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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18♣양과 이리(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8 조회수2,75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8년10월18일 목요일 복음묵상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루카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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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일입니다.
잡혀 먹히러 가라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호랑이에게 사자와 싸우러 가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목동의 인도 없이는 풀조차 제대로 뜯어먹을 수 없는 양을 이리의 무리 속으로 집어넣겠다는 것입니다.
양이 의미하는 것은 선하다는 것이고, 힘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악의 방법이 아니라, 오로지 선한 방법만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순한 양의 모습을 가지고 당신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리가 득실대는 듯한 세상으로 들어가서 말입니다.

생각해봅니다.
1.
보내야 하는 마음과 떠나는 마음.
우리가 어느 입장이 된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너무 잘 알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사지로 보내야 하는 마음.
죽을 줄 알면서도 보내는 이의 마음을 믿고 따라야 하는 마음.
당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제자들이 가졌을 두려움을 상상해봅니다.
사실, 그대로 되었고,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이들의 여정의 끝은 순교라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파견된 여정의 길 안에서, 자신들이 걷는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고,

하여 두려움을 넘어선 희망으로 순교의 칼을 받아들였다는 것이지요.

2.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그분의 가르침을 사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곡해하고 실행한 오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외교적 폭력 수단을 등에 업고,
이교도라고 불렸던 이들의 땅을 점령했고 강제했던 오류의 역사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남미대륙의 슬픈 가톨릭 교회의 역사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순한 양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로,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다가가 참 희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선이 너무 아름다워 악이 힘을 잃고 마는 그런 길이어야 합니다.

3.
오늘 날 한국교회를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구교, 신교를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같은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아닌 교회일 수 있습니다.
목자가 아닌 목자일 수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는 교회일 수 있습니다.
선한 양의 모습이 아니라,
먹이를 노리는 이리의 눈으로 세상을 농락하는 거짓 교회들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결국 악마에게 먹힌 교회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양은 목자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요한10,3 참조)
결코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짓거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목자라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수많은 양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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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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