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7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07 조회수4,341 추천수9 반대(0)

 

서울에 있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제주도에 머물면서 태풍이 자주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마트폰의 영상을 통해서 바람의 방향을 보았습니다. 한라산에 막힌 바람은 한라산의 양 옆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바람의 방향을 보는 것도 신기했고, 한라산이 높은 산이라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한라산을 양 옆으로 흘러간 바람은 한라산을 지나면 다시 만나 하나의 바람이 되었습니다.

 

장애물을 만나서 갈라졌지만 다시 하나가 되는 바람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제 앞에 놓은 장애물 앞에 포기한 적도 많았습니다. 화해하지 못하고 원망한 적도 많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비난한 적도 많았습니다. 바람은 제게 원망도, 미련도, 시기도, 질투도 모두 버려버리고 사랑으로 하나 된 마음이 되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분단이라는 장애물이 70년 동안 있어왔습니다. 휴전선이라는 장애물이 70년 동안 있어왔습니다. 남과 북의 바람은 이 장애물을 넘지 못했고, 넘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고, 이산가족들의 왕래도 하지 못하였고, 많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분단의 장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념과 사상이라는 장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남쪽의 대통령이 백두산엘 올랐습니다. 평양의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였습니다. 백두산의 천지에 한라산의 물을 담았습니다.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경제 협력을 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남쪽의 바람과 북쪽의 바람은 백두산을 넘어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북쪽의 정상도 남쪽으로 올 것이라고 합니다. 국회에서 연설도 하고, 한라산도 같이 올라가면 좋겠습니다. 적대감을 버리고, 화해와 협력의 손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500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제주도의 오름에는 억새가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단풍을 보러 갈 것입니다. 오늘 저는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단풍은 여유를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사람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초를 켜고, 마음을 가다듬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습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단풍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고, 가족의 행복도 지킬 수 있습니다.

단풍은 멀리서 보아야 합니다. 단풍을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멀리서 단풍을 보면 색의 화려함도 볼 수 있고, 웅장함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단풍도 색이 바란 것이 있고, 벌레가 먹은 것도 있고, 상처 난 것도 있습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의 화목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단풍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구름, 흐르는 계곡, 새 소리, 바람 소리, 단풍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단풍이 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보기 어렵습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이 서로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김밥의 김처럼 가족의 울타리를 잘 지켜주면 좋습니다. 어머니는 김밥의 밥처럼 자녀들을 돌보면 좋습니다. 자녀들은 김밥의 속처럼 다정하게 있으면 좋습니다.

단풍은 이 있어야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는 단풍을 볼 수 없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오후 2시에서 4시경이 좋다고 합니다.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교회가 부족함에도 하느님 자비의 빛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빛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총의 빛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은총이 함께 하는 가족은 화목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그런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천년에 한 번씩 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이 커다란 바위를 스쳐서 그 바위가 다 닮아 없어지는 시간이 지나야 옷깃을 스치는 인연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주는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참으로 긴 시간을 기다려 만남을 이룬 것이고, 그런 긴 시간을 기다려 만난 그 소중한 인연인 만큼 아끼고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지금 우리의 만남은 치맛자락으로 1000년에 한 번씩 커다란 바위를 스쳐서 그 바위가 닮아져 없어지는 그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기다려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의 시작이시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짝 지워주신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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