 묻자 대사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합니다.

다섯 가운데 하나만 끝내 남방 라마에게 당도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지.”

 

다섯 스님이 길을 가던 중 산속 외딴 오두막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에는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처녀는 불심이 깊어 스님들을 극진해 대접했습니다. 산적들에게 양친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가장 젊은 스님이 말했습니다.

난 이 처자와 함께 있겠습니다. 내 진정 불자이건데 마땅히 자비심을 궁행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뒤, 일행은 왕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네 스님 중 한 스님이 유난히 왕의 눈에 들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딸과 혼인하여 자신이 죽거든 왕위를 계승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스님은 이 나라 억조창생에게 좋은 감화를 끼치기에 왕 노릇보다 더 지름길이 있으랴. 우리의 신성한 종교를 위하여 공헌할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지.’라고 생각하여 그 스님도 빠졌습니다.

 

세 스님이 길을 가던 중 마을의 한 심부름꾼이 달려와 길을 막았습니다.

우리 마을 절의 주지 스님이 입적하셨는데, 후임자가 꼭 있어야겠습니다.”

한 스님이 말했습니다.

내 진정 불자일진대, 마땅히 여기 남아 이 마을 사람들을 섬겨야겠지.”

 

두 스님이 어느 불교도 마을에 이르렀는데,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불교를 버리고 힌두교 구루의 세력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난 여기 남아 이 가엾은 중생을 참 종교로 되돌아오게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있네.”

결국 남방 라마에게 이른 스님은 한 명 뿐이었습니다.

 

 

엔소니 드 멜로 신부의 종교 박람회에 실린 예화입니다. 신부님은 이 예화에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해 전에 나는 하느님을 찾는 길에 나섰다. 이따금씩 나는 그 길에서 옆길로 빠지곤 했는데, 으레 이유는 더없이 그럴듯했다. 전례를 혁신하겠노라고. 교회 구조를 개혁하겠노라고. 성서 연구를 현대화하겠노라고. 신학을 현실에 적응시키겠노라고. 애석하게도, 꾸준히 하느님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슨 행업이든지 종교적 행업에 몰두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빠져있습니까, 아니면 종교에 빠져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음성을 들었다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신기한 체험을 해서 주님의 사랑을 가슴 뜨겁게 느꼈다고도 하며, 어떤 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본당이 매우 활성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내가 느끼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아가 느끼는 것입니까? 가장 큰 문제는 나와 자아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다섯 스님 중의 네 스님은 자아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스님만이 라마의 뜻만을 참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참 기쁨을 어디 두어야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는 등의 기적을 하고 온 것에 대해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으로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우리가 기쁠 이유는 주님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만약 내가 뱀의 소굴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뱀은 다행히 독은 없지만 매우 사나워서 내 온 몸을 물어뜯고 휘감으며 나를 괴롭힙니다. 이때 이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그 상황에서 명예나 쾌락, 인정이나 돈 등이 참 행복일까요? 참 행복은 그 뱀에게서 나와 사람들 사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뱀에게 사로잡혀 있는 한 다른 어떤 것도 그 사람에게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뱀을 자신이라고 믿으면 그 사람에겐 희망도 없습니다.

 

파라오의 지배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파라오라는 뱀으로부터 구해주셔서 가나안 땅에 살게 해 주시려고 했는데 그들이 찾는 행복은 여전히 파라오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광야에 나오기는 했지만 모두 뱀에 물려죽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려는 유일한 행복은 뱀과 함께 살고 있는 나를 당신과 함께 살게 해 주시려는 것뿐입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자아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런 기쁨을 우리가 느끼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로지 당신의 유일한 뜻,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만을 기뻐할 수 있는 자녀들을 찾으십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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