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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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0-11 | 조회수2,036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8년 10월 11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제1독서 갈라 3,1-5 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복음 루카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중국 송나라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 저쪽에서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혼자 나무 밑동에 머리를 들이박고는 기절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농부는 이렇게 불로소득으로 토끼를 쉽게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농부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무 뒤에 숨어서 ‘어디서 멍청한 토끼 한 마리 안 오나?’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멍청한 토끼를 기다린 농부이지만 실상은 본인이 더 멍청한 모습이었지요. 이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한비자에 나오는 ‘수주대토(守株待兎)’ 의 우화입니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우화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바로 과거의 성공만을 바라보면서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내가 왕년에는....”이라고 시작하는 말씀들을 얼마나 많이 하십니까? 과거의 성공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잊어야 할 것은 과거의 실패입니다. ‘그때가 기회였는데.... ’, ‘내가 왜 그랬을까?’ 등의 말을 하면서 과거의 실패에 집중하면 지금 이 순간에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대신 불안한 마음으로 힘든 순간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에 연연하는 것 모두 쓸데없는 감정 소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지금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할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에 연연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전에도 청했지만 소용없었어.’,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 같은 죄인은 주님께 기도할 자격도 없어.’ 이러한 말들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과는 너무 다른 분이십니다. 귀찮고 힘들다고 누군가의 청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우리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아무리 못된 자녀라고 해도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부모의 마음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지금 당장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청주교구 배티 성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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