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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별 여행
작성자조옥래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7 조회수2,004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별 여행

2018/10/16

조옥래 에울로지오

        

아침 일찍 가방을 챙겨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니 1110분입니다.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동생이 알려준 장소를 길 찾기 앱으로 찾아서, 느긋하게 버스를 타고 초읍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니, 주변의 길이 다 아는 길인데도 많이 낯섭니다. 그러고보니 이 거리를 보고 다녔던 적이, 거의 3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도 늙었고, 거리의 건물들과 도로는 죽어 파 엎어지고, 다시 새로운 길로, 아파트로 들어섰네요.

 

문득, 이런 공간의 흐름 속에 있는 생명체에게 존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끊임없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없어지고 했을테니까요. 무릇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고 소멸합니다. 인간이 만든 물질들도 형성되었다가 부서지고 먼지가 되어 우주에 떠 돕니다. 그런 먼지 속에 영혼은 어디 있을까요?

언젠가 또 다른 시간이 되어 누가 이 거리를 거닐 때, 나의 존재, 나의 흔적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그 흔적이 남고, 그 사람들도 소멸되면 결국은 절대 무(), 그런 블랙홀이 우리 삶, 우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빨라 천천히 걸어서 음식점으로 향하니 음식점 앞에 막내와 큰 누님이 서 있습니다. 얼른 달려가서는,

누님, 빨리 오셨네요?”하고선, “들어가서 기다리지 않고선, 왜 이렇게 밖에서 계세요?”하였습니다.

, 막내가 데려왔는데, 일찍 와서는 너희들 오는 거 보려고 나와 있었다.”합니다.

얼른 누님 모시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음식점 정원의 벤치에 앉아서 작은 누나와 여동생을 기다렸습니다.

누님은 생각보다 밝게 웃고, 애써 힘을 내려고 하는 거 같았습니다. 막내가 누님 집으로 가서 택시로 모셔왔는데, 오늘은 집에서 좀 먼 곳으로의 외출이라 진통제를 미리 먹고 나왔다네요. 누님은 대장암 수술 후 방사선치료를 거쳤는데, 폐로 전이되어 폐 절제술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다시 전이가 되어 지금은 췌장으로 전이가 된 상태입니다. 얼마전 누님은 병원의 진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우리 형제들끼리 모여 누님과 함께 하는 오찬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식사를 하는데, 다행히 누님께서 음식을 잘 드십니다.

밝게 웃고, 우리 더러는 걱정하지 마라고 합니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가는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하고요.

아무도 가보지 못한 저 세상.

그 세상의 앞에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천국이 있다고 믿는 우리가 먼저 가서 자리잡고 기다리세요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거 같은데, 그 이야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생 벗어 던지고 저 세상의 아버지 어머니 만나서 회포를 풀라고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곳을 벗어난다고 축하를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 세상의 무엇이 그리 좋은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좋은 약에 맛나는 음식에, 몸을 학대까지 하는 운동을 하며 살아갈까요?

오늘 쓰고 남는 음식을 저축하듯이,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오늘도 아껴가며 곳간을 채우려고 할까요? 아니, 넘치는 곳간을 더욱 넓혀가며 꾸역꾸역 밀어 넣으려고 만 할까요? 온갖 비난도 마다하고요. 신은 우리 인간에게 영원히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이라는 사탄을 인간세상에 내려 주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치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것이 헛것, ‘신기루를 보고 살아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마치 영생하는 것처럼 착각하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딱히 이 세상에서 맛보고 싶은 그런 즐거움도 별 없는 거 같습니다. 나이 들어 늙어가면서 몸이 망가져가니 앞으로는 더욱 힘든 삶이 될거고요.

 

좋든 싫든 이 세상에서 형제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 음식이 헛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보다 저 세상이 극락이고 천국일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하나라도 더 드시라고 권해주는 것이 동생의 도리라 생각이 들어 자꾸 권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를 못 먹겠다고 합니다. 속이 메스꺼워 먹지를 못하겠다고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누님 앞에서, 정신없이 게걸스레 음식을 챙겨 먹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합니다.

 

누님은 이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을 자꾸 하는데,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가, 다시 참고, 다시 눈물이 고이고..그렇게 반복을 합니다.

우리 누님, 일흔두 해 동안, 가난한 집의 장녀로서, 일찍 아버지 여윈 집안에서 무던히 고생도 했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저 세상으로 가기에는 이른 나이인데, 고생 탓일까요?

누님은, “지금 이세상에서 볼 건 다 봤다. 몇 년 더 산다 한들 뭐 별 다른게 있겠나?”하십니다.

형제 중 맏딸이고, 제일 마음이 큰 누님이 가고 나면, 형제들이 누구를 중심으로 모일까 걱정도 됩니다.

 

식사 후 누님은 기력이 떨어져 막내가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우리는 어머니 납골당이 있는 영락공원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납골당으로 가서는, 분향 드리고 어머니께 누님을 잘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산역에서 누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누님이 먼저 가고, 그 뒤를 우리 형제들이 하나씩 갈 동안, 제가 형제들 중심이 되어 잘 지낼께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실제(real)인지, 가상(virtual)인지?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진짜인지,

저 세상에서 우리를 보는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마태 5, 4-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위령,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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